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성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작년 8월 젬의 100번 달성표 보상 연성으로 쓴 것으로 올리는 걸 까먹었다가 이제 다시 올리는 것입니다 쩜쩜쩜
쿠로코는 골목길을 헤매고 있었다. 분명 이 길이었을텐데. 비슷하게 생긴 집들이 많은 건 둘째 치고, 선배가 집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는 방식이 이상했다. 어느 동 어느 거리 몇 번지가 아니고, 역 앞에 있는 맛있어 보이는 꼬치구이집을 따라가서 애들이 제일 많은 놀이터를 지나서 어쩌구라니 도대체 집을 찾아 오라는 건가 빙빙 돌려 말한 축객령인가. 스포츠 지도자 과정 공부를 하러 해외로 나간지 몇 년, 선배는 아이가 한 명 더 생겨서 집을 옮기게 되었다며 웃었다. 둘째는 마사미(仁實)라고 했다. 다들 오, 그때 말한 거 제대로 다 지켰구나 장하다 하며 선배를 놀려댔다.
그러고보면 부부 모두 세이린 출신이니 동창회 겸 집에 놀러가고 싶다고 아우성을 치자 웃으며 예의 그 이상한 찾아오는 길을 줄줄 읊은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 모인 데서 저렇게 말해놓고 나중에 주소를 적은 쪽지를 준 건 아마 혼자 오라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이사 집들이는 피곤하니까, 그래도 쿠로코 너는 와라. 꼭 만나게 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거든. 그렇게 말하며 쪽지를 줬을 때는 감동했었다.
그래, 그 쪽지까지는 좋았지. 쿠로코는 손부채질을 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뒤의 번지수가 물에 젖어 번질 줄 누가 알았나. 그것도 자기가 맥주를 엎질러서. 그래놓고는 하하하 웃으며 아까 설명 들은 대로 찾아오면 괜찮아, 쿠로코 너는 할 수 있다! 하며 엄지를 척 내미는 건 대체 뭐란 말인가. 진심으로 존경하는 선배이지만 이럴 때는 좀 화가 났다. 게다가 심지어는 맛있어 보이는 꼬치구이집을 따라가니 애들이 많은 놀이터가 정말로 나온다는 거다. 이상한 데서 또 정확하다니까. 쿠로코는 한숨을 쉬며 마지막으로, 해바라기가 잔뜩 피어있는 담을 따라 오른쪽으로 꺾어들어갔다. 길이 없을 것처럼 생겼는데 정말 집이 나오는 건가. 그런데 정말로 자그마한 집이 나오고, 집 앞에서 웬 꼬마가 공을 벽에 던지며 혼자 놀고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사람들처럼 생긴 꼬마였다. 쿠로코가 집 앞으로 걸어가자, 꼬마는 손에 들고 있던 공을 바닥에 내리고, 주먹을 꼭 쥐고 자신을 쳐다보았다.
-테츠야(鉄也) 군이죠?
-아저씨 누구세요?
어린애 입에서 나오는 아저씨 소리는 언제 들어도 적응이 안 된다. 쿠로코는 아이와 최대한 눈을 맞추고 허리를 숙였다.
-아빠 후배랍니다. 부모님은 집에 있나요?
-모르는 사람하고 이야기하지 말랬어요.
아이는 경계심이 가득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았다. 하긴 표정도 없고 해서 아이가 좋아할 것 같은 인상이 아니기는 하다. 항상 나사가 세 개쯤 빠진 것처럼 행동하던 선배가 의외로 아들 교육은 철저한 모양이다.
-음, 아빠랑 엄마 친구긴 한데, 테츠야 군은 야무진 것 같으니 그렇게 말해봐야 소용이 없겠죠. 집에 부모님 계세요?
-어…….
아이는 고민하는 얼굴로 집 쪽을 흘끔 쳐다보았다. 집에 누군가 있기는 한 모양이다.
-집에 가서 물어보고 오세요. 밖에 누가 왔는데 엄마 아빠 친구라고 했다고.
아이는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여전히 의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아저씨 이름이 뭔데요?
-제 이름이 테츠야입니다. 쿠로코 테츠야.
-나하고 이름이 같네요?
쿠로코는 아이를 쳐다보며 살짝 웃었다.
-내 이름을 따서 지어서 그래요. 테츠야 군의 아빠가 그렇게 하고 싶어 했었거든요.
아이가 눈을 반짝거렸다.
-그럼 아저씨가 쿠로코 아저씨예요?
-나를 알아요?
-당연하죠, 아빠가 그랬어요. 아빠가 좋아하는 농구선수 이름 따서 지은 거라고!
우와 신기하다, 아이가 신이 나서 목소리를 높여 소리지르며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돌았다. 나랑 이름 똑같은 아저씨다! 하며 팔짝팔짝 뛰던 아이는 쿠로코의 손을 잡고 웃었다.
-그러면 모르는 아저씨 아니네요! 엄마 불러 올게요!
거 이름이라도 사칭하면 어쩌려고. 쿠로코는 한숨을 쉬며 대문 앞에 섰다. 집들이 선물로 가지고 온 과자를 담은 쇼핑백이 다리 앞에서 흔들렸다.
1학년 봄방학이었다. 말이 봄방학이지 아직 날씨가 제법 추워서 훈련 끝나고 다 같이 오뎅을 먹었다. 리코가 사람 없는 체육관 구석을 빌려주고 린(仁卿)이 오뎅을 만들었다. 카가미가 요리를 도왔고 오뎅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큰 냄비에 어묵과 무와 계란과 곤약과 소힘줄이 가득 담겨 있었다. 오뎅 냄비 앞에 우르르 모여있는 틈을 타 쿠로코는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먹고 싶은 걸 아주 쉽게 찾아먹었다. 맛이 잘 든 무를 우물우물 씹고 있는 쿠로코를 보며 린이 어떻게 그렇게 잘 찾아먹냐고 감탄했다. 다들 쿠로코는 참 잽싸다며 감탄하고 있자 키요시가 뿌듯한 눈으로 쿠로코를 내려다보며 웃었다.
-그래, 역시 암만 생각해도 그렇게 해야겠어.
-뭘 말입니까.
-나중에 아들이 생기면 쿠로코 네 이름을 따서 지을 거다. 테츠야라고. 어때?
-아, 고맙습……
-야, 뭐야, 쿠로코 이름만 따냐? 우리는!
다들 장난처럼 우우, 하고 소리를 질렀다. 키요시는 그러거나 말거나 싱글벙글 웃고만 있었다. 옆에서 와 키요시 나쁜 놈이 동기부터 챙겨야지 후배만 챙기고! 하며 법석을 떨건 말건 쿠로코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왜, 싫어?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그래도 그런 걸 혼자만 결정하면 어떡합니까. 아내분 의견도 물어보셔야죠.
쿠로코의 한 마디에 키요시는 고개를 수그렸다. 아 그건 생각 못 해 봤어. 그러게, 요즘 세상에 뭐든 혼자 결정 내리는 남자는 인기가 없다고, 그러는 리코 너도 남자친구 없으면서, 쥰페이 너야말로 모태솔로가 어디서, 그런 온갖 쓸데 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그때 키요시가 아, 하고 손바닥을 탁 쳤다.
-아, 그거네!
-뭐?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랑 결혼하면 되잖아!
키요시는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다들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키요시를 쳐다보았다. 키요시가 씩 웃으며 오뎅 냄비 앞에서 꼬챙이를 줍고 있던 린을 가리켰다.
-야, 린, 너 같으면 이해 안 하겠냐? 쿠로코 얘도 좋은 놈이고, 게다가 내가 꼭 그렇게 하고 싶다는데, 너 같으면 어떨 거 같아?
-네? 어? 뭐, 뭐라고요?
당황한 린이 얼굴을 붉히다가 손에 쥐고 있던 꼬챙이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카가미가 얼른 꼬챙이를 주워줬다. 아 키요시 쟤 또 여자애 괴롭힌다, 그런 걸 왜 물어봐, 얼마나 싫으면 꼬챙이를 다 흘리겠냐, 키요시가 무조건 잘못했네, 하며 시시덕거리는 동안 린의 얼굴이 다시 제 색을 찾았다. 키요시는 바닥에 앉아서 꼬챙이 숫자를 세는 린을 보며 싱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때 리코의 한 마디가 치고 들어왔다.
-딸이면 어쩔 건데.
어, 그러네. 다들 똑같은 생각을 했다. 그러게 딸한테 테츠야는 너무 심한데. 리코와 휴가가 서로 쳐다보고 피식 웃었다. 그러나 키요시는 아주 당당하게 허리에 손까지 척 얹고 선언했다.
-음, 딸한텐 엄마 이름을 붙여 줄 거다! 엄마 이름에서 한 글자를 따 줄 거야!
아니 그러니까 이름은 혼자 짓지 말고, 뭘 좋아할지, 그런 것부터 먼저 물어보라고! 리코가 화를 내는 틈을 타 쿠로코는 조용히 오뎅 냄비에서 곤약을 집어 왔다. 곤약을 우물거리며 생각했다. 보통 고등학생이 그 나이에 가족계획을 세우지는 않죠. 그것부터 좀 지적하세요. 눈 앞에서 또 린이 얼굴이 잔뜩 시뻘개져 있었는데 쿠로코가 서 있는 것도 눈치 못 챈 듯 어쩔줄 몰라하고 있었다.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