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이름은 후루타카 슌지. 나이는 23세. 카나가와에서 쌀집을 하고 있고 오에도에는 친구를 만나러 왔다고 한다. 밤새도록 으르고 달래고 두들겨패고 협박한 결과 얻은 것은 그게 다였다. 더럽게도 안 부네. 히지카타는 혀를 찼다. 아무리 차고 패고 고함을 질러도 후루타카는 입을 열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는 아무 것도 모른다, 아무 것도 모르는 시민을 잡아다가 뭐 하는 짓이냐, 민주 사회의 경찰이 이래도 되냐며 도로 큰소리를 쳐댔다. 민주 사회 좋아한다며 히지카타가 배를 몇 번 걷어차자 잠잠해지기는 했지만, 대신 이번에는 훌쩍거리고 울며 정말 당황스럽다,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호소하기 시작했다. 고문하는 자들도 사람이라 몇몇 평대원들의 손속이 약해졌고 히지카타는 저녁 나절부터 해 뜨기 직전인 지금까지 물 한 모금 먹이지 않고 피를 몇 번이고 봐 가며 고문을 했는데도 비명을 질렀으면 질렀지 입은 절대 열지 않는 근성에 질려버렸다. 고문하는 입장에서는 뭐 좋은 줄 아나. 히지카타는 혀를 찼다. 사람이 사람한테 이래도 괜찮나 싶은 기분도 들었고, 피곤했다. 땀과 피와 물범벅이 된 놈을 묶어 두고 나와 담배를 한 대 입에 물었는데 저쪽에서 긴토키가 걸어왔다. “야, 뭐 좀 건졌냐?” 사탕을 입에 물었는지 약간 발음이 부정확했다. “이름, 나이, 직장 빼고는 건진 게 없다.” “오호.” “이 정도면 정말 아무 것도 아는 게 없는 거 아닌가 싶다. 진짜 아는 게 없는 말단 중의 말단이거나, 어쩌면 정말 그냥 평범한 시민일지도 모르고. 사카타 부장, 제대로 물어온 거 맞냐?” “날 못 믿냐?” “그렇지만 저렇게까지 자기는 아는 게 없다고 하는데.” “아무 것도 몰라?” 사탕을 우물거리던 긴토키가 피식 웃었다. “장난해? 진짜 아무 것도 모르면 뭐라도 불걸? 하다 못해 거기서 긴 머리 남자가 저쪽으로 도망갔다는 소리 정도는 할 거다. 게다가 보니까 아무 소리도 안 했다던데, 그놈 그거 참 독한 놈일세. 그렇지 않아? 그렇게 독하게 버티는 게 어떤 건지 알잖냐. 모른다고만 한다는 게 진짜 중요한 걸 물고 있다는 증거지.” “쳇, 나도 안다고. 하지만 아니면 어쩔건데. 무고한 시민일 가능성도 있잖아. 애초에 이런 식으로 조사하는 것도 내키지 않고.” “얜 왜 이렇게 인권을 챙기는 척이래. 대학생 애들한테 물이라도 들었냐.” 주머니에서 딸기맛 막대사탕을 꺼내 껍질을 벗긴 긴토키가 사탕을 손가락 사이에 끼고 털레털레 걸었다. “어디 가냐?” “어이, 히지카타 부장. 나랑 교대하자.” “응?” “그자식 제대로 걸렸어. 그놈 분명히 큰 거 물고 있을 거란 말이지.” 긴토키는 킬킬 웃어대며 막대사탕을 입에 넣었다. “네놈한테만은 맡기기 싫지만.” 히지카타는 이마를 찌푸렸다. “네놈이 못하니까 내가 해 주는 거잖아. 감사는 못 할망정. 아 그리고.” “응?” 긴토키가 손을 내밀었다. “라이터 좀 빌려줘봐라.” “넌 없냐?” “난 담배 끊었잖냐.” 히지카타는 혀를 차고 주머니를 뒤져, 마요네즈 모양 라이터를 정말 주기 싫지만 하는 수 없으니 준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밀었다. 긴토키가 라이터를 보고 낄낄 웃었고 히지카타가 긴토키의 무릎을 걷어찼고, 긴토키는 그걸 막으면서 히지카타의 배에 주먹을 꽂았다. 한참 의미없는 장난을 치던 긴토키는 피식 웃었다. “그럼 인간백정질이나 하러 가 볼까.” 사탕의 맛을 고르거나 장난을 치는 듯한 가벼운 어조여서 그게 무슨 말인지 히지카타가 파악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히지카타가 그 말의 뜻을 파악했을 때 이미 긴토키는 저만치 앞서 걸어가고 있었고, 고문실의 문을 열고 있었다.
고문실 안은 후덥지근했다. 퉁퉁 붓고 멍이 든 얼굴로 눈을 감고 있던 후루타카가 인기척에 눈을 떴다. 긴토키를 본 후루카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와 오랜만이네. 후루타카라고 했나?” “……뭐요?” 긴토키는 좀 머쓱한 것도 같고.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뭐긴, 하도 그놈들이 심하게 하는 거 같아서 내가 와 봤지.” “병 주고 약 주는 겁니까?” “아니, 어이구 세상에. 이 독한 놈들 이거 한 것 좀 봐라. 얼굴에 멍이 들었네?” “…….” “야, 이새끼들이 도대체 사람을 얼마나 잡은 거야. 내가 적당히 하랬지.” 긴토키가 대기하고 선 평대사들에게 언성을 높였다. 평대사들은 잔뜩 움츠러들어 고개를 숙였다. “밥은 챙겼냐? 야 아무리 독재 사회 경찰이라도 이러면 안 되지. 그리고 멍이 심하잖아.” 긴토키는 주머니에서 연고를 꺼내 허리를 구부리고 후루타카의 눈에 손을 댔다. 후루타카가 움찔거리자 달래듯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연고 바르고, 좀 쉬자. 어이구 따갑겠네……아우, 보는 내가 다 쓰라리다. 눈 감아, 눈에 들어간다.” 후루타카는 순순히 눈을 감았다. 긴장이 풀렸는지 눈에서 눈물이 한 줄기 떨어졌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울기까지 할까, 이 독한 새끼들이 사람을 아주 잡았네. 이제 괜찮아요. 이제 몇 가지만 더 확인하고 보내드릴테니까.” 긴토키는 풀어진 자세로 후루타카 앞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정말요?” “아 그럼요. 간부 제복 보면 모르나. 그 정도 권한은 있거든. 솔직히 말이야 바른 말이지 히지카타 그 새끼가 독해. 난 이런 식으로 하는 거 싫다고. 명색 경찰이면 일은 제대로 해야지 왜 피를 봐. 그렇지 않아요?” “…….” “아, 눈치 보지 말고. 하긴 뭐 내 말이 믿기겠어. 그러니까 후루타카 씨, 이제 빨리 정리하고 갑시다. 집에 가야죠. 가족들이 기다리는데, 그쵸?” 가족이라는 말이 나온 순간 후루타카의 얼굴이 표가 나게 일그러졌다. 긴토키는 웃었다. “반지는 없고……아직 싱글이슈?” “네.” “하 그렇다니까. 여자들이 괜찮은 남잘 못 알아봐. 나도 싱글인데 이놈의 곱슬머리 때문에 번번이 차인다고. 서러워서. 형씨도 괜찮은데 왜 싱글일까 몰라.” “하하하…….” 웃던 후루타카가 부은 뺨이 아픈지 얼굴을 찡그렸다. 긴토키가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차, 그렇지. 딴 소리할 때가 아니지. 자 그냥 서류상 절차니까 몇 개 확인만 합시다. 후루타카 슌지 씨 맞죠? 오케이. 나이 스물 셋……주소 카나가와시 혼쵸 328-11번지. 오케이. 양이활동에 대해 아는 바 없고, 지나가던 시민인데 진선조의 검문에 불응해서 잡혀왔다. 맞죠?” “네! 네! 맞아요!” “확인 한 번만 더 할테니 대답 잘 해요. 정말 양이활동에 관여한 바 없는 거 맞고?” “그쵸, 난 할 말이 없어요. 뭘 알아야 말씀을 드리죠.” 후루타카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정말 아무 것도 모른다?” “네, 정말이라니까요. 좀 믿어 주세요.” “하긴 지금까지 이렇게 족쳤는데 아무 소리도 안 하는 걸 보면 모르는 거 맞겠네. 양이지사 아닌 거 맞지?” “양이는 뭔 놈의 양입니까. 전 정말 아니라니까요.” “정말이지?” “그럼요, 정말이고 말고요.” “그으러니까, 정말 그냥 지나가던 민간인인데 갑자기 진선조 애들이 양이지사네 뭐네 하더니 잡아왔다고?” 긴토키는 너그럽고 상냥하게 웃었다. “네, 네. 그거죠. 믿어 주시는 거죠?” “응, 그럼요.” 후루타카의 표정이 밝아졌다. 눈물을 글썽이며 웃는 후루타카를 향해 긴토키는 상냥하게 마주 웃어주었다. 그리고 동시에 발을 들어 후루타카를 걷어찼다. 의자에 묶인 채로 바닥에 뒹굴고 나서도 후루타카는 잠시 동안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인지하지 못한 듯 멍한 표정을 짓다 몇 초 후에야 얼굴이 일그러졌다. 한참을 쿨럭거리던 후루타카가 고개를 들자, 긴토키는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웃기고 자빠졌다. 아무 것도 몰라? 지나가던 개새끼가 웃겠다. 모르기는 개뿔을 몰라. 모르는 놈이 비명이랑 이름, 주소 빼고 아무 것도 안 뱉어? 말이 되냐?” “……저……정말로 아는 게 없습니다.” “아는 게 없으시다. 없으면 있게 해 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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