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저스]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원이님 리퀘로 쓴 정배커플....인데 아시죠, 저 커플링 별로 의미없는 인간인 거.

 

 

호크아이가 백수가 되었다.
외계인 좀 섬겼다고 백수가 된 것은 아니다. 닉 퓨리가 그렇게 쪼잔한 상사는 아니다. 하지만 그 일이 아주 영향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어쨌건 한 번 배신해서 이쪽의 정보를 적에게 떠넘긴 것은 타격이 컸다. 뭔가 일이 생기면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도 소리지만, 호크아이 본인이 그런 것을 견디기가 갈수록 어려워졌다. 세뇌당해서 한 거니까 괜찮아, 라고 나타샤가 위로해 줬지만 그 위로도, 수많은 타인의 차가운 시선 앞에서는 점점 힘을 잃어갔다. 물론 위로해 주는 사람도 많았고 부당한 뒷소문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소문은 힘이 세서 수가 많은 쪽이 이기기 마련이다. 결국 못 견디고 사표를 쓴 것은 호크아이였다. 외압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결국 어느 날 불쑥 나타나 세상을 뒤엎어놓은, 뿔 달린 투구 쓴 외계인이 그의 퇴직에 큰 영향을 끼쳤다.
로키 생각만 하면 속이 뒤집어진다. 호크아이는 이를 갈며 종이상자 하나에 자기 짐을 쑤셔넣고 정리를 마무리했다. 사실 사무직도 아니고 본부 내에 짐이 많지는 않았다. 잡동사니 가 전부다. 아무튼 상자를 정리하고 국장에게 인사를 하러 갔다. 닉 퓨리는 서운해 하며 재취직 자리를 알아봐 주겠노라 약속했다. 호크아이는 국장의 호의를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다. 결국 또 어디에선가 말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닉 퓨리는 한숨을 쉬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뭐건 말하라고 해 주었다.
요원 생활이 그것으로 끝났다. 딱 종이상자 하나 정도인 직장생활이었나 싶어서 맥이 풀리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했지만 일단 당분간은 좀 쉬자고 생각했다. 정말로 그날은 쉬고 싶었다. 배달음식을 시키고, 맥주를 마시며 TV라도 보겠다고 생각하고 현관문을 열었더니,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머리께에 달린 뿔을 본 호크아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가.”
어떻게 들어왔는가 하는 물음은 무의미했다. 저 외계인이라면 못 할 게 없었으니까. 태연한 얼굴로 호크아이의 소파에 앉아있던 로키는 표범처럼 등을 쭉 펴고 이쪽을 돌아보며 씩 웃었다.
“왜 그리 죽상인가.”
“남이사 죽상이건 말건. 나가라. 오늘은 너랑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아, 일을 그만뒀다지?”
“어떻게 알-”
호크아이는 하던 말을 멈췄다. 그 정도는 이 외계인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 온 이유는 뻔하다.
“너 나 약올리려고 왔냐?”
“그럴 리가. 이게 약오르는 일이야?”
의외로 로키는 굉장히 진지한 얼굴로 반문했다. 호크아이는 말문이 막혔다. 당연한 것을 설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했다.
“그, 그야 약오르지.”
“어떤 부분이?”
“사람은 일을 안 하면 먹고 살 수 없으니 당장 생활이 곤란해진다. 돈이 걸린 문제잖아. 그리고 역시, 일을 하지 않으면 중요한 게 사라지는 느낌이 들지 않겠어? 사회인으로서의 자부심 같은 것 말이다.”
로키는 우아하게 다리를 바꿔 꼬았다.
“까짓거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리 수선을 떠나. 그냥 일을 하지 않는 것 뿐이잖아.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
아, 그래. 이 자식이 고향별에서 둘째 왕자랬나. 호크아이는 태생부터 다른 이 외계인이 자기가 하는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로키는 진지한 얼굴로 무언가 생각하다, 그거다, 하는 얼굴로 호크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 인간.”
“너 내 이름 까먹었지……왜?”
“나한테 취직하지 그러냐.”
“뭐야?”
너무나 어이없는 제안에 호크아이의 눈이 둥그래졌다. 로키는 의기양양하게 말을 이었다.
“아스가르드에서는 우수한 궁수를 높이 산다. 나 역시 그러하다. 나의 군대로서, 너는 나에게 속해서 일을 하는 게다. 어떠냐. 영광스럽지 않아? 내 군대의 선봉장으로 써 주마. 월급도, 자긍심도 모두 문제 없이 채워지는 거지.”
뭐가 문제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 호크아이의 미간에 깊은 골이 패였다.
“월급이 문제냐? 달라는 대로 주마. 내 군대의 선봉장 이상 가는 영광스러운 자리는 없으니 자긍심도 채워지지. 뭐가 문젠가. 아, 아스가르드에서 사는 게 문제라면 너에게 미드가르드의 군대를 통솔할 영광을 주마.”
영광을 준다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태어날 때부터 미국 시민이라 왕조국가의 신민의 사고방식 따위 이해할 생각도 없는 호크아이의 이마에 힘줄이 하나씩 둘씩 서기 시작했다. 로키는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호크아이를 쳐다보았다.
“뭘 더 바라는 거지, 인간?”
“평생 취직 걱정 안 하고 산 유한계급 따위!”
자본주의 사회에서 찌들대로 찌든 백수의 분노가 폭발했다. 애초에 취직을 거절한다는 건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게 가장 화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