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상, 사실 내가 널 좋아하는지 미워하는지 잘 모르겠지만-사람들이 내가 쓰는 글 네타 듣고 당신 최애캐가 긴상이 아니라고 그런다- 아무튼 축하는 해 주마.
어느 청명한 가을밤의 일이었다. 카츠라가 긴토키에게 친구로서의 우정이다 할복은 허가해 주마 무사답게 죽어라 하며 화를 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 그 자리의 모든 양이지사들은 자던 잠을 깨어 공터로 달려갔다. 과연 아니나 다를까, 횃불이 환한 공터에서 한밤중에도 단정하게 갑주를 입은 카츠라가 긴토키를 꿇어앉혀놓고 화를 내고 있었다.
"어떻게 양이지사 된 자가 천인의 문물을 가까이 한단 말인가! 모범은 못 될 망정!"
"우리 게릴라거든? 군대도 아니고 뭔 모범이야. 까놓고 내가 상사냐? 부하가 있어? 그런데 뭔 모범이야 모범은. 다 지 좆대로 까면 되지."
"또 품위없이 떠드는구나. 게릴라라도 혁명군은 규율이 필요하다!"
"아오 좀! 그래서 그 규율하고 이게 뭔 상관인데?"
"중요하지. 너는 천인을 배격하는 사상을 가지고 전장에 임하는 것이 아니냐."
"천인은 천인이고! 이건 이거지!"
양이지사들은 평소와 다름 없는 싸움인가 하고 물러나려고 했으나 카츠라가 너무나 흉흉했고, 긴토키도 평소보다 필사적이어서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천인의 문물이라는 말이 신경이 쓰였다. 천인을 싫어하는 긴토키 씨가 정말로 천인의 문물에 손을 댔다고? 그때, 한 젊은 양이지사가 소리질렀다.
"긴토키 씨 머리가! 머리가 이상하다!"
그의 손가락을 따라 긴토키의 머리를 쳐다보니, 세상에, 이 무슨 기적 같은 일이.긴토키의 하얗고 지 멋대로 곱슬거리던, 360도 전방위로 꾸불거리던 머리카락이, 찰랑찰랑하게 가라앉아있었다. 아주 곧게. 우와 찰랑거린다. 무슨 주술이냐, 저게 천인들이 들여온 미용술인데 곱슬머리를 찰랑거리게 펴준다더라 하는 소리가 퍼져갔다. 긴토키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 자리의 모든 사람-카츠라를 제외한-들의 시선이 긴토키의 머리에 꽂혔다. 심지어 늦게 연락을 받고 칼을 들고 달려온 다카스기마저 어이없는 표정으로 긴토키의 머리카락을, 어울리지 않게 찰랑대는 머리카락을 쳐다보았다. 긴토키가 사람들을 째려보자 다들 눈을 내리깔았지만-다카스기를 빼고- 긴토키는 당당한 자세를 회복하고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구경 났냐, 눈들 깔아라?"
"긴토키!"
"아, 그리고 머리 좀 폈기로서니 뭐! 동도서기 모르냐?!"
"오랑캐의 기술을 인정함은 혼을 파는 걸세!"
"그렇게 꽉 막히니까 안 되는 거다. 인정할 건 인정해!"
"인정한다고 쳐도, 이 시국에 고작 머리카락을 바꾸기 위해 몰래 천인에게 머리카락을 맡기는 게 말이 되냐?"
여기서 많은 양이지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긴토키는, 잠시 찔리는 표정을 지었으나 잠시 후 아주 당당하게 허리에 손을 얹고 외쳤다.
"머리는 지구인이 해 줬다!"
"쓸데없는 데서 당당하지 마라! 내가 부끄럽다!"
"나도 평소에 너 부끄러우니까 피장파장 아니냐?"
"뭣이 어쩌고 어째?"
둘의 싸움은 지루한 소모전이 되어 갔다. 어이구 그러면 그렇지. 양이지사들은 모두 어이없는 얼굴로 잠자리로 들어갔다. 사실 그들은 긴토키도 카츠라도 모두 부끄러웠던 것이다. 부끄러움은 왜 나의 몫인가, 라는 성현의 말씀이 정말 옳다고들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은, 진지를 철수하고 이동하는 날이어서 다들 아침부터 짐을 싸기 바빴다. 긴토키는 설렁설렁 천막이며 검이며 식량이며 대충 주워담다가 카츠라한테 걸려 난리를 쳤다. 카츠라가 뭐 하는 짓이냐고 타박하자 땀 빼면 머리 젖고 머리 젖으면 머리 편 게 도로 돌아간다며 신경질을 냈다. 카츠라가 머리에 물을 한 동이 부어주마 하고 이를 갈았으나 긴토키는 매우 행복한 얼굴로 짐을 꾸려 행렬의 맨 앞에서 걷다 다시 뒤로 갔다 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을 괜히 자랑하려는 듯 괜히 이동하는 사람들 앞을 왔다갔다 하면서 머리카락을 쓸어보였다. 사람들은 짜증난 표정을 짓기 시작했고 보다못한 다카스기가 나섰다.
"긴토키, 오늘도 바보짓이냐."
"오 다카스기. 보이냐 이거? 찰랑거리지?"
긴토키는 보란 듯 머리카락을 흔들어보였다.
"머리카락이 찰랑거리는 게 그렇게 자랑할 일이냐?"
"뭐?"
다카스기는 웃겨 죽겠다는 긴토키에게 말했다.
"남자가 겉모습 따위에 신경써서 뭘 하냐. 긴토키 너도 참. 그냥 하던 대로 해라."
"넌 직모니까 그러겠지!"
"그게 뭐 좋냐? 난 잘 모르겠다. 차이도 잘 모르겠고."
말과는 달리, 제대로 감지 못하고 다듬지 못해도 언제나 찰랑거리는 갈색 직모를 일부러 자랑하듯 흔들어보이고 다카스기는 걸어갔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 마디를 던졌다.
"아, 그리고 머리 펴도 안 어울린다. 너 거울은 보냐?"
"저새끼 저거!"
긴토키가 다카스기를 한 대 떄릴 기세로 달려갔으나 다카스기의 뒤를 따라가던 귀병대원 몇이 앞을 가로막았다.
"우리 대장 저새끼라고 부르지 마십쇼. 기분나쁩니다."
"아오 이놈이고 저놈이고!"
긴토키는 기분나쁜 표정으로 길 옆에 있는 소나무를 세게 걷어차곤 발을 잡고 폴짝폴짝 뛰었다. 아픔이 가셨는지 뛰기를 그만두더니 한숨을 쉬었다.
"아 불공평하잖아! 누구는 돈 안 들여도 찰랑거리는 직모고 누구는 돈 쳐들여야 이 머리고!"
"그치만 돈 들이면 펴지잖습니까. 좋은 세상이에요. 너무 화내지마십쇼....어라?"
큰 짐을 지고 산길을 한참 걸었고, 괜히 자랑하느라 여기저기 왔다갔다 하느라 땀을 더 뺐고, 다카스기한테 화를 내느라 땀을 더 흘렸다. 귀병대원은, 자기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설명했다.
"긴토키 씨, 앞머리가 어째 좀 꾸불거립니다?"
"뭐? 착각하지 마! 니 마음이 굽어서 내 머리도 굽어 보이는 거다!"
긴토키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마음에 걸렸는지 계속 앞머리를 잡아당기면서 걸어갔고, 휴식시간에는 물가에 가서 얼굴을 비춰보며 머리가 뿌리부터 곱슬거리는 거 같다는 둥 미용사가 사기를 쳤다는 둥 툴툴거렸다. 듣다 못한 카츠라가 한대 콱 걷어차러 갔으나 머리 펴고 이틀 간은 물 맞으면 안 된다고 했다고 도로 카츠라를 잡아먹을 기세로 화를 냈다. 카츠라가 혀를 찼다.
"그렇게 직모가 좋으냐."
"당연하지. 즈라 너 같은 놈들은 내 마음을 몰라!"
하필 찰랑거리고 머릿결 좋기로 유명한 두 놈-게다가 한 놈은 장발이기까지 했다-이 친구인 긴토키는 그저 서러웠다.
"그래 뭐, 젖지만 않으면 돼. 젖지만."
하늘은 긴토키에게 관심이 많은 모양이었다. 잠시 후, 소나기가 내렸다. 아주 주룩주룩 내렸다.
엄청난 소나기였다. 양이지사들은 산 속에서 비에 고스란히 노출되었고, 긴토키는 뭐라도 꺼내 머리를 가려보겠다고 난리를 쳤지만 뭘 뒤집어써도 비는 옷을 적시고 짐을 적시고 머리카락을 적셨다. 소금자루를 이고 가던 사람 몇이 난리를 쳤고, 검이나 무기가 비에 젖을까봐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긴토키는 무사의 영혼과 같은 검이고 뭐고 갑주를 벗어 머리카락을 가리기 바빴다. 카츠라가 혀를 차거나 말거나, 다카스기가 대놓고 웃거나 말거나 머리카락만 가렸다. 그러나 별 소용은 없었다. 긴토키는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홀딱 젖었고 그 결과 비가 그쳤을 때, 그 소중하고 소중한 머리는 원상복귀되었다.
꼬불거리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우는 긴토키에게 아무도 동정의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그리고 그 후 긴토키는 머리를 펴는 것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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