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바스]의지의 문제

하루 종일 그놈의 의지 드립 때문에 빡쳐서- 그리고 덧글 구걸 이벤트 결과 젬이 당첨이 되어서 끄적거려봤습니다.

-전국대회 나가면 프로프즈 한다고 그래서 그러라고 했다?
-헐, 미친.
-어우 왜~ 쩔잖아. 야구부 주장 여친. 근데 전국대회도 못 나가고 준결승에서 대박 깨졌대.
-그래서?
-그래서는 뭐 그래서. 차려고 했는데 울면서 매달려서 두고 보려고.
-야, 이길 의지가 있으면 뭘 못해. 걔 너하고 사귈 생각이 없었던 거라니까?
-찌질이네. 자신 없으니까 괜히 야구 핑계댄 거 아냐?
-그치, 그래서 슬슬 정리하려고.
-뭘 슬슬 정리해, 이따 가면서 바로 차라니까? 존나 의지도 없고 능력도 없는 게 웃기고 있어.
-울기는 왜 울어. 지가 능력이 안 되니까 그렇지.
햄버거를 산같이 쌓아놓고 네 개째 먹고 있던 카가미의 귀에 여고생들의 대화가 들렸다.
-시끄러워 죽겠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악 놀랄 뻔 했잖아!
-이제 놀라지 않는 걸 보니 적응한 모양이군요.
쿠로코는 언제나처럼 조용히 바닐라쉐이크를 손에 들고 카가미 앞에 앉아있었다.
-언제 왔냐.
-음, 야구부 부장이 프로포즈에 실패했을 때부터요.
-왔으면 말을 해.
-어차피 금방 알게 될 건데요 뭘.
카가미가 혼자 중얼거린 말을 받아친 시점에서 이미 옆자리 여고생들이 둘의 대화를 들었는지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걸 눈치채고 있음에도 쿠로코가 그다지 말을 조심하지 않고 있었다. 카가미는 피식 웃었다.
-어이, 쿠로코. 어떻게 생각하냐?
-뭘 말입니까.
-의지만 있으면 다 된다는 소리 말이다.
-의지? 그러게요. 그랬으면 키요시 선배는 내년에도 경기를 뛸 수 있겠네요. 무릎부상도 의지로 극복이 가능하다면 말이지요.
-...
-카가미 군도 그때, 토오와 시합할 때처럼 죽도록 고생하면서 존을 열지 않아도 언제나 그런 영역을 볼 수 있겠네요. 의지란 건 참 편리하군요.
쿠로코가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카가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사실 자신은 죽어라고 고생을 해서 간신히 얻어낸 것을 별 것 아닌 것처럼 사용하는 아오미네를 보면서 기분이 상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어느 정도 옆자리 여고생들이 투덜대며 일어났다. 미친, 왜 남 하는 말을 엿듣고 지랄, 찌질이 새끼들, 같은 단어들이 띄엄띄엄 들리는 걸 봐서는 짜증이 난 모양이다. 아마 대놓고 말을 못 하는 것은 카가미가 무서워서일 거고, 그럼에도 투덜대는 건 그러지 않고 나가면 지는 거 같아서 짜증나서겠지.
-그리고, 저도 그렇게 노력해서 기적의 세대를 이기려고 하지 않아도, 중학교 때 이미 제 농구를 찾을 수 있었겠지요.
쿠로코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하고 바닐라쉐이크를 마신 다음 의자에서 일어났다.
-야, 어디 가?
-의지? 그거 따질 시간에 연습 한 번 더 하겠습니다. 카가미 군도 나와요.
-아직 덜 먹었는데.
-연습하고 먹어요.
-어, 그래.

샌드맨

내용 누설 약간 있으니 아직 안 보신 분은 피해가셔요.

이 책을 추천해 준 비아이에게 바칩니다. 그리고 이걸 볼 기회를 준 에리 님께 감사인사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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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바스]빛과 그림자

쿠로바스 팬픽입니다. 등장인물은 카가미와 쿠로코, 세이린 농구부원 여러분.

커플링 없습니다.

[샌드맨]동화와 꿈 1

갈라진 배에 돌이 가득 들어있다. 내 배인데 어떻게 아느냐면, 누운 자세에서 조금만 고개를 들어도 찢어질 듯 부푼 뱃가죽 위로 울퉁불퉁하게 돌덩어리 윤곽이 보이니까. 마치 몸에 살이 없이 마른 암컷이 임신해서 배가 불렀을 때 배 위로 새끼의 머리며 발이 만져지듯. 게다가 솔기라고 말하면 좀 묘하지만 갈라진 배를 얼기설기 꿰매어 놓은 부분을 뚫고 회색 돌덩어리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딱딱한 발굽이 내 배를 걷어찼다. 비명을 지르자 배를 밟고 있던 발굽에 힘이 들어갔다. 돌이 가죽과 내장을 동시에 찌르는 기분이라니.
“일어나, 늑대(Wolf).”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일어나고 싶어도 일어날 수 없다. 배가 무겁고 아프다. 간신히 숨을 몰아쉬며 허리를 들었다 다시 주저앉았다. 엉덩이가 아프다. 돌이 무거워서 그만 주저앉았는데 엉덩이 아래 딱딱한 게 있었나보다. 나무뿌리거나 혹은 돌이거나. 돌, 돌, 그놈의 돌. 왜 이렇게 안이고 밖이고 돌뿐인 거지.
“왜, 배불러서 못 일어나겠어?”
아까의 차가운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차갑다기 보단 분노에 푹 잠겨서 다른 것이 개입될 여지가 없는 목소리였다.
“내가 널 우물에 집어넣을 힘이 없어. 그러니 알아서 좀 들어가라고.”
목소리와 발굽의 주인은 눈앞에 서 있는 까만 털이 아름다운 염소(Cabra)였다. 고개를 들어올리자 차례대로 매끈한 발굽과, 가는 발목과 긴 털로 가려졌지만 그 아래의 탄탄한 선이 짐작가고도 남는 긴 다리, 곡선이 우아한 배와 허리가 보였다. 그리고 찌푸린 얼굴도.
“뭘 봐.”
“아뇨, 그냥 너무 예뻐서……쿨럭!”
발굽이 뱃가죽 갈라진 부분을 정통으로 걷어찼다.
“그래서 내 새끼들 잡아먹고 여기서 퍼질러 잤냐? 지금 뭘 착각하고 있나 본데 늑대씨, 지금 뱃가죽 찢어져서 죽을 위기에 처한 건 너고, 난 내 귀한 새끼들이 네놈 징그러운 뱃속을 구경하고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분이 나쁘거든? 우리 애들한테 트라우마라도 생기면 책임질 거야? 가뜩이나 여자 혼자 애 키우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말이야. 이놈이고 저놈이고 도대체가 말이지. 게다가 어디서 입을 놀려?”
염소는 낮은 목소리로 이를 악 물고 중얼거리면서 내 배를 밟고 걷어찼다. 그때마다 내장이 돌에 찍혀서 비명도 못 지르게 아팠다. 배가 무거워서 차마 피하지도 못하고 염소의 발길질을 고스란히 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참 이상하기도 하지. 염소가 점점 세게 내 배를 걷어차면 찰수록 어느새 통증 사이에서 기묘한 느낌이 자라났다. 쾌감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아프고 고통스럽고, 고통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두근거리고 간질거렸다. 그래, 아마 둘이서 좀 조용한 데, 그러니까 돌이 없는 데서 만났으면 조금이라도 오래 쳐다보고 싶고, 혹시 할 수 있다면 만져보고 싶은 발목과 다리여서 그럴 테다.
혹은 이게 꿈이어서.

꿈에서 깨어 시계를 보니 오전 4시도 안 된 시간이었다. 늑대는 한숨을 쉬고 배에 손을 얹었다. 꿰맨 흔적 없이 매끈했다. 꿈에서 갈라졌던 부분을 아쉬운 듯 손가락으로 한 번 쓰다듬고는 얼굴을 붉혔다. 이불을 온 몸에 감고 의미없이 뒹굴다가 혼자 웃고, 이불로 얼굴을 감싸고 어깨를 부들부들 떨던 늑대는, 약간 숨가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염소가 나한테 말도 걸어주고 날 때려주고 내 배도 꿰메줬어!”
그리고 늑대는 쿡쿡 소리내어 웃으며 뒹굴다 벽에 머리를 세게 부딪치고서도 웃음을 그치지 못했다. 그리고 잠시 후 목소리가 조용해졌다. 아마 잠이 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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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맨 맞습니다. 더 보시면 압니다.

[은혼]세계의 밤 1

작년에 낸 앤솔로지에 실린 단편인데, 음 제가 여기 얽혀서 굉장히 나쁜 일이 있어서 탈덕하고 뒷부분 쓸 계획을 완전히 접었다가 된장은 콩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인생의 진리를 깨닫고 탈덕은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쓰던 건 완결해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 다시 올립니다. 썼던 부분은 수정해서 재연재하는 걸로 하고, 12월 은혼온리를 목표로 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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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바스]존경하는 만큼

같이 놀면서 무시무시한 썰 풀어주신 테이큰 님 감사합니다. 허튼 트위터 날림 팬픽에 그림으로 뒷이야기 그려주신 힟님 감사합니다. 게다가 그리신 그림원고 사용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푼젤, 라푼젤!

2012년 8월 12일에 썼던 글입니다. 예전 블로그에서 백업했습니다.

마녀는 매우 화가 났다. 외출하러 나가다 집에 새로 만든 시약을 놔두고 온 게 생각나서 다시 와 보니 공들여 키운 양상추밭에서 누가 양상추를 뽑다 마녀와 눈이 마주쳤다. 물론, 뽑아가도 좋다고 한 적이 없고 뽑아가라고 말한 적도 없다. 도둑임이 틀림없다. 마녀는 당장 도둑을 잡아다 꽁꽁 묶었다. 뒤집어쓴 스타킹을 벗기고 보니 양상추밭을 털러 온 도둑은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는 이웃집 남자였다. 이사오던 첫날부터 들으라는 듯 여자 혼자 사나보다, 불쌍하다고 아내와 수군대던 것이 기억났다. 그 후로도 혼자 장을 보러 갈 때나 밭일을 할 때, 무거운 냄비를 들고 갈 때 담장 밖에서 이쪽을 보며 자기는 내가 집안일을 도와주니 다행인줄 알라 운운하는 소리를 하곤 했다. 지난 악감정이 동시에 몰려오는 것을 느끼며 마녀는 심호흡을 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자 일단 진정하고 공정하게 대하자.
도둑을 묶어놓고 밭을 살펴보니 완전히 엉망이 되어 있었다. 훔쳐가려면 곱게나 훔쳐갈 일이지 아직 싹이 나지 않은 양상추를 밟아서 뭉개놓질 않나, 양상추밭에 들어온다고 밭둑에 심어놓은 콩을 죄다 밟아놓질 않나. 게다가 뽑아든 건 고작 세 포기밖에 안 되는데 온 밭을 다 헤집어놓아서 나머지도 먹지 못하게 되었다. 몇 개는 뽑다 말아서 뿌리가 다 드러나있었고, 몇 개는 잎이 다 찢어져 있었다.
마녀는 날카로운 눈으로 도둑을 노려보았다. 좀 주눅이 든 표정으로, 그렇지만 은근히 뻔뻔해 보이는 얼굴로 이쪽 눈치를 보는 남자에게 마녀는 물었다.
"달라고 하실 일이지, 왜 훔치고 그러세요?"
"마누라가 임신해서 입덧이 심한데 양상추만 먹으면 괜찮다고 해서..."
남자는 겸연쩍지만 당당한 말투로 대답했고, 마녀는 어이가 없어 언성을 높였다.
"그으러니까아, 그걸 왜 훔치냐고요. 임산부가 입맛이 없다는 데 그 정도야 당연히 나눠주죠."
남자가 뻔뻔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니 저도 그러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까 말이죠, 임신도 안 해 보시고 결혼도 안 해 보신 분이 임산부한테 채소를 나눠달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실 거 같아서요. 결혼을 해 보셨으면 당연히 부탁했겠지만, 아니잖아요."
마녀는 잠시 할 말을 잃고 남자를 쳐다보았다. 마녀의 표정을 긍정으로 해석했는지 남자는 신이 나 목소리를 높이고 떠들어댔다.
"사실 결혼도 안 해서 책임질 게 아무 것도 없는 마녀님 같은 분들이야 임신도 결혼도 모르니까, 뭐 이런 걸 가지고 도둑질을 하냐고 생각하시겠지만 이게 보통 일이 아니거든요. 입덧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안 보셨죠? 그리고 임신한 여자는 예쁜 걸 먹어야 된대요. 그래야 예쁜 애가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아무거나 막 따서 주시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골라가려고요. 절 닮았으니 당연히 예쁘겠지만, 어 왜 그런 눈으로 보세요. 제 애니까 당연히 절 닮죠. 그럼 누굴 닮아요? 아무튼 제 새끼 먹이는 건데 뭐 어때요. 그리고 마누라 도와주려고 한 거니까 괜찮죠? 마녀라도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죠?"
마녀는 조용히, 더 먹을 수 없게 뭉개진 양상추 하나를 집어들어 남자의 입에 처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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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일 트위터에 올렸음. 토끼 님과 대화하던 중 떠오른 아이디어. 토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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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X남 커플이고 폭력 묘사가 어느 정도 있습니다. E 모 님이 우키후네 가사에 "사랑하던 이여 헤어지고 사흘만에 얼굴은 잊었지만 씨발 사라지지 않는 건 담배냄새"라는 명대사를 붙이셔서 감동한 다음에 나온 겁니다. 그러니까 대략 저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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