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라이트]군인복무규정을 준수하시오

트위터에서 군견조 머리를 군바리처럼 밀고 싶다시던 에리 님의 말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잠에서 깨어난 아이자크의 눈에 가장 먼저 비친 것은, 결박당한 자신이었다. 잠시 후에야 그것이 거울임을 깨달은 아이자크는, 옆구리에 차고 다니는 총에 손을 가져가려고 했으나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묶여있는 모양이었다. 

"몸을 움직이면 다칩니다. 가만히 계십시오."

뒤통수께에 차가운 금속이 닿아있다는 것을 뒤늦게 눈치챘다. 습격인가, 아이자크는 인기척부터 살폈다. 자신의 뒤에 하나, 그 뒤에 하나, 그리고 문가에 하나. 거울에 비친 녀석들은 모두 얼룩덜룩한 카키색 무늬 옷에 군화를 신고, 머리에는 창이 달린 모자를 쓰고 있었다. 이놈들은 살상훈련을 받은 정규군이다, 그렇게 판단한 아이자크는 실내에 묶여있는 사람이 자신 뿐이라는 것도 깨닫고, 손끝이 차가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에바리스트는, 에바는 어디 있지. 

아마도 같이 잡혀왔다면 그의 친우이자 상사이자 전우는 다른 곳에 있을 것이다. 고급 정보를 빼내기 위해 특수한 고문을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반사적으로 생각한 아이자크는, 생각하기를 멈추었다. 자신만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 다음은 에바가 알아서 하겠지.그냥 입을 다물고, 고문을 견디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다. 여차하면 놈들을 모두 찢어발겨서라도 나가서 에바를 구하면 된다. 그렇게 결심하고 아이자크가 심호흡을 하자, 바로 등 뒤에 서 있던 녀석이 입을 열었다.

"긴장하지 마십쇼."

"바르트 소령님은 어디 계신가?"

"바르트 소령님이라면 그 흑발 소령님 말씀하시는 거군요. 안심하십시오. 좀 더 좋은 시설에 계십니다."

"......"

"게다가 먼저 들어가셨으니 대위님 나가실 땐 다 끝났을 겁니다."

"끝나?"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지? 아이자크는 필사적으로 생각하려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에바가 판단하고 자신이 움직인다. 그러나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 에바는 괜찮을 거다. 하지만 끝난다니.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등 뒤의 목소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고작 이발입니다. 사회에 있을 때 미용일 오래 해서 바리깡 정도는 껌이지 말입니다. 긴장하지 마십쇼"

어? 아이자크가 뭔가 잘못되었닥 느낄 때 목에 수건이 둘러지고, 그 다음에 분홍색 긴 가운 같은 것이 둘러졌다. 뒤에 서 있던 모자에 가로줄이 네 줄 들어간 녀석이 씹듯 내뱉았다.

"군바리는 머리밑 살이 보이도록 씨원-하게 미는 게 최고지 말임다. 그럼 밀겠지 말임다." 

금발 한 줌이 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바람이 서늘하게 파고드는 머리카락에 손을 댔다. 까슬까슬한 게 꼭 선인장 같아서 아이자크는 울상을 지었다. 내가 그래도 장교인데 머리를 이렇게 밀어버리나? 어느 나라 군대야 여긴. 그러나 아이자크는 머리를 빡빡 깎은 에바리스트를 본 순간 웃느라 자기 머리에 대한 것을 모두 잊었고 잠시후엔 에바리스트한테 얻어맞느라 머리에 대한 것을 또 잊었다.

여담인데 시원하게 머리를 민 에바리스트에 대한 아이자크의 감상은, 두상이 동글동글했다, 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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