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소행성이 떨어진다. 누구도 그 사실에 대해 언급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모두가 그것을 알고 있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깼을 때 아주 자연스럽게, 오늘은 뭘 챙겨입고 출근을 할까, 아침엔 밥이 좋을까 빵이 좋을까를 생각하듯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일주일 뒤에 지구에 소행성이 떨어진다. 인류는 사라진 종이 될 것이다. 그 사실에 동요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아무도 없지는 않았는데 이제는 정말로 아무도 없다. 성급하게 자살하는 사람이 꽤 있었고 더 성급하게 다른 사람들을 붙들고 같이 죽자고 애원하는, 가끔 강제로 싫다는 가족이나 연인을 데리고 함께 죽은 사람도 꽤 있었지만 며칠이 지나자 죽을 사람이 다 죽은 세상은 평온했다. 처음부터 일어날 일이었다. 그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 역시 학교에 가고, 회사에 가고, 미원 범벅인 점심을 먹고, 만원전철에 시달리다 그냥 자연스럽게 떠올린 것이었다. 누구나가 그랬다. 아주 평온한 하루가 이어졌다. 다들 평소와 똑같이 일하고 싸우고 짜증내고 화를 내고 투덜대며 살았다. 그저 오늘도 내일도, 끝없이 계속될 것 같은 나날을 보내고 휴일에는 죽은 듯이 자고, 별로 친하지도 않은 친구를 만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애인과 자고, 다시 월요일이 돌아오자 짜증을 내며 출근하고 등교하고 일했다. 그리고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 화요일인 오늘, 온 세상은 조용하다. 누구도 출근하지 않았고, 어떤 가게도 열려있지 않다. 창밖을 내다봐도 길에는 아무도 없다. 지구 종말까지 앞으로 14시간 남짓. 그러나 이미 지구는 이미 거대한 무덤이다. 우리 모두 그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평온하게, 마지막으로 짧은 휴식을 누리며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이 역시 누구와도 말해보지 않았고 누구도 입밖에 꺼내지 않았던 말이다. 더 이상 평온하게 일상을 유지할 힘은 없지만, 살려고 발버둥칠 힘 또한 없었다. 발버둥치던 사람들은 이미 모두 죽었다.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예정된 끝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모두가 시체처럼 끝을 기다리는 세상 따위는 보고 싶지 않았을 거다. 그들은 그런 점에서 매우 통찰력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미래는 없을 것이다. 그럴 바에야 어떤 식으로 끝나더라도 그저 빨리 끝나는 게 낫지 않을까. 아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우리 모두 지쳤다. 그러니 무덤에서 조용히 쉬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로 무덤 속에서 하루를 보냈다. 14시간짜리 무덤은 의외로 짧았다. 창문을 닫고 커튼을 치고, 빛이라고는 들어오지 않는 방에서 낮잠을 잤다.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핸드폰도 꺼진 방은 매우 조용하고 어두웠다. 해가 질 때 일어나 창문을 열고, 마지막 노을을 감상해준 다음 냉장고 안을 털어서 할 수 있는 한 가장 맛있는 걸 만들어 먹고, 그냥 멍하게 시간을 보냈다. 정말로 망하나보다 생각하니 어쩐지 감회가 새롭다고 해야 할지, 아니 굳이 따지자면 싱숭생숭하다고 해야할지, 묘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방금, 벨이 울렸다. 이미 하루가 다 끝나가는 시점이었다. 버스가 다닌다고 해도 막차일 시간인데 이 시간에 누가. 이제 종말까지 얼마 남지도 않은 이 시간에 문을 두드리다니 상식 밖이지 않은가. “……누구예요?” “저예요.” 초인종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가 익숙했다. “10분도 안 남았는데 무슨 일이에요?” 이제 와서 어떤 은원도, 어떤 채무도 약속도 중요하지는 않을 텐데. 왜 이 시간에 나를 찾아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초인종 밖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들떠 있다고 해야 할지, 긴장하고 있다고 해야 할지, 아무튼 설명하기 어려운 미묘한 분위기를 담고 있었다. 나는 목소리를 따라 긴장했다. “할 말이 있어서 왔어요.” “아마 그렇겠지요. 어서 이야기하세요. 시간 없어요.” 문 밖의 얼굴은, 희미한 긴장을 띠고 있었다. “문 열어 주세요. 얼굴 보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귀찮아요. 그냥 이야기해요.” 인터폰의 흐린 화면으로도 얼굴에 비친 실망감은 넉넉히 읽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도대체 이제 와서 무엇에 실망한다고.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물어보기도 귀찮았다. 심호흡을 하고, 문 밖에서 뜸을 들이던 목소리는, 한참만에 입을 열었다. “같이 죽어요.” “네?” 다 같이 죽는 마당에 죽자는 소리는 그다지 재미있지도 기발하지도 않다. 그 부분을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입을 열기 전, 목소리는 다음 말을 이었다. “같이 죽자고요. 프로포즈 하는 거예요.” “……모든 게 끝나는 마당에?” “망하건 말건 그게 중요해요?” 다 끝나가는 마당에 새로운 시작을 이야기하는 정신나간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기는 하는 구나 싶어 그냥 아연해졌다. “왜 이제 이야기해요?” “죽기 전에 아무 말도 못 하면 억울해서 그럽니다!”
"이제 와서 그게 중요해요?"
"아까 말했잖아요. 아니, 그게 아니지! 아, 진짜 이걸 뭐래야 돼. 아니 망하니까 더 문제죠!"
인터폰을 향해 뭐든 던져버리고 싶었다. 벨이 구급차 사이렌처럼 요란하게 울렸으나 받지 않았다. 너무나 시끄러워 부숴버리고 싶었다. 문 밖의 목소리는 의외로 확고하고 힘이 있어서, 나는 아, 다만 1분이라도 더 있었더라면, 하고 생각했다. 반갑거나 기뻐서가 아니다. 이제 정말 얼마 안 있으면 모든 게 끝날테고 시간이 없어서, 못 하는 건데, 시간만 더 있었으면, 이 인간을 죽여버리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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