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추천해 준 비아이에게 바칩니다. 그리고 이걸 볼 기회를 준 에리 님께 감사인사 드려요.
각 권별로 감상을 나누어 쓰려다가 그게 큰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닫고 그냥 합쳐서 쓰기로 한다. 일단 감상순서가...영원의 밤을 얻어보고 나서 이 시리즈 재밌구나 하고 정신 차려 보니 10권을 읽고 이게 뭐야 하고 있었고, 그리고 오늘 꿈사냥꾼을 보는 걸로 일단 꿈의 이야기는 다 읽었다.
서양 사람들에게 특정한 감성이나 사태를 알레고리로 표현하는 게 참 익숙하다는 생각이 든다. 문화적 전통이기도 하지만 내가 아는 것만 해도 사람 형상을 한 죽음 그 자체가 벌써 몇 건 째인지. 그리고 이들이 인간처럼, 그리고 동시에 아주 인간 같지 않게 행동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꽤 볼만하다. 관념이 인간처럼 행동할 때 어떤 성별, 성격, 외향을 두르고 행동하는가도 시사하는 바가 많을 테니까. 그래서 말인데 꿈은 사실 닐게이, 아니 실례. 닐 게이먼처럼 생겼다. 닐 게이먼은 자기 얼굴을 참 호방하게도 주인공한테 빌려준 거 같다. 세상에 어떤 간 부은 작가가 꿈을 드림캐로 쓰겠냐. 하지만 작가를 닮은 남성-게다가 사회성 부족하고 융통성 부족한 꿈이라니. 꿈이 융통성이 없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속에서 꿈은 창백하고 마르고 머리가 부스스하고 영 표정이 음울한 남자로 나타난다. 청년인지 장년인지 노인인지 가끔은 짐작이 가지 않는 기괴한 모습으로. 눈은 텅 비어있고 그 자리는 시커먼 우주인지 그냥 밤인지 빈 공간인지가 대신하고 있다. 한 마디로 악몽같이 생겼다고. 꿈에서 만나면 당신 누구세요 소리 절로 튀어나오게 기괴하다고. 그런데 그자가 꿈이란다. 농담은 못 알아먹고 쓸데없이 진지하고 가진 능력을 총동원해서 삽질도 잘 하고 가끔 영원 일족의 미래가 걱정되는 짓도 잘 한다. 여기에 나오는 관념이 인간의 옷을 입고, 하필 작가랑 닮은 옷을 입은 이유는 아마 이 부분 때문이겠지. 탈도 많고 문제도 많은 인간의 탈을 씌우지 않으면 이야기할 수 없는 너무나 거대한 존재라서. 너무나 큰 것은 이야기하기 어려워서 사람들은 그런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비유를 하거나 예를 들게 된다. 꿈이란 건 무척 넓고 크고 거대한 것이라서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외전을 보고, 되풀이해서 읽어도 꿈이 뭔지 사실은 잘 모르겠다. 그러니 인성을 갖추게 해서 설명하는 것이 읽는 이에게 가장 편하겠지. 꿈의 많은 권속들도 꿈이 가진 여러 면을 보여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카인과 아벨, 이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카인과 아벨은 살해를 되풀이하며 꿈 속에서 살고 있다. 동굴 속의 이브는 세 명의 이브에 대해 이야기한다. 뱃사람의 정원은 ‘누구(Who)’가 아니라 어디(Where)로 호칭된다. 뭐 그렇게 시작하는 이야기다. 사람 같은 꿈이 나오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좋다.
이야기는 꿈이 힘을 잃은 1, 2차대전에서부터 시작한다. 꿈이 지상에 갇히고, 세상은 이상한 방향으로 돌아간다. 인간들에게는 꿈이 필요하다. 악몽이건 뭐건. 꿈이 없기 때문에 20세기는 그렇게 이상한 것이다. 꿈은 인간들에게 그것을 돌려주고 자신의 세계를 만든다. 그 와중에 저승과 이승의 세상이 달라지고, 뭐 그런 거다. 엄청나게 크고 전지전능한 영원의 일족이 있고 그 중 꿈이 있다. 그리고 꿈은 꿈결을 다스린다. 여기에 나오는 꿈은 연쇄살인마의 악몽이거나, 작품을 쓰지 못해 불행한 작가의 꿈이거나, 인간 따위는 발 붙일 데도 없는 고양이들의 세상에 대한 고양이의 꿈이다. 그리고 셰익스피어가 있다. 꿈에게 꿈에 대해 이야기를 써 주고 꿈과 교류하는 인간이 있다. 영원히 죽지 않고 한 세기마다 꿈과 만나는 인간도 있다. 그리고 지옥의 악마가 있다. 지옥에 없는 악마도 있다. 머리만 남은 오르페우스가 있고 세 마녀가 있으며 인간들의 삶은 대개 좀, 맛이 갔다. 그리고 정말로 죽음이 꿈보다 친절하다. 죽음은 언제나 꿈과 대화해 주고, 인간들의 마지막에 와서 그들을 데려간다. 꿈은 죽음과 이야기하고 죽음의 옆에서 치유를 얻는다. 쓰고 보니 뭔가 중2한데 그런 소리는 아니고, 아무튼 꿈이란 것이 얼마나 잔혹하고 기괴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 꿈은, 아까 인성에 대해 잠깐 이야기 했지만, 절대로 멋지거나 근사하지 않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대체 인성을 부여받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차이는 게 일이고, 찬 여자를 만 년간 지옥에 처박아놓고 화내고 있으며, 자기 손으로 자기 인생을 말아먹을 빌미를 제공하는 짓도 잘 하는 편이다. 이게 사람이면 혹시 누가 이거랑 사귄다고 그러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뜯어말릴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과 헤어진 여자들은 대개 꿈한테 친절한 편이다. 정말이다. 구여친이 자기 적 정도면 그나마 꽤 괜찮지 않은가, 음 나만 그런가. 게다가 영원의 일족은 어떠냐면 죽음은 꿈에게 멍청하고 한심하다고 화를 내고 욕망은 꿈을 무척 한심하다고 생각하고, 분열은 꿈한테 화가 나 있고 파괴는 형제들과 영영 떠났다. 꿈의 권속들은 꿈을 까는 게 일인 것 같기도 하다. 꿈이 인성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그는 그냥 평범한, 좀 융통성도 없고 책임감은 쓸데 없이 강하고 종종 무능한 인간처럼 군다. 여기 저기 치이고 자기가 실수해서 사고도 많이 치고, 그러면서 꿈은 성장한다. 그리고 두 번째 꿈이 태어나고, 새로 꿈에 대해 배울 것이 많은 이 어린 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전의 꿈과 같다. 색은 하얗고 훨씬 더 말갛고, 꿈의 일에 덜 찌들어서 아직 성격도 그렇게 까칠해지지 않은 것 같지만 그 또한 꿈이고 그만큼 무서운 존재니까. 인간성을 받은 꿈은 꿈 자체의 성장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건 이것대로 좋은 일 아닌가. 우리가 꿈을 꾸거나 보면서 자라듯 꿈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
게다가 이 작품은 기괴하다. 죽음조차 꿈보다 친절하다고 작품 속에서는 되풀이해서 언급한다. 책 속의 꿈은 기괴하고 기분나쁘다. 뒤틀리고 불안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서브컬처에서 뒤틀리고 기괴한 것은 대개 두 종류다. 음 개인적으로는 그걸 일본식 기괴함과, 바로크식 기괴함이라고 부른다. 일본은 에도 시대 가부키니 우키요에니 하는 것들을 보다 보면 푹 썩고 뒤틀리고 금박을 씌우고 장신구를 붙여놓은 기괴함이 있다, 종종 그 장신구조차 기괴하지만. 이건 꽤 익숙하다. 에로 구로 넌센스라고 왕년에 유행한 유행어가 있어서 한국에서도 어느 정도 익숙하다. 비틀린 개인의 내면에서 시작하는 어두컴컴한 정서, 마음 속에서 푹 썩어서 문드러진 애욕 같은 것들. 한국에서도 2, 30년대에는 꽤나 쓰이고, 여기저기 수입되어서 익숙한 장르들이다. 쉬운 예를 들면 미시마 유키오나 다니자키 준이치로. 음 그런데 서양의 기괴함은, 그냥 말 그대로 그로테스크하긴 한데 명쾌한 데가 있다. 러브크래프트나, 에드거 앨런 포, 음 스티븐 킹 같은 거. 그리고 아메코믹의 센스는 아마도 후자일 것이다. 소네자키 신주의 기괴함은 서양인, 아니 미국인들이 따라가기 힘든 무언가라고 생각한다. 비틀린 개인의 내면보다는, 어두컴컴하지만 그 안에 무언가 있어서 우리가 그것을 보면 그것도 우리를 쳐다보는 그런 기묘한 것들 말이다. 그리고 거기에 뭔가를 더하지도 않고, 그냥 일그러지고 문드러진 채로 그것을 보여준다. 비뚤어진 데 없이 단순하지만 심연 속에 괴이한 게 숨어 있는 종류. 사실 나한테 이쪽은 그다지 익숙하지 않다. 애초에 나는 요재지이나 금오신화 류의 괴이에 익숙한 쪽이라 서양의 기괴함은 좋아는 하지만 그것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좀 어려운 편이다. 꿈의 이야기를 계속 따라가면서 이번에 본 것이, 서양이 가진, 그 사람들 용어로 바로크라고 하나 고딕이라고 하나, 아무튼 그런 문화들이었다. 내게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 눈으로 보이니 그 부분이 좋기는 하더라. 사실 아메코믹으로 셰익스피어니, 꿈이니 하는 것들을 접할 때 그 부분이 제일 흥미로웠다. 외전 중 꿈 사냥꾼이라고, 아마노 요시타카가 그린 것이 있는데 동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 서양이 본 동양이라는 점에서, 나를 보는 남을 다시 관찰하는 나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매번 다른 그림과 다른 이야기가 나타나지만 꿈이 하고자 하는 말은 의외로 명확하다. 개인적인 최고의 명장면은 1권에서 지옥의 군주와 내기에서 가장 아슬아슬했을 때 했던 대사와, 8권에서 많은 사람들이 장례식장을 향해 걸어가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딱 그것들이 꿈이 하고자 하는 말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하고.
꿈이 가진 파괴적인 면, 생산적인 면, 인간의 정신이 무너지고 다시 돌아오고 하는 과정, 그리고 그 사이에 꿈 자체도 변해가는 그 과정이 좋았다. 나한텐 그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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