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사에리]당신의 번역가
- 쓰고 만든 것/남의 드림
- 2013. 3. 19. 21:11
에리 님 리퀘로 쓴 사사에리입니다. 마인탐정 네우로에 나오는 사사즈카 형사와 에리 님 드림 커플입니다. 이 드림은 굉장해요. 사사에리로 앤솔이 나오는 드림입니다.
사사즈카는 큰 집게로 묶어놓은 A4 종이 뭉치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무릎에 놓인 사전을 보며 자판을 두드리던 에리가 깜짝 놀란 듯 고개를 들어 사사즈카를 쳐다보았다.
“벌써 다 읽었어요?”
“아니, 벌써가 아닌데…….”
불을 켜지 않아서 모니터에서 나오는 희미한 빛이 에리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보고 핸드폰을 켜서 시간을 확인한 에리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몰랐어요.”
서재는 이미 어두워서 모니터가 아니었으면 안으로 들어가다 넘어질 판이었다. 사사즈카는 불을 켰다. 형광등이 깜박이다 완전히 밝아졌고, 에리는 잠시 눈이 부신지 눈살을 찌푸렸다.
“저녁 먹어야지.”
“참 그러고 보니 먹는 걸 잊었네요. 어……그럼 저녁은요?”
이제 완전히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에리를 향해 사사즈카는 웃어보였다.
“난 간단히 먹었어. 그리고 이거.”
원고 뭉치 때문에 못 봤는데 한 입 크기로 뭉친 주먹밥이 접시 위에 몇 개, 그리고 물이 한 잔 있었다. 에리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요, 일 끝나고 왔는데 쉬지도 못하고.”
“아냐, 재미있었어. 안 쉬고 쭉 읽고 밥 챙겨 먹느라고 이제 들어온 거지.”
사사즈카도 주먹밥 하나를 집어 들었다. 에리는 주먹밥을 먹으며 마지막으로 고친 페이지의 인쇄버튼을 눌렀다. 이제 마지막 교정이다. 조금만 더 손을 보고 출판사에 원고를 넘기면 원고는 자기 손에서 떠나는 셈이 된다. 이번 책은 법의학에 관련된 책이다. 사사즈카가 아무래도 법의학에 대해 좀 알고 싶다고 작년쯤 지나가는 말로 한 마디 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에리는 아는 출판계 인사들에게 법의학 서적 번역할 일 있으면 꼭 자기에게 일을 달라고 부탁했다. 법이나 범죄심리 관련된 서적을 번역했었기 때문에 관련된 일이 들어오기도 한결 쉽기는 했다. 결국 어느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고, 에리는 기쁘게 일을 수락했다. 물론 필요하다면 사사즈카는 영어로 된 책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사사즈카 에이시에게 자신이 한 번 걸러서, 모국어로 된 글을 보여주고 싶었다.
“먹는 걸 까먹는 걸 보니 작업이 막바지긴 한가보네.”
“네. 참, 어땠어요?”
어제 저녁에 에리에게 이번에 새로 교정보는 원고를 미리 읽어보고 싶다고 먼저 말한 것은 사사즈카였다. 처음에는 자신의 관심분야라서 한 번 훑어보고, 에리가 용어에 대해 묻거나 하면 조언해 주곤 했었는데 요 최근에는 에리의 번역에 크게 관심을 보였다. 교정쇄도 1쇄부터 지금까지 모두 읽고 꼼꼼하게 조언해 주었다. 에리는 사사즈카가 자신의 번역을 좋아하는 걸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그 말을 직접 물어보기는 어려웠다. 그저, 자기가 하는 일이니 협조해 주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막연히 생각해 보았다.
“저번 거랑 비교해서는, 확실히 이쪽이 읽기 낫더라.”
“다행이네요. 애 많이 썼어요.”
“그리고 역시 용어는 그렇게 통일하는 게 나을 거야. 혹시 몰라서 우리쪽 검시의한테 물어봤는데 그게 낫다더라. 참, 저기 접어놓은 부분은 한 번 체크해 봐.”
원고를 들어 넘겨보니, 종이 귀퉁이가 접힌 부분에는 빨간 펜으로 메모가 적혀 있었다. 에리는 놀라 사사즈카를 쳐다보았다. 경시청 근무는 무척 바쁜 일이고, 경시쯤 되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말이 단순한 관용구는 아니다. 그런데도 퇴근 후의 황금 같은 시간을 쪼개서 원고를 봐 주었다.
“이걸 다 쓴 거예요?”
“응, 뭐……현장에 있는 사람이 감수하는 게 낫다고 하잖아?”
에리는 어쩐지 눈물이 날 거 같아 책상 위에 놓인 물만 마셨다. 목이 메였다. 간신히 인사말을 입 밖에 냈다.
“고마워요. 도움이 많이 됐어요.”
“아니, 오히려 내가 고맙지.”
에리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쪽 책은, 에리가 번역한 게 제일 잘 읽히거든.”
순간 주먹밥 접시가 바닥에 추락할 뻔 했다. 사사즈카가 아슬아슬하게 접시를 받아냈다. 에리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사사즈카를 보고 있었다. 손발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듯, 한참을 아무 것도 못 하고 서 있던 에리는 사사즈카가 주변을 다 정리하고 당황스러운 얼굴로 에리를 쳐다볼 때 즈음에야 겨우 말을 꺼냈다.
“제 번역, 좋아해 줘서 정말로, 고마워요.”
사사즈카는 에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사즈카 에이시 경시의 책꽂이 위에서 두 번째 칸에는 에리가 번역한 책이 꽂혀 있다. 맨 처음 번역한 책은 연쇄살인마의 심리를 분석한 책이다. 그리고 아는 사람의 소개로 번역한 판타지 소설이 한 권, 시리즈 물이라서 작가의 문장이 자꾸 변하는 게 어렵다고 했었다. 그 다음에 번역한 책은 일반 대중에게 민법에 대해 안내하는 책이었다. 그때는 형법 쪽을 번역하고 싶었는데 민법이라고 아쉬워 하는 에리에게 그럼 나중에 그쪽 하면 되지 않냐고, 일단 커리어 쌓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준 것이 사사즈카였다. 가장 손이 쉽게 가는 칸에 에리의 책을 꽂아두고, 틈 나면 보곤 한다. 에리가 그 책꽂이에 자기 책이 꽂혀있는 것을 보고 지었던 표정을 사사즈카는 잊지 못한다.
사사즈카는 책꽂이에 오늘 퇴근하는 길에 사 온 책을 꽂아두었다. 에리가 맨 처음 번역한 책의 2쇄가 오늘 나왔다.
나는 다만 당신의 문장가이고 싶다
-파블로 네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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