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원 님 리퀘로 받았던 글입니다. 찰스와 에릭이 나오는 글이라고 하셔서 선생노릇하는 찰스 이야기 써 드리기로 했는데 사실 여기 나오는 찰스가 선생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늦었지만 8월 2일 생일도 다시 한 번 축하드려요.
찰스 F. 자비에 교수의 수업은, 교수가 휠체어를 밀고 교실에 들어오며 교실을 한 번 둘러본 다음 입을 여는 것으로 시작한다. 대개 내용은 늘 다르다. 잠이 안 올 땐 운동을 하는 게 좋단다, 머리가 아프면 잠시 쉬렴, 예습을 안 해왔다고 뒤에 숨을 거 없다. 난 과제가 있다고 분명히 이야기했단다. 걱정이 있으면 교장실로 오너라, 일단 신경 쓰이더라도 마음은 비우는 게 좋아, 이와 같은 이야기이다. 누구에게 하는 이야기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수업이 끝나고 나면, 꼭 한 명 정도는 있다. 밤에 학교 주위를 달리는 학생, 멍하니 바람을 쐬는 학생, 머리를 긁으며 교과서를 펴는 학생, 눈치 보며 교장실로 가능 학생 등이. 자비에 교수의 ‘처방’은 유명한 편이다. 어떻게 저게 가능할까에 대해서는 학생 중 아무도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교수님은 강력한 텔레파스니까, 우리 마음쯤 읽는 건 어렵지 않을 거라고 학생들은 생각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지내던 어느 날, 학생 하나가 교수님은 역시 강력한 뮤턴트라서 우리 마음쯤 읽는 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을 했을 때, 역시 텔레파스인 한 학생 하나가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아무 것도 읽지 않는다고 했다. 학생들은 믿지 않았다. 그러나 텔레파스인 학생들이 너도 나도 이의를 제기했다. 우리가 교수님의 힘을 느끼지 못하는 걸 봐선 읽지 않으시는 게 분명하다고. 그래서 읽는다,와 읽지 않는다, 두 파로 학교가 갈라져 학생식당을 점거하고 치열하게 논쟁중인 토요일 저녁이었다. 창을 뒤로 하고 책상에 걸터앉은 매그니토는 사건의 전말에 대해 듣고 키들키들 웃었다. “정말 안 읽나?” 휠체어에 앉아 서류를 살펴보던 찰스 F. 자비에 교수, 프로페서 X는 피식 웃었다. “벗이여, 이런 말이 있지. 내가 모르는 책은 세상에 없는 책이다. 그러니 나도 읽지 않은 것이나 같다네.” 매그니토가 프로페서 X 쪽을 돌아보았다. 헬멧 안에서 두 눈이 재미있다는 듯 번쩍거렸다. “음흉해졌군.” “관록이란 거지. 다수의 인간을 상대할 때는 어느 정도의 처세술과 허세가 필요한 법이네.” 프로페서 X가 어깨를 으쓱했다. “난 이제 막 선생이 된 풋내기니까.” “굳이 그런 트릭을 쓸 거 있나. 많은 인간이라면 좀 더 쉬운 방법이 있지 않나.” 매그니토가 말했다. “나는 많은 인간을 다루는 법을 약간은 알지. 자네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몰라도.” 프로페서 X가 짧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이런, 이봐. 자네는 우리 학교의 적이네. 나한테 교육법에 대해 가르친다고 내가 듣겠나.” “들어주면 나는 편하고 좋지.” “자네 농담이 늘었어.” “이 또한 관록으로 봐 주면 감사하겠네.” 매그니토는 책상에서 내려와 우아하게 절을 했다. 프로페서 X가 박수를 쳤고 두 사람은 무슨 사교장에서 부채를 부치던 18세기 여성들처럼 잠시 매우 우호적인 표정으로 서로 웃어보였다. 갑자기 프로페서 X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사실 거의 읽지 않네.” “흐음.” 매그니토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그럴 거 같았어.” “그런가?” “하지만 쉽지는 않았을 텐데.” “아니야. 그렇지도 않네. 내 눈을 피하는 건 과제를 안 했거나 뭔가 빼먹었다는 뜻이지. 조금만 추리해 보면 답이 나와. 잠을 못 자서 눈가가 푹 꺼진 것도 이유는 몇 가지고. 평소 그 애가 뭘 하고 다니는지 생각해보면 답도 나오지.” 프로페서 X는 온화한 표정으로 웃었다. 자신만만하던 유전학박사 찰스 자비에의 얼굴과는 다른 종류의 자신이 있는 얼굴이었다. 매그니토가 그 얼굴을 한참 쳐다보았다. “자네 참 사람이 나빠.” “어디가?” “자네 학생들은 자네로 인해 행복하겠지만, 자네로 인해 슬퍼지겠지.” “과찬이군. 난 그런 사람이 못 돼.” “아니, 내 말 믿게.” 매그니토는 손을 들어 힘을 쓰는 자세를 취해보였다. 그 방에 철로 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하는 행동이었고, 프로페서 X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이 자네를 이기면 되는 문제 아니겠나.” “이상한 데서만 자신만만하군.” 둘은 그저 피식 웃었다. 18세기 궁정의 예의범절 같은 묘한 웃음이 떠도는 밤이었다. 아직 학생들이 논쟁을 끝내지 못했는지 식당 쪽에서 떠들썩한 목소리가 들렸으나 그 방안에 효력을 미치지는 못했다. 둘은 웃으며 쓸데없는 이야기를 잠시 나누었고, 매그니토는 조용히 사라졌다. 그리고 그제서야 프로페서 X는 휠체어를 밀며 방 밖으로 나갔다. 이제 안전해졌으니 아이들을 재우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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