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낸 앤솔로지에 실린 단편인데, 음 제가 여기 얽혀서 굉장히 나쁜 일이 있어서 탈덕하고 뒷부분 쓸 계획을 완전히 접었다가 된장은 콩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인생의 진리를 깨닫고 탈덕은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쓰던 건 완결해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 다시 올립니다. 썼던 부분은 수정해서 재연재하는 걸로 하고, 12월 은혼온리를 목표로 달리겠습니다.
세계의 밤
이런 밤, 여기 실존하는 자연의 내부-순수자기self-는 환영적 표상들 속에서 주변이 온통 밤이며, 그때 이쪽에선 피흘리는 머리가, 저쪽에선 또 다른 하얀 환영이 갑자기 튀어나왔다가는 또 그렇게 사라진다. 무시무시해지는 한밤이 깊어가도록, 인간의 눈을 바라볼 때, 우리는 이 밤을 목격한다. -헤겔, 『예나의 실재철학』
진선조라는 이름 하면 떠오르는 반응을 말하라고 할 때, 에도 시민들의 반응은 대개 세 가지다.
경찰이 없는 것도 아닌데 굳이 그런 걸 만드는 이유가 뭐냐, 세금 낭비다. 독재국가 티를 내나, 아예 대놓고 독재국가라고 해라. 준 식민지라고 티내냐 공공기관이 무장을 하다니 이게 웬 말이냐. 정치력이 부족하니 특무경찰 같은 걸로 괜히 공포분위기를 조성해보겠다 이거냐. 이것이 첫 번째. 나랏님이 하시는 일이니 뭐 그럴 수 있겠지. 시끄럽고 귀찮은 거 다 잡아가면 우리는 편하고. 양이지산가 뭔가가 치안을 어지럽힌다는데 잡아 가면 좋지 않나. 이것이 두 번째. 몰라 귀찮아. 시끄럽고 귀찮아. 거기까지 신경 쓰고 싶지 않아. 이것이 세 번째. 세 번째가 절대다수고 그 다음이 두 번째, 첫 번째가 가장 적지만 가장 말이 많다. 여기 속하는 것이 극소수의 지식인, 인권운동가, 학생, 사상가, 양이지사 등 사회가 위험시하는 부류의 인물들이다. 아무튼 절대다수의 반응은 그런 식이다. 생각하기 귀찮은 것이다. 그리고 이상과 같은 반응에 대한 진선조의 반응도 그다지 다를 것이 없다. 어떻게 생각하건 상관 없고 그저 너희 뭐 하는 놈들이냐고 묻지만 말아라, 가 그들이 소망이다. 일일이 대응하기도 귀찮은 것이다. 그러니 가급적이면 모두가 귀찮아 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첫 번째와 같은 반응이 가장 당혹스럽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도 진선조가 왜 필요한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묵묵히 쇼군을 위해 일하면 되는 거 아닌가. 사람들 반응이야 뭐 그럴 수 있지. 모두가 우리를 좋아할 수는 없으니까. 어 그런데 도대체 독재국가란 게 뭐냐?” 이것은 거기에 대한 진선조 국장 곤도 이사오의 반응. “골치 아픈 이야기 하면 못 알아먹거든요. 그나저나 히지카타 부장은 언제 죽어준답니까?” 이것은 1소대장 오키타 소고의 반응. “저, 그것보다 감찰 결과 보고부터 좀 들어주시면 좋겠어요.” 이것은 감찰대원 야마자키 사가루의 반응. “손 더럽히기 싫은 사람들 대신해서 손 더럽히는 게 뭐. 이제 와서 새삼스럽지도 않다. 존재의의를 따져서 뭐 할 거야.” 이것은 진선조 부장 히지카타 토시로의 반응. “이번 달부터 원피스가 한 달간 휴재래. 오다신이 어디 아픈 거 아냐?” 이것은 진선조 부장 사카타 긴토키의 반응.
“네놈은 말이야. 도대체 생각이란 게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어머 얘가 사람 무시하네. 생각이 왜 없어.” “점프 생각도 생각이냐?” “만화는 인류 문명의 꽃이다, 요녀석아.” 부장 둘이 독대하고 앉아서 이야기를 하면 항상 결론이 같다. 히지카타가 뒷목을 잡고, 긴토키는 성의없이 눈만 뜨고 앉아 있거나 실실 웃거나 히지카타를 약올리는 쪽으로 결론이 난다. 요즈음은 운동권 학생들도 꽤 강성이라 시끄럽다. 진선조의 존재 의의를 묻는 대자보가 에도에 있는 모든 대학교 내에 붙었다고 한다. 대학생들이 하는 일은 단순하다. 대자보가 붙고 나면 그 다음은 시위다. 시위 자체야 진압하면 되지만 그 과정에서 불평하는 사람은 점차 늘어난다. 하나를 잡아가면 둘이 불평한다. 그런 목소리마저 누를 수는 없었다. 좀 더 효율적으로 입을 다물게 할 수는 없나. 히지카타는 혼자 생각했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 방법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시위가 늘어가는 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다. 분명히 정부에서도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선조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그 상황에서 함께 상황을 타개해야 할 긴토키는 심각해지기는 커녕 그런 건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비웃고 있으니 히지카타는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히지카타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노려보자 긴토키는 제복 주머니를 뒤져-어쩐지 주머니가 불룩했다- 사탕봉지를 꺼내더니 사탕 하나를 히지카타의 입에 쑤셔넣었다. 사탕이 목구멍으로 바로 넘어가서 한참을 쿨럭대던 히지카타가 핏발선 눈으로 긴토키를 노려보았다. “야!” “혈압 올라? 고혈압은 위험해. 일단 진정해라.” 긴토키는 사탕 껍데기를 세 개째 벗기고 있었다. “……날 죽일 셈이냐!” “사탕 하나로 사람이 죽진 않아, 왜 섬세한 척이래.” 종알거리며 히지카타의 입에 깐 사탕을 전부 넣어주고, 입이 사탕으로 가득차서 말도 못 하고 우물거리고 있는 히지카타에게 긴토키는 상냥한 얼굴로 웃어보였다. “왜 새삼스럽게 심각해지고 그러냐. 에너지 낭비하지 말고 할 일이나 하면 되지 뭘.” “…….” “아니 하는 짓이 웃기잖아. 우리가 언제 생각 하고 일 했어? 그건 생각해서 뭘 해? 애초에 아는 놈이 아무도 없는데 답이 나오냐?” “……” “애새끼들이 파르르 떨었다고 같이 화내서 어쩔 거야. 원래 학생 놈들이 다 그렇잖아. 답도 안 나오는 거 고민하다 지들끼리 괜히 열내면서 시위한답시고 난리고. 웃기지도 않아요. 졸업하고 나면 싹 까먹고 상사 말만 잘 듣더라.” 히지카타는 대답 대신 긴토키를 노려보았다. 긴토키의 표정은 차분했다. 싱글싱글 웃으며 긴토키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네 말마따나 새삼스러울 것도 없잖아. 우리가 무슨 명분이 있는 일을 했었냐, 거기서 명분을 찾는 놈이 병신이지. 그런데 새삼 그 이야기는 왜 꺼내냐고. 너 좀 웃긴다고 생각하지 않냐?” “하지만 최소한 거기에 대해 생각은 해야 하잖냐.” 사탕을 깨부수며 억지로 삼키고 반박을 하자 긴토키는 어린애한테 뭔가를 설명하듯 상냥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생각을 왜 해. 해 봐야 현실이 병신 같은 건 변하지 않는데.” “그걸 인정하는 순간 우리의 명분은 없어진다.” “그놈 참. 야, 애초에 처음부터 문제가 많은 조직이었고 문제가 많은 일을 해 왔다고. 너넨, 아니 최소한 너는 그걸 알면서도 받아들였고. 그럼 그냥 인정해. 내가 하는 일은 아무 명분이 없는 일이라고. 그걸 왜 애써 부인하려고 드냐. 설마 너 M이냐? 역시 M이었어?” 발끈해서 긴토키를 쳐다본 히지카타는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혈관 속의 피가 식는 느낌을 받았다. 몇 년을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표정이다. 평소에는 어물전 생선 같은 멍한 눈을 하고 있으면서 꼭 이럴 때만. 헤벌쭉 풀어진 얼굴로 웃는 주제에 눈은 벌겋게 번들거리고 있다. 그리고 그럴 때 긴토키는 진심이다. 히지카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긴토키는 사탕봉지를 흔들며 투덜댔다. “야, 얼마 안 남은 사탕 네가 다 먹었잖아. 딸기맛은 봄 한정품인데 어쩔 거야.” 그러면 그렇지. 아까의 그 표정은 어디로 가고 그저 멍청한 얼굴로 투덜거리고 있는 긴토키의 머리를 걷어찼다. “아 왜 차고 그래애~ 아프잖아.” “아프라고 찼다. 왜 덜 아파? 더 차주랴?” “히지카타 부장, 사실 나 싫어하지?” “안 싫어할 만한 짓을 한 적이 있으면 말을 해 봐라 쯧.” “공연히 으르렁거려 보아도 위화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긴토키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는 위화감을 마치 가면처럼 얼굴에 두르고 있었다. 가끔 번뜩이는 붉은 눈마저도 위화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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