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연성이 사실 하나 더 있는데 그걸 가져오나마나 고민중입니다. 아무튼, 젬과 시집횽과 주고받은 대화에서 나온, 이자성네 아들 예뻐 죽는 팔불출 정청. 네타 있습니다.
생물이 타고 나는 종 자체가 바뀌는 느낌이었다. 사람 썰어댈 때는 파충류 같은 눈알을 번득이는 맹수 같은 인간이, 무슨 치와와 같은 얼굴로 헤벌쭉하니 웃고 있었다. 정청이 주경이 안고 있는 아기를 쳐다보며 어쩔 줄 몰라하는 광경이란 참 진귀한 볼 거리라서, 자성은 이 광경을 동영상으로 찍어 이중구와 강과장에게 보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아마 강과장은 그날 잠을 못 이룰 것이다. 손발이 오글거리고 속이 울렁거려서. "하이고, 참 곱게 생겼다. 니 좆거...아가 듣것네. 암튼 브라더 니 얼굴 안 닮아 천만 다행이다잉. 어따, 눈도 떴네! 아그야, 나가 니 큰아부지여 큰아부지! 큰아부지 해봐라!" "태어난 지 일주일 밖에 안 된 애가 무슨 말이야. 형 제정신이우?" "아니 말이 그렇다 이것이제. 제수씨 참말로 아그가 순하고 잘생겼소. 축하허요잉. 브라더 너도 축하한다. 꽁시꽁시! 아이고 좋은 거."
청은 완전히 헤벌쭉 풀어진 얼굴로 호들갑스럽게 축하인사를 건넸다. 자성은 그저 쓴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청이 골드문 승계 이후 삼합회 건으로 중국에 출장을 간 동안 자성의 처는 예정일보다 엿새 빨리 몸을 풀었고, 그 소식을 들은 청은 애가 성질이 급해서 큰아버지 오시는 것도 못 기다리냐며 버럭 화를 내다 자성에게 사과를 했다 난리를 쳐댔고, 출장에 따라갔던 제현의 말에 따르면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이 들릴 때까지 아주 안절부절을 못 하면서 조바심을 냈다고 한다. 그러더니 아들이 태어났다는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비싼 술을 돌렸다고 했다. 심지어 오늘도 붉은 물을 들여 삶은 계란에 월병에 골고루 챙겨와서는 난리다. 요즘 중국에서도 이렇게는 하지 않을텐데 참. 자성은 어이도 없고, 뭐가 저렇게 좋을까 싶어 우습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브라더, 워떠냐? 씨발 아주 포장부터 나 좋은 것이요잉- 하고 써놔버린 거 같어야! 요것이 요즘 좋다는 산양 분유 아니냐! 우리 조카님 줄려고 샀제! 어, 모유만 먹어? 워째야 쓸까...나가 슈퍼를 싹 쓸어버렸는디...야 이 좆겉은 새끼야 분유에 짝퉁이 있다더냐? 얼마나 신경을 썼는디? 야 가져가서 간식으로라도 멕여라잉. 이유식 안 허냐...멋이여 아직 덜 컸어? 워메 씨발!"
"유럽에서 쓴다는 기저귄데 참 좋아 보이지 않냐? 어? 야 이 씨발놈아 형이 주는데 그냥 받아. 뭔 돈은 돈이여. 안 넣냐? 콱 이걸 그냥. 야 썩무? 이 새끼야 니 형이 좆같은 게 하루이틀은 아니지만 니가 아주 뒈지도록 처맞아야 쓰겄다. 아오, 이 썅놈의 새끼가. 거시기, 거 그냥 지나가는 길에 사 왔응께 신경 쓰덜 말어라."
"제수씨 혼자 뭔 수로 저 어린 것을 데불고 주사를 맞히러 가겄소. 이럴 땐 남자 손이 있어야 쓰는 것이요. 나가 책임지고 주사 맞히고 올 것잉께 걱정하들 말고 기다리쇼잉. 아, 으사선생님헌테 일단 말씀을 드려야 하고요, 예, 몸무게랑 키 재고, 그리고...야 제현아 멋 하냐 메모를 하지 않고!"
저런 대화가 일상다반사가 되어 갔다. 사흘이 멀다 하고 아이를 보러 올 때마다 어디서 들었는지 유명하고 좋다는 육아용품은 다 사서 오는 청을 보고 있자니 자성은 머리가 아파왔다. 경차 한 대 값에 맞먹는 유모차를 사 왔을 때는 어이가 없었다. 대체 형님이 저런 정보는 어디서 얻어오시냐고 제현에게 묻자 머리를 긁적이며 82쿡이니 맘스홀릭이니 하는 카페를 다 가입했다고 답을 했다. 물론 제현이 가입했고 청은 독수리타법과 헛클릭질을 반복하는 마우스 클릭으로 카페의 메뉴를 정복해 나갔다고 한다. 거기까지 들었을 때만 해도 이 형이 제정신인가 싶었다.
하지만 자성은 자기 없는 데서 골드문 2대 회장 정청 선생이 무슨 짓을 하는지까지는 잘 모르고 있었다. 사건은 골드문 임시 총회 때 벌어졌다.
"이쁘지라? 야가 자성이 아들놈이요. 선배님들 보시기 어떠신가요? 아가 참 허옇고 훤칠하지 않소?" 골드문 임시 총회가 열렸다고 해서 지방 출장에서 급하게 돌아왔다. 회의실 앞에 서 있는 애들한테 물어보니 회의는 끝났고, 회장님이 5분만 연설을 하겠다고 해서 모두 안에 있다고 했다. 무슨 중요한 이야기인가 싶어 문을 살짝 열고 들어간 자성은 그대로 굳었다. 스크린에 자기 아들이 침을 흘리며 옷소매를 빨고 있는 사진이 떠 있었다. 이건 또 언제 찍었대. 심지어 정청이 한 팔로 아이를 안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셀카를 찍은 사진 하며, 선글라스를 애 얼굴 앞에 흔들며 아이를 어르는 사진 하며, 다양한 사진이 예쁘게 편집되어 있었다. 맨 위의 제목을 본 자성은 현기증이 났다. -이자성 전무이사 장남 백일 기념- 모두들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앞을 보고 있었다. 특히 이중구의 경우, 어지간히 화가 났는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손에 든 비닐봉지 안엔 부스러진 과자가 들어있었고, 그걸 어지간히 열 받았는지 손가락으로 비틀고 있었다. 자성은 얼른 앞에 있는 사람이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백일 기념인지 어디서 맞춘 티가 나는 월병이 예쁜 포장에 담겨있었다. 청은 신나서 화면을 여기저기 가리켜가며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아그가 즈 애비 판박이라 똑똑하고 참말로 잘났소잉. 벌써 목도 가누고 눈도 맞추고 지 애비는 물론이고 이 큰아버지까지 알아 본당께요." 결국 이중구가 벌떡 일어났다. 회의장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자성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간신히 회사가 그럭저럭 돌아가나 했는데 이중구가 여기서 화를 잘못 내면 두 파가 갈라져 싸우는 게 시간문제였다. 그리고 그게 이중구가 바라는 일이기도 했다. 아 진짜 형은, 뭐하러 이런 일로 싸움을 만드나. "하 거 참, 총회가 끝났으면 얼른얼른 밥 먹으러 갑시다. 무슨 회장 연설이 이렇답니까?" "느는 나가 5분만 내 달라고 그렇게 이야기했는디 멋이 그리 불만이라서 인상을 팍 쓰고 앉었냐? 중구 너 인상 펴라. ...브라더 너 언제 왔냐?"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형님. 회장님. 제가 늦었습니다. 그리고 회장님, 그만 하십시오, 제가 민망합니다." "옴마? 브라더 너 섭섭하게 이러기냐? 이 자리는 우리 골드문 식구들이 조카님을 축하하는 자리라 이거여. 근디 애비가 돼갖고 씨발 왜 빼고 지랄이여?"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자성이 나섰으나 청은 오히려 펄쩍 뛰며 눈을 부라렸다. 슬쩍 보니 아직 남은 사진이 한참 있는 모양이었다. 제현이 난처헌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희 좀 살려주십시오, 작은 형님. 회의장은 조용했고, 중구도 청도 자성도 모두 난감한 얼굴로 서로 쳐다보고 있었다. 균형을 깬 것은 중구였다.
"아 하루 이틀이요? 아 회장님 니놈 새끼나 자랑하세요. 왜 전무이사 애비도 아닌 회장님이 설치세요?"
"이봐 중구동생. 말이 심하잖나!"
원로들이 정색을 하고 일어났다. 자칫하면 신임회장에 대한 하극상이 될 수 있고, 조직내 계파간 항쟁으로 불거질 수 있는 민감한 자리였다. 그걸 다 알면서 일부러 사진을 뿌리다니. 혹시 형님은 범재범파의 손발을 꺾고 수술이라도 할 셈인가. 자성은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청은 그냥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섭섭하다는 표정으로만 중구를 보고 있었다. 아, 저 형 아무 생각 안 하고 있었어. 죽도록 치밀하고 무서운 사람이 가끔 이렇게 한 두 군데가 비어 있었다. 자성은 머리가 다 어지러워 이마를 짚고 있었다. 한참을 원로들을 노려보며 서 있던 중구가 의자를 거칠게 빼며 걸음을 옮겼다. "아, 씨발. 나 안 해요. 회장 말씀이고 뭐고 좆 같아서 안 한다고!" "야, 중구야! 이중구! 아따 싸가지 없는 새끼. 야, 중구야!" 중구가 문을 박차고 나가고, 중구파가 죄다 눈치를 보며 회의장을 나가는 동안 청은 아직 할 말이 남았는데 저 녀석 어딜 가냐는 표정으로 애타게 중구를 부르고 있었다. 이 뒷일은 어떻게 수습하지. 강과장한테 알려야 하나. 아 그런데 강과장, 아직 살아는 있었나? 아닌데. 다들 잘 살아있잖아. 아무도 죽지 않았는데. 항쟁? 그건 진작에 났었고. 아니다. 처음부터 항쟁 같은 건 없었는데.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자성은 식은땀과 함께, 회장님, 회장님 부르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회장님!"
"회장님!" 눈을 떠 보니 제현이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 "피곤하신 것 같아서 깨우지 않았습니다. 이사님들 오셨는데 모실까요?" "그래, 얼른 들어오시라고 해라." 자성은 피곤에 찌든 양눈을 손바닥으로 비볐다. 개꿈도 이런 개꿈이 없었다. 아이는 그 때 유산된 이후로 포기했다. 주경은 그 때 충격으로 아이를 갖기 어렵게 되었다고 했다. 울면서 잠든 주경의 머리를 차마 쓸어주지 못한 것은, 아들이 태어난다면 이름에 청 자를 넣어줄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못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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