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혼]세계의 밤 2
- 쓰고 만든 것/그 외
- 2012. 8. 6. 20:23
- Posted by 유안.
긴토키와 히지카타가 더블 부장이라는 설정입니다. 그나저나 비축분이 떨어져가네요....
대외적으로 진선조가 하는 일은 체제전복을 꾀하는 양이지사를 검거하는 것과 천인이 관련된 범죄에 대한 수사 및 범인인도 등으로 알려져 있다. 헌병과 경찰 업무에 걸쳐있다고 봐도 좋다. 어디까지나 자국민의 보호와 치안 유지를 위한 조직이라는 것이 그 명분이다. 하는 일만 보면 그다지 틀린 말도 아니다. 어쨌건 에도는 평온하다. 혁명을 외치는 목소리는 줄어들고 있고 현재 사회를 움직이는 질서는 잘 유지되고 있다. 인권 탄압이니 자국민의 보호보다 천인의 재산권, 생명권을 우선시한다느니 하는 비난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질문을 받은 마츠다이라 카타쿠리코는 한 마디로 대꾸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 말 그대로 어쩔 거냐고 물었을 때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사실이지 않은가. 그래서 어쩔 거냔 말이다.
어쨌건 진선조는 그런 조직이다. 그리고 그 점에 대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치깡패 아니냐느니 치안 유지를 빌미로 정권의 더러운 부분을 은폐하는 뒷손이라느니 하는 소리에는 각별히 신경을 쓰는 편이었다. 명분이 없으면 활동하기 어려운 조직이다. 무장 경찰이라니 계엄령 하의 정권과 다를 게 없으니 누구라도 여기 대해 지적하면 곤란하다. 정말로 계엄령이 선포되었으면 무장 경찰이 당당히 돌아다니겠지만 실제로 계엄령을 내릴 만한 세력이 일본 내에는 없기 때문이다. 즉 진선조의 위치는, 아주 애매하다.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그 점에 대해 지적하면 끝장이고, 그와 같은 이유에서 그들에게 이미지란 실로 중요하다. 우리는 여러분의 친근한 벗이고 이웃에 있는 존재라고 끊임없이 외치는 것이다. 어리고 예쁜 연예인을 불러다가 1일 국장을 맡기는 웃기는 이벤트부터 은근슬쩍 진선조의 인간적인 면을 홍보하는 전략까지. 그러니까 여러 정치적인 조작이 일어나곤 한다. 그리고 좋지 않은 면은 최대한 언론에 내보내지 않는다. 신원이 불분명한 자들은 은근슬쩍 은폐하고, 나머지는 작은 걸 크게 부풀려서 은근슬쩍 띄워주기도 한다. 사실 말이 좋아 도장의 후계자이고 천연이심류의 계승자이지 그냥 동네 건달보다 조금 나은 수준 아니냐고 비웃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었지만 대다수는 그냥 그런가보다 한다. 일단은 천연이심류라니까 듣기 좋지 않은가. 듣기 좋은 말은 속기도 쉬운 법이다. 도장의 계승자, 면허 전수자, 목록 소지자 같은 말은 사람을 현혹시키기 좋은 법이다.
그런 맥락에서 대외적으로 진선조의 부장은 히지카타 토시로로 알려져 있지만, 언론에 잘 노출되지 않는 부장이 하나 더 있다. 그리고 언론에 노출되지 않는 만큼, 이 부장이 하는 일은 대개 더 험하고 더 지독한 데가 있다. 진선조에서 히지카타 토시로 부장을 귀신부장이라 부르고, 엄하고 무섭지만 통솔력 있고 국장 대신 실제로 진선조를 이끌어가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동시에 사카타 긴토키 부장을, 야차부장이라고 부르며 두려워한다.
야차부장이 한길가에 서있다. 정확히 말하면 이누이 성(星) 대사관 앞에 서 있다. 흰 바탕에 푸른 무늬를 염색한 기모노를 입고 옆구리에 목도를 끼고 어슬렁어슬렁 걷는 폼이 꼭 그냥 이웃집 아저씨 내지는 가부키쵸를 돌아다니는 건달 같아 보인다. 게다가 적당히 풀어진 얼굴에 손에 든 경단꼬치가 매우 실없어 보인다. 역시 평복을 한 대사 하나가 인사를 하는 것처럼 손을 흔들며 다가가서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사카타 부장님, 수상한 놈이라곤 아무도 안 보입니다.”
“병신아, 수상한 놈이 나 수상하다고 광고하고 다니냐?”
역시 인사를 하는 듯 어딘가 나사빠진 미소를 지으며 긴토키는 대꾸했다. 나사빠진 미소를 받은 평대사는 마치 크게 야단이라도 맞은 것처럼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치만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데 이 중 누가 수상하다고 단정짓기는 뭣하잖아요?”
“보면 모르냐, 제일 수상해 보이지 않는 놈이 이럴 땐 제일 이상한 놈이라고. 특히 저기 저 놈. 저거 족치면 분명히 뭐가 나온다니까.”
“누구요?”
“아, 정말 거-”
그때 긴토키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어떤 놈이 사람 말씀하시는데 전화질이냐는 듯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노려본 긴토키는 발신자를 확인하고 히죽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어~오오구시 군.”
“이름 똑바로 못 부르냐?”
“허어, 오오구시 군을 오오구시 군이라 부르지 못하다니 이 어인 변고.”
“지랄한다. 아무튼 그쪽은 어때?”
“여기? 글쎄.”
“넌 도대체가.”
“아 아무튼 끊고, 찾았단 말이다. 지금부터 좀 바빠질 거 같으니까 이따 이야기하자고.”
건너편에서 무슨 반응을 보이건 말건 전화를 끊었다. 옆에서 나는 수상한 놈도 통화 맥락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부하를 보고 한 번 혀를 찬 다음, 긴토키는 무성의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몸짓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대사관 담벼락 아래 기대어 졸고 있는 탁발승이 보였다.
“스님이 왜요?”
“야, 종교인이라고 그냥 넘어가냐? 저기서 탁발하는 스님이 이상한 거지. 왜 저기 있냐고. 사람 많은 길거리 다 놔 두고. 탁발을 하려면 번화가나 주택가를 골라야지. 이 근처에 그런 게 있냐? 대사관 옆에서 뭐 주워먹을 게 있다고 저기 저러고 있냐고. 좀 이상하잖아.”
말을 마치자마자 긴토키는 그리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실례함다. 혹시 불 가진 거 없으세요?”
웃으며 말을 붙이자 탁발승은 몸을 움찔했다.
“응? 왜 그렇게 놀라세요?”
“아무 것도 아니오. 빈도에게 무슨 볼일이신지?”
“스님 혹시 불 가진 거 없냐고요.”
긴토키의 목소리를 들은 긴 머리의 탁발승은 어쩐 일인지 아까와는 조금 다른 자세로, 삿갓에 손을 올렸다 금방 내리고, 한참 손이 여기저기를 방황하는 등 조금 당황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긴토키는 매우 흥미롭다는 얼굴로 팔짱을 끼고 탁발승이 푹 눌러쓴 삿갓을 노려보고 있었다. 평대사는 조마조마한 얼굴로 그쪽을 보고 있었다. 야차부장이 말한 대로 수상한 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야차부장은 놈을 어느 타이밍에 잡아챌까를 지켜보고 있었지만, 탁발승은 어딘가 혼란스러워보였다. 그래서 탁발승이 한참만에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을 때, 그 평대사는 자기가 뭘 들었는지를 판단하느라 꽤 애를 먹었다.
“……키.”
“응?”
“역시 긴토키가 맞구먼. 내 귀가 틀리지 않았어.”
탁발승은 여전히 삿갓을 눌러쓴 채였다. 정확하게 긴토키라는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듣고 평대사는 큰일이 났다고 생각했다. 사카타 긴토키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앞에서 드러나게 활동하는 편이 아닌 자에 대해 안다는 것은 그만큼 양이활동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말이다. 긴토키가 팔짱을 풀고 옆구리에 찬 목도에 손을 얹었다.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지만 얼굴이 굳어 있었다.
“너 누구야?”
“누구냐니. 먼저 부른 건 자네 아닌가.”
“무슨 소리야. 불 빌려 달랬지 이름 불렀냐고.”
하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고, 탁발승은 삿갓을 벗었다. 눌러쓰고 있던 삿갓 아래에서 얼굴과 긴 머리가 드러났다.
“카츠라 코타로?”
지명수배전단에 찍힌 것보다 덜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 드러났다. 그 얼굴은 다채롭고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반가운 것도 같고 의아한 것도 같고 놀란 것도 같고 화가 난 것도 같은. 경찰조직 간부를 알아보고 짓는 표정은 절대 아니었다.
“뭔가, 즈라라고 부르지 않는 건가?”
“즈라는 또 뭐냐, 네녀석 별명이냐?”
긴토키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들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순간 카츠라의 얼굴이 굳었다. 익숙하던 것이 사실은 자신이 알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표정이라고 하면 적당했으리라고, 그 장면을 지켜보던 평대사는 나중에 잠깐 회상한다. 그 표정을 한 마디로 정의내리기는 어려웠다. 경악, 충격, 그리고 분노, 의심, 그 외의 여러 가지가. 긴토키는 수갑을 들고 카츠라의 팔목을 잡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카츠라는 긴토키의 팔을 뿌리치고 칼을 겨누었다.
“카츠라 코타로. 체포한다. 너도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도 선임할 수 있어. 일단 감옥 안에서.”
“……다카스기가 해 준 말이 사실이었군.”
카츠라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다카스기? 역시 네놈들 한패였나? 요새 그쪽의 움직임이 수상하다더라니.”
“우리는 예전부터 한패였네. 자네가 그걸 모른단 말인가.”
“너, 날 아냐?”
“글쎄. 아는 자인 줄 알았는데 아닌 것도 같군. 자네 누군가?”
“날 몰라? 진선조 부장 사카타 긴토키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네가 어떻게?”
“무슨 개소리냐?”
칼을 겨눈 채 두 사람은 전혀 뜻이 통하지 않는 대화를 주고 받았다. 분위기는 팽팽해서, 금방이라도 둘 중 하나가 내리치는 칼에 하나의 팔이라도 잘려나갈 것 같았다. 누구 하나라도 먼저 움직이면 팽팽한 대치상태는 깨어지고 당장이라도 둘 중 하나는 어떻게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노려보고 있었다. 카츠라는 회한이 어린 표정으로, 긴토키는 의외의 장소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뒤통수라도 맞은 듯한 불쾌하고 찜찜한 표정으로.
“너 정말 누구냐?”
“그걸 모르는 자네는 도대체 누군가?”
먼저 질문을 던져 침묵을 깬 긴토키에게 카츠라는 똑같은 말로 답했다. 그리고 한참, 말없이 검을 겨누고 서로를 가늠해보는 시간이 이어졌다. 침묵을 참지 못한 긴토키가 칼을 휘두르려는 찰나, 연막탄이 터졌다. 연기 너머로 팔락거리는 카츠라의 머리카락을 향해 손을 뻗었으나 카츠라는 잡히지 않고, 목소리만 들렸다.
“잘 있게 긴토키!”
“그러니까 너 이 새끼, 뭐하는 놈이냐고!”
긴토키가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고 연기가 흩어지고 카츠라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긴토키는 말없이 벽을 걷어찼다. 그리고 잠시 후, 핸드폰을 꺼내 버튼을 눌렀다.
“야, 나다. 이 씨발놈의 새끼들아, 지금 카츠라 코타로가 튀었는데 한가하게 안부 인사가 나오냐? 당장 주변 수색해서 수상해 보인다 싶은 놈들은 죄다 끌고 와. 못 잡으면 너네가 죽을 줄 알아.”
전화기 너머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리고, 허둥지둥하는 대답이 들렸으나 긴토키는 듣지도 않고 전화를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그리고 잠시후, 곳곳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상사에게 살해당하고 싶지 않은 평대사들의 과잉반응이 웃겼는지 긴토키는 피식 웃으며 벽에 기대어 주변에서 일어나는 작은 소요를 감상하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아무 소득 없이 돌아오는 진선조 대원들이 하나 둘 긴토키 앞에 모였고 긴토키는 말없이 그들을 노려보았다. 순찰차가 도착했고 제복을 입은 진선조 대원들이 몇, 그들 옆에서 우울한 표정으로 함께 긴토키의 시선을 감당해야 했다. 오늘은 또 왜, 카츠라 코타로가 튀었다더라, 아 존나 재수없네, 우리 이제 죽은 거냐? 그렇다고 봐야지. 이런 작은 대사들이 오고갔으나 긴토키가 한 번 노려본 다음부터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하나 잡았습니다.”
조마조마한 얼굴로 진선조 대원들이 한 명을 연행해 왔다. 키가 작고 이목구비가 흐릿해서 인상에 남지 않을 것 같은 얼굴의 평범한 남자였다.
“무슨 말이에요. 양이라뇨, 전 그냥 지나가던 사람이라고요. 경찰이라고 막 이래도 됩니까? 이게 뭐죠?”
긴토키가 눈을 빛냈다.
“지나가던 사람 좋아한다. 아까 이 건물 밑에서 얼쩡거리던 놈이잖아.”
남자는 잠시 몸을 움찔거리다 잠시 후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을 이었다.
“그건 약속이 있어서 그런 거고……”
“무슨 약속?”
“아니, 왜 반말입니까. 경찰이면 그래도 돼요?”
“아, 이 새끼 말귀 못 알아먹는 것 좀 보소. 야, 너는 지금 우리한테 말대꾸할 군번이 아니라니까. 니가 여기서 뭔 약속을 했냐고 묻잖아. 묻는데 왜 대답을 안 하냐고, 어?”
“…….”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 있는 남자를 보고 긴토키는 피식 웃었다.
“네, 네. 그건 일단 저희랑 같이 간 다음에 이야기해요. 일단 검문에 불응한 죄로 잠시 좀 같이 가셔야겠습니다.”
“그런 게 어딨습니까?”
“어딨기는, 여기 있다. 야, 이분 차에 태워 드려라.”
말이 떨어지자마자 옴싹달싹 못하게 남자의 양팔을 거머쥐고 가는 평대사들을 보며 긴토키는 코웃음을 쳤다. 순찰차로 이동하는 내내 긴토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평대사들은 잡담 한 마디 주고 받지 않고 조용히 정좌하고 앞만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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