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저스]천둥과 장난신 신화

겨울은 길다. 짧은 봄, 여름, 가을 내내 물고기를 잡고 바닷표범을 잡고 새를 잡아다 놓고, 겨우 양파며 감자 같은 것들을 어떻게 키워낸다. 그것들을 가죽까지 삶아먹고 굶어죽어갈때쯤 겨우 봄이 돌아오면, 다시 죽어라고 물고기를 잡는다. 춥고 먹을 거 없는 땅에 사는 사람은 하루에 한 끼만 먹고 살게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럼 덜 굶주릴텐데. 어릴 때 할머니께 세상은 왜 이렇게 춥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할머니는 어느 두 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원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주 따뜻한 곳이었단다. 하지만 우리 조상님들은 더 좋은 세상에서 살고 싶어서 신들께 기도를 올렸어. 어느 장난을 좋아하는 신이 우리의 기도를 듣고, 세상을 자루 속에 담아갔단다. 신은 자루를 지고 열심히 걸어갔지. 항상 더운 나라를 지나가다 물었어. 여기가 좋으냐? 우리는 고개를 저었지. 그럼 더 추운 데로 갈까. 신은 다시 자루를 짊어지고, 추운 산을 넘어 추운 계곡을 따라 걸어갔어. 신이시여 우리를 어디로 데려 가시나요? 얼음밖에 없는 땅으로 간다. 거기는 너무 추워서 양파도 심을 수 없고 새들도 날아가다 얼어죽지. 우리는 그제서야 신에게 속은 것을 깨닫고 비탄에 차 울부짖었대요. 그때였어. 장난을 좋아하는 신은 무서운 천둥신을 형으로 두고 있었단다. 천둥신은 동생이 자루를 지고 있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동생을 천둥과 번개를 부르는 큰 망치로 때렸어. 동생 신은 넘어졌고, 그때 자루에 들어있던 세상이 튀어 나와, 추운 계곡에 자리잡게 된 거지. 그래서 우리는 추운 세상에 살고 있단다. 그런 긴 이야기였다.

나는 할머니께 물었다. 그럼 천둥신 때문이네요?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 그런데 왜 우리는 천둥신에게 매년 봄마다 좋은 곰고기를 올리면서 제사지내요?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안 그랬으면 우리가 더 추운데서 살았을 수 있기 때문이지. 그분이 우리를 구하신 거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양파와 감자가 나는 땅이라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으니. 올해 제사에는 천둥신에게 좋은 고기를 바쳐야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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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키는 기분 좋게 가벼운 자루를 메고 걸었다.

자루 속에는 갓 잡은 세상 하나가 들어있었다. 의외로 분자 사이의 공간을 제거하면 압축은 쉬워진다. 마법이라는 것이 사실은 별 게 아니다. 다 근거가 있다는 점에서 과학과 같다. 큰 마법이라 공이 많이 들어갔고 마법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도 많았지만 그런 것쯤 참을 수 있을 만큼 기분이 좋았으므로, 로키는 자루를 메고도 즐거운 마음으로 걸었다. 세계의 신이 된다니 기분이 상쾌했다. 

경배와 칭송은 좋은 것이다. 미드가르드의 어느 미개인들이 척박한 사막이 싫다고 구원을 요청하는 기도를 하길래 장난 삼아 좀 과한 연출을 하며 내려갔더니, 드디어 신이 내려오셨다며 광란에 가까운 기쁨을 표현하는 것이다. 평생 들어본 적 없는 것들이었다. 한 점 의심 없는 경의와 애정, 순수한 존경과 충성에 로키는 그만, 그렇다면 이들에게 새 세상 정도는 마련해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들의 불만은 요약하자면 여기는 너무 척박하고, 물도 없고, 덥다는 것이었다. 음 척박하지 않고 물도 많고 덥지 않은 곳...하던 로키는, 딱 좋은 곳을 떠올렸다. 사막을 지나 대륙을 따라 가다보면, 적당히 추운 산간지대지만, 땅은 비옥하고, 소들이 잘 자라고, 늘 푸른 곳이 있었다. 그들에게 한없이 자비로운 미소를 지으며 내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리라 하니 가엾은 미개인들은 미친 듯 좋아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그저 머리를 조아리니 기뻤다. 그래서 조금 거창한 마법으로 그들을 자루에 담아, 열심히 걸어가고 있었다. 다만 가던 길에, 잠시 마법에 필요한 약초를 구하기 위해 바이킹들의 땅으로 들어가야 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그들의 땅에는 항상, 시끄러운 형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약초를 뜯어 오는데 저 멀리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형이 미드가르드인들에게 경배받으며 요란하게 먹고 마시는 잔치였다. 그러고 보니 하지였다. 항상 하지가 되면 잔치가 벌어진다고 좋아했었던 기억이 나며 로키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형은 항상 소란스럽다. 그 꼴을 보고 싶지 않아 얼른 지나가려는데, 자신이 이곳에선 너무 눈에 띄었나보다. 형제가 와하하하 웃으며 소리를 질렀다.

"아우야! 미드가르드에서 만나니 반가움 한량 없다! 이리 와 한 잔 하자!"

올파더시여, 왜 저건 힘도 짐승 같고 눈도 짐승 같으며 감도 짐승에 가까운지요. 그 멀리서 어떻게 자기를 봤는지도 모르겠고, 그 멀리까지 어떻게 그렇게 소리지르는지도 모르겠다. 로키는 못 들은 척 걸어갔다. 

"어이, 로키! 너 이녀석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게냐?"

토르가 뛰어오는 것도 같았지만, 잔치상을 두고 설마 여기까지 오려고. 로키는 그냥 걸었다. 이제 추운 땅을 지나 조금만 가면, 이들을 풀어줄 좋은 땅이 나온다. 초록색 잔디, 파란 하늘, 좋은 공기. 뭐 그런 것들. 그리고 그들이 자신에게 바칠 순수한 경의와 존경. 일만 잘 되면 나는 미드가르드의 한 쪽에서는 신으로 숭배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느라 잠시 경계가 느슨해졌나보다. 로키는 투구를 쓴 머리가 둘로 쪼개지는 고통을 느끼고 바닥에 넘어졌다. 형에 대한 분노보다 먼저 로키의 머리를 차지한 것은 아득한 절망감이었다.  

자루 속의 세상이, 펠리컨이 생선 뱉듯 바닥에 튀어나와 널부러졌다.


오 안 돼. 이럴 순 없어. 로키는 망연자실했다. 어느새 자루 속에서 나온 세상은 그곳에 자리를 잡았고, 기대에 차서 뛰쳐나온 부족민들이 생전 처음 겪는 추위에 분노하여 우왕좌왕하며 공황상태에 빠져있거나 자신에게 욕을 퍼붓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절망과 분노를 담아 외치는 소리를 들으며 로키는 털썩 주저앉았다. 간만에 받아보는 경의였는데!

"오호, 갑자기 사람들이 생겼구나. 이건 무슨 마법이냐 아우야?"

그리고 등 뒤에선 완전히 신기한 얼굴로 눈이 동그래져서, 처음 보는 사람들을 보며 웃고 있는, 그의 웬수 같은 형이 있었다. 

"안 오길래 화가 나 묠니르를 던졌다만, 이런 재미있는 게 있었으면 나를 부르지 그랬니."

로키는 바닥에 떨어진, 그리고 다시 형의 손으로 돌아간 그 망할 망치를 쳐다보고, 그야말로 순진무구한 얼굴로 웃고 있는 형을 한 번 쳐다보고, 머리를 짚었다.

"토르 너 이 멍청하기는 양과 같고 성질 더럽기는 사갈 같은 놈아!!"

"형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냐!"

그만 분노한 로키가 토르에게 창을 던졌고, 거기서 간만에 형제 싸움이 거하게 벌어졌으며, 당연히 토르가 이겨서 로키를 질질 끌고 집으로 돌아갔으며, 부족민들은 갑자기 추운 데 떨어져서 자신들의 신을 욕하다 보니 다른 신이 자기들의 신을 두들겨 패서 끌고가는지라, 그 자리에서 새로운 신앙을 만드는 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다. 그 신은, 추위도 덜 탈 거 같이 입었고 말이다.

그것이 어느 에스키모 부족의 창세 신화에는 전해지지 않는, 보통 아는 사실과는 조금 다른 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