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샌드맨]동화와 꿈 1
- 쓰고 만든 것/아메코믹
- 2012. 7. 24. 01:38
갈라진 배에 돌이 가득 들어있다. 내 배인데 어떻게 아느냐면, 누운 자세에서 조금만 고개를 들어도 찢어질 듯 부푼 뱃가죽 위로 울퉁불퉁하게 돌덩어리 윤곽이 보이니까. 마치 몸에 살이 없이 마른 암컷이 임신해서 배가 불렀을 때 배 위로 새끼의 머리며 발이 만져지듯. 게다가 솔기라고 말하면 좀 묘하지만 갈라진 배를 얼기설기 꿰매어 놓은 부분을 뚫고 회색 돌덩어리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딱딱한 발굽이 내 배를 걷어찼다. 비명을 지르자 배를 밟고 있던 발굽에 힘이 들어갔다. 돌이 가죽과 내장을 동시에 찌르는 기분이라니.
“일어나, 늑대(Wolf).”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일어나고 싶어도 일어날 수 없다. 배가 무겁고 아프다. 간신히 숨을 몰아쉬며 허리를 들었다 다시 주저앉았다. 엉덩이가 아프다. 돌이 무거워서 그만 주저앉았는데 엉덩이 아래 딱딱한 게 있었나보다. 나무뿌리거나 혹은 돌이거나. 돌, 돌, 그놈의 돌. 왜 이렇게 안이고 밖이고 돌뿐인 거지.
“왜, 배불러서 못 일어나겠어?”
아까의 차가운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차갑다기 보단 분노에 푹 잠겨서 다른 것이 개입될 여지가 없는 목소리였다.
“내가 널 우물에 집어넣을 힘이 없어. 그러니 알아서 좀 들어가라고.”
목소리와 발굽의 주인은 눈앞에 서 있는 까만 털이 아름다운 염소(Cabra)였다. 고개를 들어올리자 차례대로 매끈한 발굽과, 가는 발목과 긴 털로 가려졌지만 그 아래의 탄탄한 선이 짐작가고도 남는 긴 다리, 곡선이 우아한 배와 허리가 보였다. 그리고 찌푸린 얼굴도.
“뭘 봐.”
“아뇨, 그냥 너무 예뻐서……쿨럭!”
발굽이 뱃가죽 갈라진 부분을 정통으로 걷어찼다.
“그래서 내 새끼들 잡아먹고 여기서 퍼질러 잤냐? 지금 뭘 착각하고 있나 본데 늑대씨, 지금 뱃가죽 찢어져서 죽을 위기에 처한 건 너고, 난 내 귀한 새끼들이 네놈 징그러운 뱃속을 구경하고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분이 나쁘거든? 우리 애들한테 트라우마라도 생기면 책임질 거야? 가뜩이나 여자 혼자 애 키우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말이야. 이놈이고 저놈이고 도대체가 말이지. 게다가 어디서 입을 놀려?”
염소는 낮은 목소리로 이를 악 물고 중얼거리면서 내 배를 밟고 걷어찼다. 그때마다 내장이 돌에 찍혀서 비명도 못 지르게 아팠다. 배가 무거워서 차마 피하지도 못하고 염소의 발길질을 고스란히 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참 이상하기도 하지. 염소가 점점 세게 내 배를 걷어차면 찰수록 어느새 통증 사이에서 기묘한 느낌이 자라났다. 쾌감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아프고 고통스럽고, 고통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두근거리고 간질거렸다. 그래, 아마 둘이서 좀 조용한 데, 그러니까 돌이 없는 데서 만났으면 조금이라도 오래 쳐다보고 싶고, 혹시 할 수 있다면 만져보고 싶은 발목과 다리여서 그럴 테다.
혹은 이게 꿈이어서.
꿈에서 깨어 시계를 보니 오전 4시도 안 된 시간이었다. 늑대는 한숨을 쉬고 배에 손을 얹었다. 꿰맨 흔적 없이 매끈했다. 꿈에서 갈라졌던 부분을 아쉬운 듯 손가락으로 한 번 쓰다듬고는 얼굴을 붉혔다. 이불을 온 몸에 감고 의미없이 뒹굴다가 혼자 웃고, 이불로 얼굴을 감싸고 어깨를 부들부들 떨던 늑대는, 약간 숨가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염소가 나한테 말도 걸어주고 날 때려주고 내 배도 꿰메줬어!”
그리고 늑대는 쿡쿡 소리내어 웃으며 뒹굴다 벽에 머리를 세게 부딪치고서도 웃음을 그치지 못했다. 그리고 잠시 후 목소리가 조용해졌다. 아마 잠이 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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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맨 맞습니다. 더 보시면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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