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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5.04 [닥터이도]뿌리 깊은 타디스 1 8
  2. 2013.04.14 뮤지컬 레베카
  3. 2013.04.14 [신세계]I'm your uncle! 4
  4. 2013.03.31 3월 말 잡담
  5. 2013.03.31 [쿠로바스]반숙노른자
  6. 2013.03.31 [타이바니]가정적인 남자 2
  7. 2013.03.31 [언라이트]큰 숲 작은 집 2
  8. 2013.03.19 [사사에리]당신의 번역가
  9. 2013.03.19 [어벤저스]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10. 2013.02.04 [쿠로바스/황청/]남자라면 위쪽 2
  11. 2013.01.23 2013년 1월 23일
  12. 2013.01.03 [언라이트]군인복무규정을 준수하시오 2
  13. 2013.01.03 종말까지 앞으로 5분
  14. 2012.12.29 2012년
  15. 2012.12.18 오늘의 노래

[닥터이도]뿌리 깊은 타디스 1

<뿌리깊은 나무>의 이도와 <닥터후>의 닥터입니다. 데이빗 테넌트 닥터 기준입니다.

 

 

"흠경각 앞에 웬 목함이 떨어졌사온데 크기가 크고 모양이 기괴하옵니다!"
인시(寅時)도 어느덧 지나 묘시(卯時)에 이를 시간이었다. 상참이 끝나 조정신료들이 모두 물러가려는 찰나, 늙은 겸사복이 달려왔다.
"목함?"

왕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높이가 일곱 자이옵고 너비가 석 자이옵니다. 색은 파랗고 문이 있사옵니다."
"뭐라. 어디서 떨어졌느냐."
"하늘이옵니다."

신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궐 안에 수상한 물건이 떨어지다니 이것은 나라의 안위와 직결된 문제 아니오, 허나 그렇게 큰 목함이 어디서 떨어진다는 말인가, 근보 자네 이상한 생각 말게, 인수 자네는 내가 뭘 어쩐다고. 왕이 목소리를 내자 신하들이 입을 다물었다.
"흠경각에 떨어졌으면 다치거나 상한 자가 있느냐. 목함이 깨졌으니 파편이 튀었을 터. 건물이나 구조물이 상했으면 고하라."
"그것이, 목함이 멀쩡합니다. 이상한 소리를 내며 나타났는데 깨진 곳 하나 없습니다."
일순 정적이 흘렀다. 겸사복은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조아리고 벌벌 떨고 있었다.
"무슨 소리냐."

늙은 겸사복의 주름진 얼굴에 땀이 맺혔다.

"다친 자도, 깨진 것도 하나도 없사옵니다."

"뭐라?"

"그리고 목함 안에서, 그것이, 전하, 차마 소인은 고하기 어렵사옵니다."

겸사복은 이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왕이 얼굴을 찌푸리고 겸사복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때 포교가 달려왔다.
"황공하옵니다! 궐 안에 수상한 자가 침입했사옵니다!"
왕의 얼굴이 굳었다. 당시 수찬 벼슬을 하던 근보 성삼문은 생각했다. 이거 엄청나게 재미있는 일이 터지겠구나, 하고. 히죽히죽 웃기라도 했는지 갑자기 옆구리가 아팠다. 옆을 보니 인수 박팽년이 자신을 근엄한 얼굴로 노려보고 있었다. 뭐 어때, 재미있어 보이는데. 고개를 으쓱하자 재차 옆구리에 주먹이 박혔다. 먼 곳에서 조 대감이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삼문은 생긋 웃었다. 에이 뭐 이런 걸 갖고. 전하께서 더 재미있어 하실 것입니다.

 

내금위장은 파란 옷을 입은 이상한 자를 노려보았다. 짧은 갈색머리에 아무 것도 쓰지 않았고 바지는 통이 좁았으며 웃옷은 깊이 파였고, 목에 파란 띠를 묶고 있었다. 코가 높고 눈이 우묵히 들어갔으며 눈색이 파랬다. 궁에는 색목인을 처음 보는 사람들도 많아 궁녀들이 문 뒤에서 놀라 얼어붙어 있었다. 더구나 목함을 열고 사람이 나왔다. 그자는 무기를 든 사람들을 보고도 태연하게 두 손을 머리위에 올리고 버티고 서 있었다. 담력이 보통이 아니다.
"닥터, 그래요, 여기 말로 박사입니다."

"무슨 박사냐. 왜 여기에 있는 것이냐."

"그냥 박사고 여기에는 왔으니까요."

"무례하다!"

내금위장의 일갈에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자는 그냥 주위를 둘러보며 신기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수상하다. 의관도 갖춰입지 않고, 머리도 맨머리이니 상것들도 그렇게 다니지는 않는데, 어찌 궐 안에 이리 무례한 자가 들어오는가. 호패도 없는 자가 어찌 박사라 하는가. 궁에 색목인 박사가 없는데 누구냐?"

재차 닥달해 보았으나 그자는 웃기만 했다. 표정이 굉장히 풍부한 것이 아주 경박해 보였다.
"방금 봤잖아요. 아, 모자. 그렇지. 동아시아에는 맨머리를 드러내지 않는 풍습이 있었지. 미안해요. 타디스 안에 가면 많아요."
"타디스?"
"저기 저거요."
"목함의 이름이 괴이하다. 오랑캐냐?"
"아니, 그냥 내가 타고 다닌단 말입니다."
내금위장 무휼은 머리를 감싸쥐었다. 갑자기 흠경각 앞에 떨어진 목함만 해도 기괴한데, 그 안에서 나온 인간은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는 괴이한 존재였다. 그냥 정신이 나간 자라고 해도 궁 안에 그런 것을 들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대체 어디로 어떻게 들어온 것인가. 다른 곳이라고 해도 큰일날 판이다. 하지만 여기는 흠경각이다. 침전 안쪽에 있는 은밀한 곳이다. 게다가, 무휼이 세상에서 제일로 섬기는 전하께서 중히 여기시는 곳이다. 앙부일구며 간의가 있는 곳이다. 또, 전하께서 은밀히 함원전에 집현전 학사 몇 명을 들이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에 침입자가 들어왔다는 것은, 그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자를 끌고 가 입을 열게 해야 할 것인가. 무휼은 언성을 높였다.
"여기가 어디인지 아느냐! 조선의 궁궐이다. 전하께서 계신 곳이니라!"
"저 분요?"
내금위장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 자가 가리킨 곳에 왕이 서 있었다.
"저 자가 목함 속에서 나온 자이냐. 우리 말을 잘 하는구나."
"국왕이십니까?"
색목인은 허리를 굽혔다. 예를 표하는 것 같았으나 절을 하거나 무릎을 꿇지 않았다. 시립한 내관과 궁녀들이 모두 황망해 하였고 무휼도 어이가 없어 그저 그 자를 노려보았으나 왕은 개의치 않았다.
"그래. 과인이 조선의 왕이다. 너는 누구냐?"
"나, 아니지. 저는 박사입니다. 이름은 없사옵고 그저 박사라 칭합니다."
"저 무엄한 놈!"
무휼이 언성을 높였으나 왕은 그저 그 자를 올려보고 있었다. 키가 육척을 넘길 듯, 꽤 컸다. 체구는 여위었으나 만만히 볼 자는 아닌성 싶었다. 사선을 넘나들며 살았던 무휼은 그 자에게서 위협감을 느꼈다.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을 리 없는데, 왕은 태연히 그 자에게 물었다.
"남들이 그리 부르느냐?"
"아니오. 제가 저를 박사라 칭하옵기에 남들도 그런 줄 알고 박사,박사 합니다. 그런데 여기는 언제인지요?"
여기는 언제? 말이 어딘가 이상했다. 왕도 그 말에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 자의 얼굴을 보더니 한숨을 쉬며 그냥 답해주었다.
"정통 13년이다."
갑자기 그 자가 환호하며 방정맞게 빙글빙글 돌며 혼자 빠른 속도로 말했다.
"그래, 그래, 여기는 조선이었어! 저이가 세종 이도군. 장헌대왕이야! 아니아니아니 아니지, 여기서 이 말을 하면 안 되지. 저건 저 자의 미래의 이름이니 안 돼. 여기서는 그냥 왕으로 불리겠지. 법률 전문가이며 법의학 전문가, 인쇄에도 고명한 왕이자 조선 최고의 학자이지. 당대 아시아에서 당할 자 없는 언어학자, 아 그래! 그거야! 왕의 최대 업적이지! 그걸 만들었어! 생각났다. 생각났어! 그래, 그거야! 정통 13년! 바로 코 앞이군! 몇 년 뒤면 그게 온 나라에 퍼지겠지!"
그때까지 태연하던 왕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졌다. 무휼은 어의를 짐작했다. 그것이다. 저 자는 그것을 알고 있다.
"무엄한 놈! 그 입을 찢어버리기 전에 입을 다물어라. 지존이시니라. 어찌 너 따위가 감히!"
무휼이 칼을 뽑아들었다. 창백한 얼굴로 그 자의 망령된 언동을 쳐다보던 왕이 손을 들어 무휼을 막았다.
"전하!"
"이자를 만춘전으로 데려오라! 내 이 자와 논할 것이 있느니."
"하오나 전하, 수상한 자이옵니다."
"색목인이 수상한가. 원에는 색목인이 많았다. 고려에도 사신으로 왔지."

왕은 의외로 태연했다. 자신의 계획을 아는 색목인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려 보였지만, 그자에게 듣고 싶은 것이 많은 듯했다. 하지만 무휼이 보기에는 그냥 수상한 자에다, 위험한 자이기까지했다.
"그 뿐이 아니옵니다. 전하, 이 자는 알고 있사옵니다."
"내금위장, 직접 지키라. 그러면 되겠는가?"
"송구하옵니다."
왕은 먼저 걸음을 옮겼고, 그 뒤를 따라 성큼성큼 걸어가려는 그 자를 무휼이 불러세웠다.
"손을 묶겠다. 허튼 생각을 하면 목을 벨 것이다."
"오. 목을 벤다는 말도 오랜만이군. 좋아요. 자, 묶어요."
그자는 손을 내밀고 생글생글 웃었다. 손을 묶는 동안 그 자의 웃옷 틈에서 금속으로 된 봉 같은 것을 본 것 같았다. 무기는 아닌 듯 싶어 그냥 두었다.

 

 

흠경각에 목함이 있었다. 목함의 주인이 박사였는데 주상께서 박사를 벌하지 않고 만춘전에 불러 하문하셨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24년 3월 23일(14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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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레베카

4월 13일 류정한/옥주현/김보경/최민철 캐스팅으로 봤습니다.

 

막공이 가진 에너지도 있었고, 배우들이 극에 몰입하는 것도 있어서 이 기획사 공연을 본 중 가장 만족스럽게 봤습니다. 그보다 저한테 이 공연의 의의는 이 극작가가 점차 대중적인 작품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애초에 전 특정 배우 팬이나 공연의 팬이라기보다 극작가의 팬에 가깝습니다. 제 어미오리거든요. 제 이상에 가까운 작품을 쓰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이건, 제 존잘님이 발전하고 계신다는 기쁨을 말로 정리해 보고 싶어서 쓰는 감상입니다.

 

미하엘 쿤체는 솔직히 말해서 대중적인 극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이 쓰는 극은 인물을 알기 위해 여러 장치를 해독해야 하고 작품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며(자국민들은 거기에서 자유로울 거 같지만, 아닙니다. 한국인이 한국사 잘 아나요. 아니잖아요.)골아픈 가사의 의미를 해석해야 합니다. 모차르트!나 엘리자베트는 사실 접근성이 좋지는 않죠. 그 전에, 먹물에 찌든 인간의 취향이란 게 일반인과 같지 않습니다. 여기서 일반인은 좋은 의미로 일반인입니다. 먹물들은 자기 취향이 대중적일 거라고 착각하지만 절대로 대중적이지 않죠. 아무한테도 안 먹힐 개그와 아무한테도 안 먹힐 주장을 하면서 자기들이 쉬운 소리를 한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본인은 그런 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게 아닌가 해요. 대중적인 공연을 쓰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게다가 작품 속의 쉬카네더 같은 캐릭터에서 그런 면이 언뜻 보이기도 했고요.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 쉬운 단어를 골라 쓰고, 선명한 연출을 한 점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엘리자베트 초연을 봅시다. 하리 쿠퍼의 연출이 그게 뮤지컬 연출입니까 실험 오페라 연출이죠. 그 양반 니벨룽의 반지 연출도 그렇게 했더만요 뭐-_-; 여담인데 한국의 엘리자베트 공연에서 쿤체가 좋아했던 것은 공연의 키치스러움이 아니었을까 진지하게 생각합니다. 전 그렇게 남대문 시장에서 장사하는 간지로 키치 부르는 루케니 처음 봤습니다. 그 점에서 한국 캐스트가 대단했지요.

 

아무튼 전반적으로, 나치 청산 문제니 예술가와 인간의 삶 문제니 하는 걸 집요하게 추적한다는 점도 그렇고 굉장히 먹물내가 풍기는 물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번 레베카에서 놀랐던 점은, 아무도 공연내용이 어렵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물론 한국 공연 기획사가 이거 연출을 제일 멀쩡하게 해서 그렇겠지요. 전 그 기획사에서 공연한 모차르트!와 엘리자베트를 봤기 때문에 거기 연출에 대해 별 호의가 없습니다. 그런데 또 보는 제가 호구지요. 압니다. 하지만 역으로 이 기획사가 연출을 멀쩡하게 했다는 점이야말로 이 작품이 이해하기 쉽다는 반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기획사는 앞의 두 극을 가족극과 로맨스로 연출하려고 엄청나게 애를 썼던 곳이거든요. 그런 기획사에서 힘들이지 않고 로맨스 코드를 얼마든지 강조할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쿤체가 하는 일이니 이 작품도 원작에서 어린 소녀의 성장 코드를 중요하게 다룬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로맨스와 개그코드를 중요한 요소로 넣어버리니, 그 부분에 힘을 싣기 참 좋아지지요.

저는 극에서 그거 남발하는 거 싫어합니다. 그놈의 로코인지 뭔지가 문화의 다양성을 저해한다고요. 아 농담 아닙니다. 제가 사는 동네는 정극 공연을 거의 볼 수가 없어요. 소극장 연극들이 죄다 로맨스 코미디거든요. 사람들이 로맨스 코미디가 연극의 전부인 줄 알고 그런 것만 찾는 거 보면 화를 내는 더러운 먹물입니다 제가. 그렇다고 아는 것도 없으면서 쓸데없이 겉멋만 든 게 문젠데...그런 제가 볼 수 있는 로맨스 코미디의 한계점 정도? 사실 엘리자베트는 일종의 덕후 대상 상품인 셈이죠. 무척 마니악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쓴 극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부분이 분명히 있었어요. 그런데 제법 로맨스물 다운 것이 나왔습니다. 원작이 가진 힘도 있고, 한국 번안의 힘도 있지만 원작 자체가 로맨스와 코미디를 소화하기 위해 애쓴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전 그러기 위해서 쿤체 씨가 굉장히 많이 공부하고 노력했다고 봐요. 이건 취향이나 습관 같은 문제라서 한 번 엘리자베트 같은 걸 쓰게 되면 그게 일종의 틀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쿤체 씨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극을 쓰고 싶어 하셨고, 그러기 위해 이것저것 많이 찾아보고 패턴도 분석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극작가로서 어느 정도 정점을 맛본 인간이 다른 패턴을 쓰기 위해 노력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아요. 게다가 먹물이 먹물 안 든 작품 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한테 이 작품은 먹물이 자기 한계를 극복한 작품으로 의의가 있는 거예요. 학습과 노력을 통해서 일반인과 덕후들의 취향의 중간을 찾아냈다는 게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에게는 중요한 포인트지요. 레베카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레베카를 썼다는 사실 자체를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연출이 다 마음에 드냐면 그건 아니고 로맨스 코드가 강조가 되어서 원작의 어딘가 묘하게 굳어있는 느낌은 덜 났다는 게 아쉽긴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일반인 감성을 공부한 덕후라고요. 이런 요소 저런 요소를 넣으면 좋다는 건 다 실험을 해 본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게 한국 연출의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독일어를 잘 몰라서요. 그렇지만 하지만 이전에 본 정보보다 굉장히 로맨스 코드가 강했습니다. 일단 막심이 무릎을 꿇고 청혼한다는 게 굉장히 낯설었습니다. 뒤 모리에의 원작에서 내가 무릎 꿇고 청혼하지 않아서 실망했나 본데 결혼이 로맨틱한 줄 아느냐는 식으로 말하는 막심에게 굉장히 감명받은 게 있어서요. 대중적인 극에 성공했다면서 지나친 로맨스 코드를 지적하는 게 모순 같이 보이시겠지만, 음 대중=로맨스 팬은 아니지 않습니까. 뮤지컬이 한국에서 아무리 2, 30대 여성들이 주로 관람하는 장르라고 해도 그 나이때 여성들의 관심사가 모두 로맨스는 아니지 않나요. 그리고 저는 사람들이 뮤지컬/연극 했을 때 로맨스나 코미디만 떠올리는 풍조 죽도록 싫습니다. 로맨스 없으면 시나리오가 안 나옵니까?

게다가 여기의 막심은 너무 젊고 혈기왕성하고, 딱 외국인이 보는 영국신사 같지도 않다는 점도요. 류정한 배우 무척 좋아하고 이번 공연도 마음에 들었지만 깐깐한 40대 영국 귀족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로맨스 코드 때문에, 그런 요소도 많이 사라지지 않았을까 싶네요. 특히 류정한 배우가 제일 영국신사 답지 않았던 건 아닌가 싶기는 합니다. 특정 대사에서 류 배우님 욕이 제일 찰졌어요(...) 빡침을 표현하기엔 효과적이었겠지만 전형적인 영국신사가 말하기에는 뭔가...게다가 번역 누구죠. 막심이 왜 한결같이 반말을 쓰는 거죠. 물론 나이차이 표현하는 데 그게 좋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 반말이 막심을 더 어린 남자로 만들어버린 거 같아서요.

그리고 여기에서도 죽어라고 그림자가 가사에 등장하는 걸 듣고 결국 웃었습니다. 쿤체 씨는 그림자(Die Schatten) 없으면 극을 못 쓰시는 증상이 있다는 말이 괜한 게 아니었어요.  

 

뭐...화는 그만 내고, 류정한의 레베카 빙의 연기에 입이 벌어졌다고만 마무리합시다. 옥주현 씨는 본 중 제일 나았지만 저는 초혼송에서 레베카 소환 못 하면 일단 이야기를 하지 않는 더러운 원칙주의자입니다. 반 호퍼 부인이 극 중에 잘 녹아들어갔고 베아트리체와 가일스, 프랭크도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최민철의 잭 파벨이...전 언젠가 이 분이 연기하는 헤롯을 한 번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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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I'm your uncle!

신세계 연성이 사실 하나 더 있는데 그걸 가져오나마나 고민중입니다. 아무튼, 젬과 시집횽과 주고받은 대화에서 나온, 이자성네 아들 예뻐 죽는 팔불출 정청. 네타 있습니다.

 

 

3월 말 잡담

1. 남의 드림 카테고리를 신설했습니다.

저는 제 드림을 쓰라면 사무실에 거주하는 변종 귀뚜라미(네우로)나 타디스를 타 보고 싶지만 닥터가 사람 취급도 안 해 주는 저능한 인류 중 한 명(9대 닥터 기준?)밖에 못 쓰는 인간입니다. 아 더 나가면 그냥 정청이 사무실 금고(신세계)도 있네요. 저 자신에게 상냥한 세계 같은 걸 쉽게 상상하질 못하기 때문에 저렇습니다. 바꿔 말하면 나를 위한 세계를 글 속에서라도 만드는 걸 저 자신이 납득하기 어렵다고 해야 할까요.

대신 남의 드림을 써 드립니다. 저랑 친한 분들에게 선물하는 개념으로 드림을 쓰고 있어요. 문제는 드림 파는 캐릭터를 갖고 다른 연성을 못 한다는 거죠. 저는 자목이나 목일을 못 파는 팔자가 되었답니다. 아 물론 읽는 건 좋아해요. 제가 못 쓰는 것 뿐입니다. 저는 개연성만 맞고 글만 잘 쓰면 커플링을 가리지 않습니다.


2. 신세계 팝니다. ...아 저 조폭물 정말 싫어합니다. 할 일이 없어서 착한 사람들 등쳐먹고 사는 깡패를 좋아합니까. 그런데 어쩌다가 인생이 여기까지 흘러왔는지는 모르겠네요. 셋이 바라는 신세계가 오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인 거 같습니다. 그런 설정을 예전부터 좋아했지요.

그래서 하는 김에 이자성 신상을 좀 털어봤는데 여천중학교는 여수에 있는데 양평고등학교는 경기도에 있더군요. 이자성이 전남보다는 서울 경기 지역에 가까운 억양을 구사하는 게 이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게다가 금오지구대가 의정부에 있었고요. 중학교까지 여수에서 다니다가 중학교 때 즈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경기도에 있는 친척집에 가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눈칫밥 먹기 싫어서 얼른 군대에 가고 직업 구해서 독립하고 산 게 아닌가 하는 제 안의 동인설정은 여기서 나왔습니다. 여수 화교 출신인 정청이 이자성에 대해 전혀 몰랐던 이유도 여기 있지 않나 싶어요. 연고가 없으니 누구도 이자성을 기억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양평고등학교를 찾아봤어요. 이자성이 다닐 무렵에는 보통과, 농업과, 농기계과, 축산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자성은 농기계과를 나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정청의 중국어는 중국 깡패들 사이에서 엄청 웃기는 중국어로 통할 거 같습니다. 우리가 조선족이나 재일교포의 한국어를 어색하게 여기듯이요. 지금은 쓰지 않는 단어 같은 것도 잘 쓸 거 같고요. 물론 중국이랑 일 하면서 나날이 나아지고 있겠지만...


3. 요새는 황청을 파고 있습니다. 

아오미네가, 농구 문제가 해결되고 나니 평범한 10대로 보이는 부분에서 이 이야기는 스포츠물이라기 보다는, 스포츠라는 과정을 통해 자라는 10대들을 보여주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쿠로코가 테이코 시절을 극복하게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아오미네, 미도리마, 무라사키바라, 키세가 지는 과정을 통해 자라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카가미가 자기 한계를 깨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세이린 농구부가 함께 커 가는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애들은 마음고생을 하면서 자라는 거고, 그 과정에서 모순된 모습도 많이 보이고 헛발질도 많이 하는 거 아닌가 싶어요. 전에 지인분이 쿠로코 사고에서 모순점이 보인다고 지적하셨는데 저 역시 그런 면이 안 보이던 게 아닌지라. 모두가 함께 하는 농구라고 하지만, 어떻게 보면 팀 내에서 무시받기 싫었던 쿠로코의 에고가 더 크게 작용한 것 같고, 그걸 다 함께 즐기는 농구로 포장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안 든 게 아니었거든요.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자기모순을 갖고 그걸 녹여가는 과정이 성장인지라...아마 그런 면에서 저 생각을 하고도 쿠로코를 최애 삼았던 게 아닌가 싶긴 합니다. 어쩌다 차애 둘로 커플링을 파게 된 건지는...그래요 저번에 썼죠 네. 그 후로 황청황청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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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라이트]큰 숲 작은 집

사약을 좀 얻어마셨습니다. 에리 님 리퀘로 쓴 베른TS에바입니다. 레지먼트 쪽이 정리가 잘 돼서 군견조와 스승들이 모두 어느 숲 속 작은 집에서 산다는 설정입니다.



[사사에리]당신의 번역가

에리 님 리퀘로 쓴 사사에리입니다. 마인탐정 네우로에 나오는 사사즈카 형사와 에리 님 드림 커플입니다. 이 드림은 굉장해요. 사사에리로 앤솔이 나오는 드림입니다.

 

사사즈카는 큰 집게로 묶어놓은 A4 종이 뭉치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무릎에 놓인 사전을 보며 자판을 두드리던 에리가 깜짝 놀란 듯 고개를 들어 사사즈카를 쳐다보았다.
“벌써 다 읽었어요?”
“아니, 벌써가 아닌데…….”
불을 켜지 않아서 모니터에서 나오는 희미한 빛이 에리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보고 핸드폰을 켜서 시간을 확인한 에리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몰랐어요.”
서재는 이미 어두워서 모니터가 아니었으면 안으로 들어가다 넘어질 판이었다. 사사즈카는 불을 켰다. 형광등이 깜박이다 완전히 밝아졌고, 에리는 잠시 눈이 부신지 눈살을 찌푸렸다.
“저녁 먹어야지.”
“참 그러고 보니 먹는 걸 잊었네요. 어……그럼 저녁은요?”
이제 완전히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에리를 향해 사사즈카는 웃어보였다.
“난 간단히 먹었어. 그리고 이거.”
원고 뭉치 때문에 못 봤는데 한 입 크기로 뭉친 주먹밥이 접시 위에 몇 개, 그리고 물이 한 잔 있었다. 에리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요, 일 끝나고 왔는데 쉬지도 못하고.”
“아냐, 재미있었어. 안 쉬고 쭉 읽고 밥 챙겨 먹느라고 이제 들어온 거지.”
사사즈카도 주먹밥 하나를 집어 들었다. 에리는 주먹밥을 먹으며 마지막으로 고친 페이지의 인쇄버튼을 눌렀다. 이제 마지막 교정이다. 조금만 더 손을 보고 출판사에 원고를 넘기면 원고는 자기 손에서 떠나는 셈이 된다. 이번 책은 법의학에 관련된 책이다. 사사즈카가 아무래도 법의학에 대해 좀 알고 싶다고 작년쯤 지나가는 말로 한 마디 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에리는 아는 출판계 인사들에게 법의학 서적 번역할 일 있으면 꼭 자기에게 일을 달라고 부탁했다. 법이나 범죄심리 관련된 서적을 번역했었기 때문에 관련된 일이 들어오기도 한결 쉽기는 했다. 결국 어느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고, 에리는 기쁘게 일을 수락했다. 물론 필요하다면 사사즈카는 영어로 된 책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사사즈카 에이시에게 자신이 한 번 걸러서, 모국어로 된 글을 보여주고 싶었다.
“먹는 걸 까먹는 걸 보니 작업이 막바지긴 한가보네.”
“네. 참, 어땠어요?”
어제 저녁에 에리에게 이번에 새로 교정보는 원고를 미리 읽어보고 싶다고 먼저 말한 것은 사사즈카였다. 처음에는 자신의 관심분야라서 한 번 훑어보고, 에리가 용어에 대해 묻거나 하면 조언해 주곤 했었는데 요 최근에는 에리의 번역에 크게 관심을 보였다. 교정쇄도 1쇄부터 지금까지 모두 읽고 꼼꼼하게 조언해 주었다. 에리는 사사즈카가 자신의 번역을 좋아하는 걸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그 말을 직접 물어보기는 어려웠다. 그저, 자기가 하는 일이니 협조해 주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막연히 생각해 보았다.
“저번 거랑 비교해서는, 확실히 이쪽이 읽기 낫더라.”
“다행이네요. 애 많이 썼어요.”
“그리고 역시 용어는 그렇게 통일하는 게 나을 거야. 혹시 몰라서 우리쪽 검시의한테 물어봤는데 그게 낫다더라. 참, 저기 접어놓은 부분은 한 번 체크해 봐.”
원고를 들어 넘겨보니, 종이 귀퉁이가 접힌 부분에는 빨간 펜으로 메모가 적혀 있었다. 에리는 놀라 사사즈카를 쳐다보았다. 경시청 근무는 무척 바쁜 일이고, 경시쯤 되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말이 단순한 관용구는 아니다. 그런데도 퇴근 후의 황금 같은 시간을 쪼개서 원고를 봐 주었다.
“이걸 다 쓴 거예요?”
“응, 뭐……현장에 있는 사람이 감수하는 게 낫다고 하잖아?”
에리는 어쩐지 눈물이 날 거 같아 책상 위에 놓인 물만 마셨다. 목이 메였다. 간신히 인사말을 입 밖에 냈다.
“고마워요. 도움이 많이 됐어요.”
“아니, 오히려 내가 고맙지.”
에리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쪽 책은, 에리가 번역한 게 제일 잘 읽히거든.”
순간 주먹밥 접시가 바닥에 추락할 뻔 했다. 사사즈카가 아슬아슬하게 접시를 받아냈다. 에리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사사즈카를 보고 있었다. 손발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듯, 한참을 아무 것도 못 하고 서 있던 에리는 사사즈카가 주변을 다 정리하고 당황스러운 얼굴로 에리를 쳐다볼 때 즈음에야 겨우 말을 꺼냈다.
“제 번역, 좋아해 줘서 정말로, 고마워요.”
사사즈카는 에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사즈카 에이시 경시의 책꽂이 위에서 두 번째 칸에는 에리가 번역한 책이 꽂혀 있다. 맨 처음 번역한 책은 연쇄살인마의 심리를 분석한 책이다. 그리고 아는 사람의 소개로 번역한 판타지 소설이 한 권, 시리즈 물이라서 작가의 문장이 자꾸 변하는 게 어렵다고 했었다. 그 다음에 번역한 책은 일반 대중에게 민법에 대해 안내하는 책이었다. 그때는 형법 쪽을 번역하고 싶었는데 민법이라고 아쉬워 하는 에리에게 그럼 나중에 그쪽 하면 되지 않냐고, 일단 커리어 쌓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준 것이 사사즈카였다. 가장 손이 쉽게 가는 칸에 에리의 책을 꽂아두고, 틈 나면 보곤 한다. 에리가 그 책꽂이에 자기 책이 꽂혀있는 것을 보고 지었던 표정을 사사즈카는 잊지 못한다.
사사즈카는 책꽂이에 오늘 퇴근하는 길에 사 온 책을 꽂아두었다. 에리가 맨 처음 번역한 책의 2쇄가 오늘 나왔다.


나는 다만 당신의 문장가이고 싶다
-파블로 네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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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저스]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원이님 리퀘로 쓴 정배커플....인데 아시죠, 저 커플링 별로 의미없는 인간인 거.

 

 

호크아이가 백수가 되었다.
외계인 좀 섬겼다고 백수가 된 것은 아니다. 닉 퓨리가 그렇게 쪼잔한 상사는 아니다. 하지만 그 일이 아주 영향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어쨌건 한 번 배신해서 이쪽의 정보를 적에게 떠넘긴 것은 타격이 컸다. 뭔가 일이 생기면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도 소리지만, 호크아이 본인이 그런 것을 견디기가 갈수록 어려워졌다. 세뇌당해서 한 거니까 괜찮아, 라고 나타샤가 위로해 줬지만 그 위로도, 수많은 타인의 차가운 시선 앞에서는 점점 힘을 잃어갔다. 물론 위로해 주는 사람도 많았고 부당한 뒷소문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소문은 힘이 세서 수가 많은 쪽이 이기기 마련이다. 결국 못 견디고 사표를 쓴 것은 호크아이였다. 외압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결국 어느 날 불쑥 나타나 세상을 뒤엎어놓은, 뿔 달린 투구 쓴 외계인이 그의 퇴직에 큰 영향을 끼쳤다.
로키 생각만 하면 속이 뒤집어진다. 호크아이는 이를 갈며 종이상자 하나에 자기 짐을 쑤셔넣고 정리를 마무리했다. 사실 사무직도 아니고 본부 내에 짐이 많지는 않았다. 잡동사니 가 전부다. 아무튼 상자를 정리하고 국장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닉 퓨리는 서운해 하며 재취직 자리를 알아봐 주겠노라 약속했다. 호크아이는 국장의 호의를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다. 결국 또 어디에선가 말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닉 퓨리는 한숨을 쉬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뭐건 말하라고 해 주었다.
요원 생활이 그것으로 끝났다. 딱 종이상자 하나 정도인 직장생활이었나 싶어서 맥이 풀리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했지만 일단 당분간은 좀 쉬자고 생각했다. 정말로 그날은 쉬고 싶었다. 배달음식을 시키고, 맥주를 마시며 TV라도 보겠다고 생각하고 현관문을 열었더니,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머리께에 달린 뿔을 본 호크아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가.”
어떻게 들어왔는가 하는 물음은 무의미했다. 저 외계인이라면 못 할 게 없었으니까. 태연한 얼굴로 호크아이의 소파에 앉아있던 로키는 표범처럼 등을 쭉 펴고 이쪽을 돌아보며 씩 웃었다.
“왜 그리 죽상인가.”
“남이사 죽상이건 말건. 나가라. 오늘은 너랑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아, 일을 그만뒀다지?”
“어떻게 알-”
호크아이는 하던 말을 멈췄다. 그 정도는 이 외계인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 온 이유는 뻔하다.
“너 나 약올리려고 왔냐?”
“그럴 리가. 이게 약오르는 일이야?”
의외로 로키는 굉장히 진지한 얼굴로 반문했다. 호크아이는 말문이 막혔다. 당연한 것을 설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했다.
“그, 그야 약오르지.”
“어떤 부분이?”
“사람은 일을 안 하면 먹고 살 수 없으니 당장 생활이 곤란해진다. 돈이 걸린 문제잖아. 그리고 역시, 일을 하지 않으면 중요한 게 사라지는 느낌이 들지 않겠어? 사회인으로서의 자부심 같은 것 말이다.”
로키는 우아하게 다리를 바꿔 꼬았다.
“까짓거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리 수선을 떠나. 그냥 일을 하지 않는 것 뿐이잖아.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
아, 그래. 이 자식이 고향별에서 둘째 왕자랬나. 호크아이는 태생부터 다른 이 외계인이 자기가 하는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로키는 진지한 얼굴로 무언가 생각하다, 그거다, 하는 얼굴로 호크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 인간.”
“너 내 이름 까먹었지……왜?”
“나한테 취직하지 그러냐.”
“뭐야?”
너무나 어이없는 제안에 호크아이의 눈이 둥그래졌다. 로키는 의기양양하게 말을 이었다.
“아스가르드에서는 우수한 궁수를 높이 산다. 나 역시 그러하다. 나의 군대로서, 너는 나에게 속해서 일을 하는 게다. 어떠냐. 영광스럽지 않아? 내 군대의 선봉장으로 써 주마. 월급도, 자긍심도 모두 문제 없이 채워지는 거지.”
뭐가 문제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 호크아이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패였다.
“월급이 문제냐? 달라는 대로 주마. 내 군대의 선봉장 이상 가는 영광스러운 자리는 없으니 자긍심도 채워지지. 뭐가 문젠가. 아, 아스가르드에서 사는 게 문제라면 너에게 미드가르드의 군대를 통솔할 영광을 주마.”
영광을 준다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태어날 때부터 미국 시민이라 왕조국가의 신민의 사고방식 따위 이해할 생각도 없는 호크아이의 이마에 힘줄이 하나씩 둘씩 서기 시작했다. 로키는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호크아이를 쳐다보았다.
“뭘 더 바라는 거지, 인간?”
“평생 취직 걱정 안 하고 산 유한계급 따위!”
자본주의 사회에서 찌들대로 찌든 백수의 분노가 폭발했다. 애초에 취직을 거절한다는 건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게 가장 화났다.

 

[쿠로바스/황청/]남자라면 위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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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23일

닉네임 돌려놨어요.

그, 쿠로바스 파는 분 중 저랑 닉네임 같으신 분이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이름을 살짝 바꿔 썼는데 역시 익숙한 게 낫지 싶고 그래서...서치에도 본 닉으로 등록해 뒀어요. 저는 슬레/봉신->반지의 제왕->불꽃의 미라쥬와 성우->엘리자베트->닥터후->더블오->은혼->쿠로바스와 언라 루트를 탄 덕입니다. 슬레는 제르리나 밀었고 봉신은 천화 최애, 반지의 제왕에서는 레골라스 팬덤이었던 것 같으며, 어려서 좋아하던 성우는 이노우에 카즈히코, 나카타 죠지, 하야미 쇼고 요즘은 미키신이 무조건 좋습니다. 세키 토시히코는 진리죠. 

뮤지컬 좋아하는데 레미즈, 엘리자베트 좋아합니다. 올렉 죽음을 어미오리로 삼고 있으며 공연 보는 거 좋아합니다. 정극이 좋아요. 닥터후에서는 9대 닥터를 좋아합니다. 더블오에서는 록온을 무척 사랑해서 록온 까는 책을 세 권인가 냈었고요...은혼에서는 긴토키 좋아했었습니다. 쿠로바스에서 좋아하는 건 쿠로코, 아오미네, 키요시, 키세, 휴가입니다. 언라는 군견조를 좋아해서 걔네 중심으로 플레이하지요. 

[언라이트]군인복무규정을 준수하시오

트위터에서 군견조 머리를 군바리처럼 밀고 싶다시던 에리 님의 말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잠에서 깨어난 아이자크의 눈에 가장 먼저 비친 것은, 결박당한 자신이었다. 잠시 후에야 그것이 거울임을 깨달은 아이자크는, 옆구리에 차고 다니는 총에 손을 가져가려고 했으나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묶여있는 모양이었다. 

"몸을 움직이면 다칩니다. 가만히 계십시오."

뒤통수께에 차가운 금속이 닿아있다는 것을 뒤늦게 눈치챘다. 습격인가, 아이자크는 인기척부터 살폈다. 자신의 뒤에 하나, 그 뒤에 하나, 그리고 문가에 하나. 거울에 비친 녀석들은 모두 얼룩덜룩한 카키색 무늬 옷에 군화를 신고, 머리에는 창이 달린 모자를 쓰고 있었다. 이놈들은 살상훈련을 받은 정규군이다, 그렇게 판단한 아이자크는 실내에 묶여있는 사람이 자신 뿐이라는 것도 깨닫고, 손끝이 차가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에바리스트는, 에바는 어디 있지. 

아마도 같이 잡혀왔다면 그의 친우이자 상사이자 전우는 다른 곳에 있을 것이다. 고급 정보를 빼내기 위해 특수한 고문을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반사적으로 생각한 아이자크는, 생각하기를 멈추었다. 자신만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 다음은 에바가 알아서 하겠지.그냥 입을 다물고, 고문을 견디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다. 여차하면 놈들을 모두 찢어발겨서라도 나가서 에바를 구하면 된다. 그렇게 결심하고 아이자크가 심호흡을 하자, 바로 등 뒤에 서 있던 녀석이 입을 열었다.

"긴장하지 마십쇼."

"바르트 소령님은 어디 계신가?"

"바르트 소령님이라면 그 흑발 소령님 말씀하시는 거군요. 안심하십시오. 좀 더 좋은 시설에 계십니다."

"......"

"게다가 먼저 들어가셨으니 대위님 나가실 땐 다 끝났을 겁니다."

"끝나?"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지? 아이자크는 필사적으로 생각하려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에바가 판단하고 자신이 움직인다. 그러나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 에바는 괜찮을 거다. 하지만 끝난다니.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등 뒤의 목소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고작 이발입니다. 사회에 있을 때 미용일 오래 해서 바리깡 정도는 껌이지 말입니다. 긴장하지 마십쇼"

어? 아이자크가 뭔가 잘못되었닥 느낄 때 목에 수건이 둘러지고, 그 다음에 분홍색 긴 가운 같은 것이 둘러졌다. 뒤에 서 있던 모자에 가로줄이 네 줄 들어간 녀석이 씹듯 내뱉았다.

"군바리는 머리밑 살이 보이도록 씨원-하게 미는 게 최고지 말임다. 그럼 밀겠지 말임다." 

금발 한 줌이 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바람이 서늘하게 파고드는 머리카락에 손을 댔다. 까슬까슬한 게 꼭 선인장 같아서 아이자크는 울상을 지었다. 내가 그래도 장교인데 머리를 이렇게 밀어버리나? 어느 나라 군대야 여긴. 그러나 아이자크는 머리를 빡빡 깎은 에바리스트를 본 순간 웃느라 자기 머리에 대한 것을 모두 잊었고 잠시후엔 에바리스트한테 얻어맞느라 머리에 대한 것을 또 잊었다.

여담인데 시원하게 머리를 민 에바리스트에 대한 아이자크의 감상은, 두상이 동글동글했다, 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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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까지 앞으로 5분

12월 21일에 왜 지구가 망하지 않나 하고 억울해 하며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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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012년 : 최악

아니 정말로; 안팤으로 아주 일이 많았습니다. 오프와 온에서 번갈아가며 팡팡 터져 주시는데 아주...

뭐 어쨌건 다시 블로그도 열었고 책도 낼 궁리를 하게 됐으니 아마 한 입으로 두말한다고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을 거 같군요 하하하. 아니 뭐 하던가 말던가.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 정말로 연성러 때려치울 생각이었어요. 블로그도 접고 써놓은 글도 없애기도 했고...원인이야 2011년이었고, 그 후로 행사장에서 어이없는 걸 봐서 정말로 쓰고 싶지도 않고 뭘 새로 파고 싶지도 않았어요. 그러다 쿠로코의 농구를 보고 나서 뭔가 마음에 엄청나게 와 닿은 게 있어서요. 이걸 파고 있긴 해도 스포츠물로서 획기적이라던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무협물 맞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대사 하나를 건졌기 때문에 저는 이걸 올해의 만화로 꼽습니다. 좋아하던 것이 싫어지는 것은 참 슬픈 일이라는 대사요. 당시 저에겐 이 말이 정말로 필요했습니다. 그 덕분에 어떻게 기어나오고 있어요.

사실은 지금까지도 어수선하고, 하는 일들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고, 갈피도 못 잡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뭐가 되었건 2011년 후반과 2012년에 비하면 아마 나을 거라는 거죠.

 

2012년의 만화 : 샌드맨. 아니 다른 건 아니고 저 요새 아메코믹도 봐서...엑퍼클 이후로 그쪽도 조금씩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아이가 항상 덕후 기본 교양이라고 말하던 샌드맨에 손을 대게 된 것이죠.

....닐게이..아니 닐 게이먼이 스토리를 썼으면 당연히 좋을 거라는 생각을 왜 못 한 걸까요 저는? 왜 이걸 이제 봤을까요?

 

2012년의 청승 : 시드니 칼튼-류정한

류드니 칼튼은...류님 그거 엘리자베트에서 하셨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코트 입고 무대를 배회하는데 아 진짜 그 코트간지가 죽음 할때 나오셨으면 얼마나 좋아...그렇지만 다 됐고, 시드니 칼튼을 그렇게 표현하는 류정한이 정말 취향이었지 말입니다.

제가 류정한의 시드니 칼튼 때문에 두 도시 이야기 책도 읽습니다. 별들아 한 잔 해라는 대사는 그러니까 록온 녀석이 치던 내가 우유 쏜다 내지는 세츠나 너를 쏘고 싶다와 비슷한 거죠. 아 청승맞다 시드니.

 

2012년의 막장 : 니벨룽의 반지

겐지 이후로 이런 개족보는 처음 봤습니다. 아니 저도 신화의 근친상간에 대해선 알아요! 웃자고 하는 소리라고! 바그너한텐 미안하지만 예술성이고 음악성이고 바그너 오페라의 특수함이고 뭐고 간에 ...그래요 막장 스토리부터 들어와서 괴로웠어요. 게다가 밤새 그놈의 미친 높은 음역으로 부르는 노래를 줄창 들어보세요. 누구라도 괴로울 걸...전 오페라 별로 안 듣고 안 봐서 더 그렇고 말이죠.

 

2012년의 존잘님 : 쿤사마

나 쿤사마한테 사인 받은 여자요.

 

2012년의 덕질 : 이 블로그에 있는 게 다죠 뭘(으쓱)

 

2012년의 쳐묵쳐묵 : 담금주(...)

이제 국화주는 누구에게 먹여도 맛있다는 말을 들을 자신이 있고, 내년 목표는 막걸리와 압생트입니다.

술은 좋아하는 사람이 맛있게 먹으려고 담그는 게 최고라고 생각해요. ...하긴 뭐 안 좋아하는 사람이 술 담글 리도 없겠지만.

 

2013년 목표 : 뭐가 되건 회지를 낸다.

그리고 장기목표가 생겼어요. 인세 받는 사람이 될 겁니다.

오늘의 노래

오다니 미사코(小谷美紗子) 주간을 맞이하여 몇 가지 곡을 돌려듣고 있어요. 저를 오래 보신 분은 제가 종종 오다니 미사코의 불의 강을 포스팅하는 걸 보셨을 겁니다. 아니 여기서 말고 예전 블로그에서요. 아무튼 참 마이너한 가수인데 가사가 참 내공이 깊어요.

아무튼, 오늘은 노동요가 필요한 김에 그걸 공유하고 싶어서 파일 붙이러 왔습니다.

 오다니 미사코 하면 많이들 알고 계실 불의 강(火の川)입니다.

여름이 남기고 간 빈 깡통처럼 바다에게도 미움받는 거야(夏が置いていった空き缶の様に 海にも嫌われるのよ)라는 부분을 좋아합니다. 일본어 수동형의 묘미를 잘 느낄 수 있는 문장이죠.

 

 늑대(オオカミ)입니다. 졸업식 이야기가 나와서인지 듣고 있으면 쿠로바스 버닝이 하고 싶습니다.

"나는 모르는 당신의 어린 시절, 당신이 누군가에게 두 번째 단추를 줬을 때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요/私の知らない君の少年時代 君が誰かに 第二ボタンをあげたとき 私はどこにいたのだろう" 이 부분이 마음에 들어요.

 

 같은 가수의 이름도 없는 자(名も無き人) 입니다.

정신없는 일이 끝나면 해석해서 올릴게요. 사실 좀 혼이 빠져나갈 일이 생겨서 정신이 없습니다.

그리고 참(真)...이라고 해야 하나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하나. 사실 가사만 놓고 보면 어째 좀 민중가요 같기도 하고 좀 묘하다 싶지만 사람 마음을 끄는 곡입니다.

일어 가사는 쓰기 귀찮고, 제가 좋아한 부분은 "많은 사람들이 일을 구하며 새파란 얼굴로 집 앞의 문을 두드리는 이런 시대의 소용돌이에 당신은 내던져졌습니다" 하는 부분인데 어, 네 이 노래는 오다니 미사코가 아는 사람이, 회사에서 불합리한 일을 당한 사람들 대신 항의를 하며 사표를 낸 일이 있었는데 그걸 바탕으로 가사가 나왔다더라고요.

 

사실 저 오늘 짐을 40kg쯤 날랐더니 팔이 아파서 타자가 안 쳐져서 일이 안 돼서 딴짓하며 노동요로 버프 거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