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스타크가 꽤나 심각한 표정을 짓고, 한창 체력단련 중이던 스티브 로저스에게 다가갔다. -캡틴, 방패를 좀 빌려줄 수 있어요? -무슨 일인데 방패를? 스티브가 덩달아 심각한 표정을 지었고 토니는 어디까지나 심각하고 정중한 어조로 대답했다. -지구인들의 상호 이해와 평화를 위한 연구에 필요합니다. -연구는 좋은데, 거기 왜 방패가 필요하나? -음, 거기까진 설명드리기 복잡하지만, 이것만은 맹세하죠. 일단 팀 내에서 써 보면 팀원들 간의 사이가 좋아질 거라는 건 확실합니다. 토니는 진지하고, 확신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의 눈을 한참 들여다보던 스티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라면 좋아. 다만 나도 조건이 하나 있는데. -뭐죠? 약간 긴장한 어투로 토니가 묻자 스티브가 미소하며 답했다. -손상이 가지 않게 잘 다뤄주게. -라져. 짐짓 경례를 해 보이는 토니를 보고 후에 어떤 참상이 벌어질지 짐작했어야 했다고 스티브 로저스, 캡틴 아메리카는 나중에 두고두고 그일을 곱씹으며 후회했다. 답지 않게 정중할 때 알아봤어야 했다고.
잠시 후, 스타크 빌딩 옥상. 캡틴을 제외한 어벤저스가 갑작스러운 토니의 소집을 받고 모였다. "친교를 위한 한국식 만찬이다!"라는 말의 뜻을 곱씹으며. 심지어 클린트는 토니한테 지령을 받았다며 그 한국식 만찬에 필요한 물건을 사서 오기까지 한 상태였다. 누구도 거절할 거라고 생각 안 했다 이거지, 나타샤 로마노프가 혼자 투덜대고 있을 때 매끈하게 잘 닦인 방패를 든 토니가 나머지 어벤저스 앞에 나타났다. 무척 신나고 즐거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토니는 좌중을 한 바퀴 둘러본 다음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친교를 위한 한국식 만찬에 온 걸 환영하네. -대체 그게 뭐야? 로마노프가 투덜대자 토니는 피식 웃으며 클린트 쪽을 보았다. -자자, 지금부터 해 보면 압니다. 클린트, 아까 전달한 목록대로 쇼핑했지? -물론. 클린트가 양손에 든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어 로마노프 요원은...이거, 이거, 이걸 씻어와. -왜? -만찬 준비를 좀 거들어 줘. 우리 모두 나눠서 일을 할 거야. 쇼핑해 온 클린트 요원은 잠시 쉬고. 뭔지는 몰랐지만, 우리라고 했으니 아마 다 같이 일한다는 뜻이리라. 다들 말 없이 수긍했다. 나타샤는 비닐봉지를 뒤져 큼직한 꾸러미 몇 개를 꺼냈다. -향이 독특한데, 허브인가? -참깨의 잎을 따서 먹는대. 그 나라 전래의 허브라더군. -으흠. 나타샤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옥상에 수도시설은 없기 때문이다. -어, 배너 박사님은...이 레시피대로 소스를 만들어줘. -......소스? -응. 이게 맛을 좌우한대나 중요한 거니까 부탁해. 비율이 생명이야. 박사는 온화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커리도 뭘 섞느냐에 따라 맛이 다르지. 알겠어. 익숙하진 않지만 해 보지. 근데 그 소스 이름이 뭔가? 토니는 같은 공학도인 박사에게 신뢰의 눈빛을 보내며 웃었다. -쌈장, 이라던데. -난 뭘 하면 되나? 상황을 관찰하던 토르가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토니가 비닐봉지에 남아있던 꾸러미를 열었다. -자넨, 나랑 고기를 굽지. 제일 중요한 거야 이게. 토르의 표정에 화색이 돌았다. 그러나 토니가 비닐봉지에서 고기를 꺼내는 순간 근심에 찬 표정이 되었다. -왜 이리 심각해...보던 중 제일 심각하다. 왜 그래? 돼지 안 먹어? -아니, 돼지고기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응? -고기를 이리 얇게 썰어서야 뭐가 되겠나! 자고로 고기란 육즙이라네. 통째로 강한 불에 익혀서 썰어 먹을 때, 고기에서 떨어지는 육즙은 실로 예술이라 할 수 있지. 그런데 왜 이리 얇게 썰었나. 이래서는 썰어 먹을 수 없네. 토르는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비닐봉지 속의 돼지고기는, 베이컨을 닮았으나 베이컨이 아닌 그냥 고기라는 점이 달랐다. 누구도 이런 고기를 본 적이 없었다. 클린트와 토니, 쌈장을 만들던 부르스 배너는 토르를 알고 지내던 중 그가 이렇게 긴 문장을 쉼없이 말한 게 처음이라는 사실에 놀라야 하는 건지, 육즙에 대한 애정에 감동해야 하는 건지를 잠시 고민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토니였다. -토르, 이것은 지구의 극동의 전통음식이야. -그런가. -그 나라에선 돼지고기건 소고기건 이렇게 얇게 썰어서, 센불에 바싹 익혀서 콩을 발효시켜 만든 특별한 소스를 발라 채소에 싸서 먹지. 특히 이 부위, 삼겹살은 더더욱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지? -채소쌈? 그래서야 어디 고기 맛을 제대로 보겠나? -아 좀.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라. -여긴 로마가 아니잖나. -비유법이다 비유법....암튼 그래서, 불을 켜고... 토니는 아까 지구의 평화를 위해 빌려온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를 내밀었다. -여기에 구워 먹는 거야. -어 잠깐, 그건 좀 아닌 거 같은데. 배너 박사가 진지한 표정으로 토니의 말을 가로막았다. -어째서? 캡틴도 허락했다고. 토니가 방패를 양손으로 꼭 붙잡고 말했다. 후에 토르의 말에 따르면, 그때 뭔가 감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허락했다고 말해놓고 손으로는 방패를 붙잡고 있는 꼴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나. -아니, 그런 게 문제가 아니야. 배너 박사는 온화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용하던 방패고, 페인트 성분을 생각하면 거기 고기를 굽기 적당하지 않을 거라고 지적하고 싶었는데. 음, 스타크? 자네 표정이 이상하네. 무슨 일 있나? 토니의 표정이 풀어졌다. 이 역시 후에 배너 박사가 회고한 바에 따르면, 뭔가 수상해서 한 마디 찔러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냥 장난이었다며 박사는 웃었지만, 토니는 그가 가장 무서웠다고 했다. -음 그럴 땐 말이죠. 방법이 다 있어요. 토니는 등 뒤에서 토치를 하나 꺼냈다. -이렇-게. 토치로 표면에 불을 붙이자 방패가 시커멓게 색이 변하고, 위에 있던 페인트가 끓어오르듯 표면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란 불이 방패 위를 왔다갔다 하자 페인트는 아래로 흘러내리다 기화해 날아가고, 방패는 달아오른 흔적도 보이지 않고 잠시 후 제 색을 찾았다. 알루미늄 비슷한 광택이 나는 본바탕이 드러났다. -자, 완성. 설거지하기 쉽게 하려고 여기 은박지를 깔기도 하는데, 우린 그냥 하죠? 토니가 씩 웃었고 토르가 토치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박사가 아무 말 없이 은박지를 내밀었다. -에이. -나중에 캡틴이 방패에서 돼지고기 냄새가 난다고 하면 할 말이 없잖아요. 그냥 깔고 구웁시다. 그게 우리도 편해요. -음 잘 닦아서 페인트칠해서 보낼 건데요 뭐. 기왕 토치로 구웠는데. 아깝잖아요? 토니가 열심히 말했고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때, 쉬고 있던 호크아이가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스타크, 그런데 뭐로 굽나? -아, 그거? 토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주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옆에 있던 큰 상자를 열었다. 상자 뚜껑이 열리자 꼭 캠핑 가서 바비큐 해먹을 때 쓰는 것 같은 도구가 나타났다. 어쩐지 쨘 하는 소리도 들렸지만 아무도 박수를 쳐주지는 않았다. 토니는 무척 섭섭한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토르가 박수를 치려다 배너박사의 약간 짜식은 듯한 표정을 보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흠, 이제야 본격적이군. 불은 어떻게 붙이나? -아, 그게 제일 중요한 거야. 토니가 이번에야말로, 하는 표정으로 뭔가를 내밀었다. 모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테서렉트?! 전원이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토니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웃었다. -특수재질 방패라서 어지간한 걸로는 고기 구울 만한 불을 제대로 지피기가 어려워서 그래.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하긴 방패에 열이 잘 전달되진 않았던 것 같군. 배너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호크아이는 이게 지금 말이 되는 것인가 되지 않는 것인가를 천천히 따져보기 시작했고, 토르는, 팔짱을 끼고 미간을 찌푸렸다. -어이, 천둥신. 왜 그래? -감히 테서렉트로 고기를 굽겠다고? 토르가 분노했다. -하지만, 그래서 이걸로 고기를 굽지 말라는 법은 또 어딨어? -그렇지만, 테서렉트의 힘은 중요하고, 이것은 너희 미드가르드 인들에게 큰 에너지원이 될 것이다. 그 중요한 것을 함부로 쓰겠다고? -함부로라니, 말이 심하잖아. 난 분명히 친교를 위한 한국식 만찬을 열겠다고 이야기했어. 이게 우리한테 하찮은 일이야? 이봐, 생각해보라고. 너희 아스가르드에서도 친교를 위해 만찬 정도는 열지 않아? 그 만찬에서 가장 중요한 음식이 뭔지 생각해보라고. 너희도 아마 만찬에 술과 고기는 빠지지 않을 거야. 설마 너희가 다 채식주의자는 아닐 테고 말이지. 그렇지? 반박을 못 하는 걸 보니 확실하군. 우리도 똑같은 거야. 만찬엔 고기가 필요하고, 아까 분명히 너도 고기 굽는 데 찬성했어. 그런데 이제 와서 고기를 구울 불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야. 이건 돼지고기고, 날로 먹으면 기생충에 감염된다고. 그리고, 이 고기는 말이지, 이런 쇠로 된 불판에 구워서 기름을 살짝 빼고 먹는 게 제맛이라고 분명히 그랬어. 게다가 한국에서는 말이지, 마늘도 김치도 고기와 같이 구워서 맛을 더한다고 했어. 고기를 구울 때 나오는 기름으로 그것들을 구워먹는 거랬다고. 심지어는 밥까지 볶아 먹는대! 알겠어? 불판과 불이 없으면 이 만찬이 성립되지 않아! 토니는 토르에게 질문을 퍼붓고, 어디서 났는지 봉투 사이에서 마늘이며 김치며 햇반이라고 적힌 플라스틱 용기가 담긴 비닐봉지를 꺼내어 가리켜보였고, 토르는 멍한 얼굴로 뭔지 모를 식재료 두어가지를 관찰하다 대답했다. -으음. 밥 볶 먹는 게 뭔지 모르겠네. 김치도. -나도 전에 미사일 팔러 한국 가서 술에 취해서 먹어본 적밖에 없어서 잘은 몰라. 그렇지만 뭐 나쁘지 않았다고. 김치도 잘은 모르지만 원조랬으니 뭐, 따라해야지? 여차하면 인터넷 검색으로 요리법은 찾을 수 있을 테고. 아무튼 그래서, 내 말 알겠지? 할 거지? -취지에는 동감하네. 하지만 나는 불 붙이는 것만은 돕지 않겠어! -그래, 그럴 줄 알았어. 토니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가 버튼을 누르자 잠시후, 옥상에 양손을 묶이고 재갈이 채워진 사람 하나가 등장했다. -로키? 호크아이가 벌떡 일어났고, 토르가 환한 얼굴로 로키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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