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이름은 후루타카 슌지. 나이는 23세. 카나가와에서 쌀집을 하고 있고 오에도에는 친구를 만나러 왔다고 한다. 밤새도록 으르고 달래고 두들겨패고 협박한 결과 얻은 것은 그게 다였다. 더럽게도 안 부네. 히지카타는 혀를 찼다. 아무리 차고 패고 고함을 질러도 후루타카는 입을 열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는 아무 것도 모른다, 아무 것도 모르는 시민을 잡아다가 뭐 하는 짓이냐, 민주 사회의 경찰이 이래도 되냐며 도로 큰소리를 쳐댔다. 민주 사회 좋아한다며 히지카타가 배를 몇 번 걷어차자 잠잠해지기는 했지만, 대신 이번에는 훌쩍거리고 울며 정말 당황스럽다,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호소하기 시작했다. 고문하는 자들도 사람이라 몇몇 평대원들의 손속이 약해졌고 히지카타는 저녁 나절부터 해 뜨기 직전인 지금까지 물 한 모금 먹이지 않고 피를 몇 번이고 봐 가며 고문을 했는데도 비명을 질렀으면 질렀지 입은 절대 열지 않는 근성에 질려버렸다. 고문하는 입장에서는 뭐 좋은 줄 아나. 히지카타는 혀를 찼다. 사람이 사람한테 이래도 괜찮나 싶은 기분도 들었고, 피곤했다. 땀과 피와 물범벅이 된 놈을 묶어 두고 나와 담배를 한 대 입에 물었는데 저쪽에서 긴토키가 걸어왔다. “야, 뭐 좀 건졌냐?” 사탕을 입에 물었는지 약간 발음이 부정확했다. “이름, 나이, 직장 빼고는 건진 게 없다.” “오호.” “이 정도면 정말 아무 것도 아는 게 없는 거 아닌가 싶다. 진짜 아는 게 없는 말단 중의 말단이거나, 어쩌면 정말 그냥 평범한 시민일지도 모르고. 사카타 부장, 제대로 물어온 거 맞냐?” “날 못 믿냐?” “그렇지만 저렇게까지 자기는 아는 게 없다고 하는데.” “아무 것도 몰라?” 사탕을 우물거리던 긴토키가 피식 웃었다. “장난해? 진짜 아무 것도 모르면 뭐라도 불걸? 하다 못해 거기서 긴 머리 남자가 저쪽으로 도망갔다는 소리 정도는 할 거다. 게다가 보니까 아무 소리도 안 했다던데, 그놈 그거 참 독한 놈일세. 그렇지 않아? 그렇게 독하게 버티는 게 어떤 건지 알잖냐. 모른다고만 한다는 게 진짜 중요한 걸 물고 있다는 증거지.” “쳇, 나도 안다고. 하지만 아니면 어쩔건데. 무고한 시민일 가능성도 있잖아. 애초에 이런 식으로 조사하는 것도 내키지 않고.” “얜 왜 이렇게 인권을 챙기는 척이래. 대학생 애들한테 물이라도 들었냐.” 주머니에서 딸기맛 막대사탕을 꺼내 껍질을 벗긴 긴토키가 사탕을 손가락 사이에 끼고 털레털레 걸었다. “어디 가냐?” “어이, 히지카타 부장. 나랑 교대하자.” “응?” “그자식 제대로 걸렸어. 그놈 분명히 큰 거 물고 있을 거란 말이지.” 긴토키는 킬킬 웃어대며 막대사탕을 입에 넣었다. “네놈한테만은 맡기기 싫지만.” 히지카타는 이마를 찌푸렸다. “네놈이 못하니까 내가 해 주는 거잖아. 감사는 못 할망정. 아 그리고.” “응?” 긴토키가 손을 내밀었다. “라이터 좀 빌려줘봐라.” “넌 없냐?” “난 담배 끊었잖냐.” 히지카타는 혀를 차고 주머니를 뒤져, 마요네즈 모양 라이터를 정말 주기 싫지만 하는 수 없으니 준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밀었다. 긴토키가 라이터를 보고 낄낄 웃었고 히지카타가 긴토키의 무릎을 걷어찼고, 긴토키는 그걸 막으면서 히지카타의 배에 주먹을 꽂았다. 한참 의미없는 장난을 치던 긴토키는 피식 웃었다. “그럼 인간백정질이나 하러 가 볼까.” 사탕의 맛을 고르거나 장난을 치는 듯한 가벼운 어조여서 그게 무슨 말인지 히지카타가 파악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히지카타가 그 말의 뜻을 파악했을 때 이미 긴토키는 저만치 앞서 걸어가고 있었고, 고문실의 문을 열고 있었다.
고문실 안은 후덥지근했다. 퉁퉁 붓고 멍이 든 얼굴로 눈을 감고 있던 후루타카가 인기척에 눈을 떴다. 긴토키를 본 후루카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와 오랜만이네. 후루타카라고 했나?” “……뭐요?” 긴토키는 좀 머쓱한 것도 같고.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뭐긴, 하도 그놈들이 심하게 하는 거 같아서 내가 와 봤지.” “병 주고 약 주는 겁니까?” “아니, 어이구 세상에. 이 독한 놈들 이거 한 것 좀 봐라. 얼굴에 멍이 들었네?” “…….” “야, 이새끼들이 도대체 사람을 얼마나 잡은 거야. 내가 적당히 하랬지.” 긴토키가 대기하고 선 평대사들에게 언성을 높였다. 평대사들은 잔뜩 움츠러들어 고개를 숙였다. “밥은 챙겼냐? 야 아무리 독재 사회 경찰이라도 이러면 안 되지. 그리고 멍이 심하잖아.” 긴토키는 주머니에서 연고를 꺼내 허리를 구부리고 후루타카의 눈에 손을 댔다. 후루타카가 움찔거리자 달래듯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연고 바르고, 좀 쉬자. 어이구 따갑겠네……아우, 보는 내가 다 쓰라리다. 눈 감아, 눈에 들어간다.” 후루타카는 순순히 눈을 감았다. 긴장이 풀렸는지 눈에서 눈물이 한 줄기 떨어졌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울기까지 할까, 이 독한 새끼들이 사람을 아주 잡았네. 이제 괜찮아요. 이제 몇 가지만 더 확인하고 보내드릴테니까.” 긴토키는 풀어진 자세로 후루타카 앞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정말요?” “아 그럼요. 간부 제복 보면 모르나. 그 정도 권한은 있거든. 솔직히 말이야 바른 말이지 히지카타 그 새끼가 독해. 난 이런 식으로 하는 거 싫다고. 명색 경찰이면 일은 제대로 해야지 왜 피를 봐. 그렇지 않아요?” “…….” “아, 눈치 보지 말고. 하긴 뭐 내 말이 믿기겠어. 그러니까 후루타카 씨, 이제 빨리 정리하고 갑시다. 집에 가야죠. 가족들이 기다리는데, 그쵸?” 가족이라는 말이 나온 순간 후루타카의 얼굴이 표가 나게 일그러졌다. 긴토키는 웃었다. “반지는 없고……아직 싱글이슈?” “네.” “하 그렇다니까. 여자들이 괜찮은 남잘 못 알아봐. 나도 싱글인데 이놈의 곱슬머리 때문에 번번이 차인다고. 서러워서. 형씨도 괜찮은데 왜 싱글일까 몰라.” “하하하…….” 웃던 후루타카가 부은 뺨이 아픈지 얼굴을 찡그렸다. 긴토키가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차, 그렇지. 딴 소리할 때가 아니지. 자 그냥 서류상 절차니까 몇 개 확인만 합시다. 후루타카 슌지 씨 맞죠? 오케이. 나이 스물 셋……주소 카나가와시 혼쵸 328-11번지. 오케이. 양이활동에 대해 아는 바 없고, 지나가던 시민인데 진선조의 검문에 불응해서 잡혀왔다. 맞죠?” “네! 네! 맞아요!” “확인 한 번만 더 할테니 대답 잘 해요. 정말 양이활동에 관여한 바 없는 거 맞고?” “그쵸, 난 할 말이 없어요. 뭘 알아야 말씀을 드리죠.” 후루타카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정말 아무 것도 모른다?” “네, 정말이라니까요. 좀 믿어 주세요.” “하긴 지금까지 이렇게 족쳤는데 아무 소리도 안 하는 걸 보면 모르는 거 맞겠네. 양이지사 아닌 거 맞지?” “양이는 뭔 놈의 양입니까. 전 정말 아니라니까요.” “정말이지?” “그럼요, 정말이고 말고요.” “그으러니까, 정말 그냥 지나가던 민간인인데 갑자기 진선조 애들이 양이지사네 뭐네 하더니 잡아왔다고?” 긴토키는 너그럽고 상냥하게 웃었다. “네, 네. 그거죠. 믿어 주시는 거죠?” “응, 그럼요.” 후루타카의 표정이 밝아졌다. 눈물을 글썽이며 웃는 후루타카를 향해 긴토키는 상냥하게 마주 웃어주었다. 그리고 동시에 발을 들어 후루타카를 걷어찼다. 의자에 묶인 채로 바닥에 뒹굴고 나서도 후루타카는 잠시 동안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인지하지 못한 듯 멍한 표정을 짓다 몇 초 후에야 얼굴이 일그러졌다. 한참을 쿨럭거리던 후루타카가 고개를 들자, 긴토키는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웃기고 자빠졌다. 아무 것도 몰라? 지나가던 개새끼가 웃겠다. 모르기는 개뿔을 몰라. 모르는 놈이 비명이랑 이름, 주소 빼고 아무 것도 안 뱉어? 말이 되냐?” “……저……정말로 아는 게 없습니다.” “아는 게 없으시다. 없으면 있게 해 드려야지.”
관구[각주:1]가 마음에 병이 있어 늘 깊이 탄식하며 세상을 멀리하며 괴력난신과 이매망량에 대한 책을 즐겨 썼다. 그의 벗들이 때로 즐겨 돕고 때로 한탄하며 나무랐다. 울증이 있어 세상을 멀리하나 친구의 집만은 간혹 방문하여 괴력난신과 이매망량에 대해 물으니 이가 경극자다. [각주:2]
(중략)
경극자 가로되 "세상에 이상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하였다. 관구가 묻기를 "허면 자네가 신사의 신주를 맡는 까닭은 무엇이며 자네가 주술을 말함은 어찌된 일인가?" 했다. 경극자가 눈을 흘기며 가로되 "지금까지 비유하여 설명하기를 수 차례 하였으나 오히려 질문을 하니 이는 어찌된 연유인가.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니 말하여 무엇하리오." 하였다. 관구가 더 물으려 하였으나 경극자는 책을 읽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관구가 하릴없이 일어나 문을 나와 언덕길을 내려오다 어지러워 넘어졌다. 탄식하며 가로되 "이는 경극자의 술수로다." 하였다.
훗날 탐정[각주:3]을 만나 이 일을 말하자 탐정이 웃으며 가로되 "그것은 언덕의 미치는 바요 경극자가 한 일이 아니다. 경극자는 방에 틀어박혀 책읽기만 일삼으니 책 먹는 요괴라 요괴가 어찌 사람을 어지럽게 하리오." 관구가 탐정에게 "경극자는 요괴가 아니고 당신의 구제고교 후배이니 말이 너무 과합니다."라 하였다. 그러나 탐정은 큰 소리로 웃으며 "밤낮 부모상을 당한 얼굴을 하고 있는 자가 어찌 인간이겠는가. 또한 그는 요괴가 없으며 이상한 일은 아무 것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논리를 들어보면 궤변이고, 긴 문장과 교묘한 말솜씨로 사람의 혼을 빼놓고 정신을 흐트려 그 뜻을 이루는 바이니 참으로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하였다. 관구가 항의하여 말하기를 "그러나 당신은 경극자와 더불어 온갖 일에 참여하며 경극자의 일을 돕습니다. 어찌 사람으로 요괴의 일을 돕습니까?" 했다. 탐정이 더욱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어리석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 신이거늘 어찌 인간의 잣대로 나를 판단하는가." 관구는 어이가 없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외적으로 진선조가 하는 일은 체제전복을 꾀하는 양이지사를 검거하는 것과 천인이 관련된 범죄에 대한 수사 및 범인인도 등으로 알려져 있다. 헌병과 경찰 업무에 걸쳐있다고 봐도 좋다. 어디까지나 자국민의 보호와 치안 유지를 위한 조직이라는 것이 그 명분이다. 하는 일만 보면 그다지 틀린 말도 아니다. 어쨌건 에도는 평온하다. 혁명을 외치는 목소리는 줄어들고 있고 현재 사회를 움직이는 질서는 잘 유지되고 있다. 인권 탄압이니 자국민의 보호보다 천인의 재산권, 생명권을 우선시한다느니 하는 비난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질문을 받은 마츠다이라 카타쿠리코는 한 마디로 대꾸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 말 그대로 어쩔 거냐고 물었을 때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사실이지 않은가. 그래서 어쩔 거냔 말이다. 어쨌건 진선조는 그런 조직이다. 그리고 그 점에 대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치깡패 아니냐느니 치안 유지를 빌미로 정권의 더러운 부분을 은폐하는 뒷손이라느니 하는 소리에는 각별히 신경을 쓰는 편이었다. 명분이 없으면 활동하기 어려운 조직이다. 무장 경찰이라니 계엄령 하의 정권과 다를 게 없으니 누구라도 여기 대해 지적하면 곤란하다. 정말로 계엄령이 선포되었으면 무장 경찰이 당당히 돌아다니겠지만 실제로 계엄령을 내릴 만한 세력이 일본 내에는 없기 때문이다. 즉 진선조의 위치는, 아주 애매하다.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그 점에 대해 지적하면 끝장이고, 그와 같은 이유에서 그들에게 이미지란 실로 중요하다. 우리는 여러분의 친근한 벗이고 이웃에 있는 존재라고 끊임없이 외치는 것이다. 어리고 예쁜 연예인을 불러다가 1일 국장을 맡기는 웃기는 이벤트부터 은근슬쩍 진선조의 인간적인 면을 홍보하는 전략까지. 그러니까 여러 정치적인 조작이 일어나곤 한다. 그리고 좋지 않은 면은 최대한 언론에 내보내지 않는다. 신원이 불분명한 자들은 은근슬쩍 은폐하고, 나머지는 작은 걸 크게 부풀려서 은근슬쩍 띄워주기도 한다. 사실 말이 좋아 도장의 후계자이고 천연이심류의 계승자이지 그냥 동네 건달보다 조금 나은 수준 아니냐고 비웃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었지만 대다수는 그냥 그런가보다 한다. 일단은 천연이심류라니까 듣기 좋지 않은가. 듣기 좋은 말은 속기도 쉬운 법이다. 도장의 계승자, 면허 전수자, 목록 소지자 같은 말은 사람을 현혹시키기 좋은 법이다. 그런 맥락에서 대외적으로 진선조의 부장은 히지카타 토시로로 알려져 있지만, 언론에 잘 노출되지 않는 부장이 하나 더 있다. 그리고 언론에 노출되지 않는 만큼, 이 부장이 하는 일은 대개 더 험하고 더 지독한 데가 있다. 진선조에서 히지카타 토시로 부장을 귀신부장이라 부르고, 엄하고 무섭지만 통솔력 있고 국장 대신 실제로 진선조를 이끌어가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동시에 사카타 긴토키 부장을, 야차부장이라고 부르며 두려워한다.
야차부장이 한길가에 서있다. 정확히 말하면 이누이 성(星) 대사관 앞에 서 있다. 흰 바탕에 푸른 무늬를 염색한 기모노를 입고 옆구리에 목도를 끼고 어슬렁어슬렁 걷는 폼이 꼭 그냥 이웃집 아저씨 내지는 가부키쵸를 돌아다니는 건달 같아 보인다. 게다가 적당히 풀어진 얼굴에 손에 든 경단꼬치가 매우 실없어 보인다. 역시 평복을 한 대사 하나가 인사를 하는 것처럼 손을 흔들며 다가가서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사카타 부장님, 수상한 놈이라곤 아무도 안 보입니다.” “병신아, 수상한 놈이 나 수상하다고 광고하고 다니냐?” 역시 인사를 하는 듯 어딘가 나사빠진 미소를 지으며 긴토키는 대꾸했다. 나사빠진 미소를 받은 평대사는 마치 크게 야단이라도 맞은 것처럼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치만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데 이 중 누가 수상하다고 단정짓기는 뭣하잖아요?” “보면 모르냐, 제일 수상해 보이지 않는 놈이 이럴 땐 제일 이상한 놈이라고. 특히 저기 저 놈. 저거 족치면 분명히 뭐가 나온다니까.” “누구요?” “아, 정말 거-” 그때 긴토키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어떤 놈이 사람 말씀하시는데 전화질이냐는 듯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노려본 긴토키는 발신자를 확인하고 히죽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어~오오구시 군.” “이름 똑바로 못 부르냐?” “허어, 오오구시 군을 오오구시 군이라 부르지 못하다니 이 어인 변고.” “지랄한다. 아무튼 그쪽은 어때?” “여기? 글쎄.” “넌 도대체가.” “아 아무튼 끊고, 찾았단 말이다. 지금부터 좀 바빠질 거 같으니까 이따 이야기하자고.” 건너편에서 무슨 반응을 보이건 말건 전화를 끊었다. 옆에서 나는 수상한 놈도 통화 맥락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부하를 보고 한 번 혀를 찬 다음, 긴토키는 무성의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는 몸짓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대사관 담벼락 아래 기대어 졸고 있는 탁발승이 보였다. “스님이 왜요?” “야, 종교인이라고 그냥 넘어가냐? 저기서 탁발하는 스님이 이상한 거지. 왜 저기 있냐고. 사람 많은 길거리 다 놔 두고. 탁발을 하려면 번화가나 주택가를 골라야지. 이 근처에 그런 게 있냐? 대사관 옆에서 뭐 주워먹을 게 있다고 저기 저러고 있냐고. 좀 이상하잖아.” 말을 마치자마자 긴토키는 그리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실례함다. 혹시 불 가진 거 없으세요?” 웃으며 말을 붙이자 탁발승은 몸을 움찔했다. “응? 왜 그렇게 놀라세요?” “아무 것도 아니오. 빈도에게 무슨 볼일이신지?” “스님 혹시 불 가진 거 없냐고요.” 긴토키의 목소리를 들은 긴 머리의 탁발승은 어쩐 일인지 아까와는 조금 다른 자세로, 삿갓에 손을 올렸다 금방 내리고, 한참 손이 여기저기를 방황하는 등 조금 당황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긴토키는 매우 흥미롭다는 얼굴로 팔짱을 끼고 탁발승이 푹 눌러쓴 삿갓을 노려보고 있었다. 평대사는 조마조마한 얼굴로 그쪽을 보고 있었다. 야차부장이 말한 대로 수상한 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야차부장은 놈을 어느 타이밍에 잡아챌까를 지켜보고 있었지만, 탁발승은 어딘가 혼란스러워보였다. 그래서 탁발승이 한참만에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을 때, 그 평대사는 자기가 뭘 들었는지를 판단하느라 꽤 애를 먹었다. “……키.” “응?” “역시 긴토키가 맞구먼. 내 귀가 틀리지 않았어.” 탁발승은 여전히 삿갓을 눌러쓴 채였다. 정확하게 긴토키라는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듣고 평대사는 큰일이 났다고 생각했다. 사카타 긴토키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앞에서 드러나게 활동하는 편이 아닌 자에 대해 안다는 것은 그만큼 양이활동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말이다. 긴토키가 팔짱을 풀고 옆구리에 찬 목도에 손을 얹었다.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지만 얼굴이 굳어 있었다. “너 누구야?” “누구냐니. 먼저 부른 건 자네 아닌가.” “무슨 소리야. 불 빌려 달랬지 이름 불렀냐고.” 하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고, 탁발승은 삿갓을 벗었다. 눌러쓰고 있던 삿갓 아래에서 얼굴과 긴 머리가 드러났다. “카츠라 코타로?” 지명수배전단에 찍힌 것보다 덜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 드러났다. 그 얼굴은 다채롭고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반가운 것도 같고 의아한 것도 같고 놀란 것도 같고 화가 난 것도 같은. 경찰조직 간부를 알아보고 짓는 표정은 절대 아니었다. “뭔가, 즈라라고 부르지 않는 건가?” “즈라는 또 뭐냐, 네녀석 별명이냐?” 긴토키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들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순간 카츠라의 얼굴이 굳었다. 익숙하던 것이 사실은 자신이 알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표정이라고 하면 적당했으리라고, 그 장면을 지켜보던 평대사는 나중에 잠깐 회상한다. 그 표정을 한 마디로 정의내리기는 어려웠다. 경악, 충격, 그리고 분노, 의심, 그 외의 여러 가지가. 긴토키는 수갑을 들고 카츠라의 팔목을 잡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카츠라는 긴토키의 팔을 뿌리치고 칼을 겨누었다. “카츠라 코타로. 체포한다. 너도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도 선임할 수 있어. 일단 감옥 안에서.” “……다카스기가 해 준 말이 사실이었군.” 카츠라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다카스기? 역시 네놈들 한패였나? 요새 그쪽의 움직임이 수상하다더라니.” “우리는 예전부터 한패였네. 자네가 그걸 모른단 말인가.” “너, 날 아냐?” “글쎄. 아는 자인 줄 알았는데 아닌 것도 같군. 자네 누군가?” “날 몰라? 진선조 부장 사카타 긴토키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네가 어떻게?” “무슨 개소리냐?” 칼을 겨눈 채 두 사람은 전혀 뜻이 통하지 않는 대화를 주고 받았다. 분위기는 팽팽해서, 금방이라도 둘 중 하나가 내리치는 칼에 하나의 팔이라도 잘려나갈 것 같았다. 누구 하나라도 먼저 움직이면 팽팽한 대치상태는 깨어지고 당장이라도 둘 중 하나는 어떻게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노려보고 있었다. 카츠라는 회한이 어린 표정으로, 긴토키는 의외의 장소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뒤통수라도 맞은 듯한 불쾌하고 찜찜한 표정으로. “너 정말 누구냐?” “그걸 모르는 자네는 도대체 누군가?” 먼저 질문을 던져 침묵을 깬 긴토키에게 카츠라는 똑같은 말로 답했다. 그리고 한참, 말없이 검을 겨누고 서로를 가늠해보는 시간이 이어졌다. 침묵을 참지 못한 긴토키가 칼을 휘두르려는 찰나, 연막탄이 터졌다. 연기 너머로 팔락거리는 카츠라의 머리카락을 향해 손을 뻗었으나 카츠라는 잡히지 않고, 목소리만 들렸다. “잘 있게 긴토키!” “그러니까 너 이 새끼, 뭐하는 놈이냐고!” 긴토키가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고 연기가 흩어지고 카츠라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긴토키는 말없이 벽을 걷어찼다. 그리고 잠시 후, 핸드폰을 꺼내 버튼을 눌렀다. “야, 나다. 이 씨발놈의 새끼들아, 지금 카츠라 코타로가 튀었는데 한가하게 안부 인사가 나오냐? 당장 주변 수색해서 수상해 보인다 싶은 놈들은 죄다 끌고 와. 못 잡으면 너네가 죽을 줄 알아.” 전화기 너머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리고, 허둥지둥하는 대답이 들렸으나 긴토키는 듣지도 않고 전화를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그리고 잠시후, 곳곳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상사에게 살해당하고 싶지 않은 평대사들의 과잉반응이 웃겼는지 긴토키는 피식 웃으며 벽에 기대어 주변에서 일어나는 작은 소요를 감상하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아무 소득 없이 돌아오는 진선조 대원들이 하나 둘 긴토키 앞에 모였고 긴토키는 말없이 그들을 노려보았다. 순찰차가 도착했고 제복을 입은 진선조 대원들이 몇, 그들 옆에서 우울한 표정으로 함께 긴토키의 시선을 감당해야 했다. 오늘은 또 왜, 카츠라 코타로가 튀었다더라, 아 존나 재수없네, 우리 이제 죽은 거냐? 그렇다고 봐야지. 이런 작은 대사들이 오고갔으나 긴토키가 한 번 노려본 다음부터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하나 잡았습니다.” 조마조마한 얼굴로 진선조 대원들이 한 명을 연행해 왔다. 키가 작고 이목구비가 흐릿해서 인상에 남지 않을 것 같은 얼굴의 평범한 남자였다. “무슨 말이에요. 양이라뇨, 전 그냥 지나가던 사람이라고요. 경찰이라고 막 이래도 됩니까? 이게 뭐죠?” 긴토키가 눈을 빛냈다. “지나가던 사람 좋아한다. 아까 이 건물 밑에서 얼쩡거리던 놈이잖아.” 남자는 잠시 몸을 움찔거리다 잠시 후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을 이었다. “그건 약속이 있어서 그런 거고……” “무슨 약속?” “아니, 왜 반말입니까. 경찰이면 그래도 돼요?” “아, 이 새끼 말귀 못 알아먹는 것 좀 보소. 야, 너는 지금 우리한테 말대꾸할 군번이 아니라니까. 니가 여기서 뭔 약속을 했냐고 묻잖아. 묻는데 왜 대답을 안 하냐고, 어?” “…….”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고 있는 남자를 보고 긴토키는 피식 웃었다. “네, 네. 그건 일단 저희랑 같이 간 다음에 이야기해요. 일단 검문에 불응한 죄로 잠시 좀 같이 가셔야겠습니다.” “그런 게 어딨습니까?” “어딨기는, 여기 있다. 야, 이분 차에 태워 드려라.” 말이 떨어지자마자 옴싹달싹 못하게 남자의 양팔을 거머쥐고 가는 평대사들을 보며 긴토키는 코웃음을 쳤다. 순찰차로 이동하는 내내 긴토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평대사들은 잡담 한 마디 주고 받지 않고 조용히 정좌하고 앞만 보고 있었다.
예전에 받았던 리퀘입니다. 에리 님이 하셨던 죽음(엘리자베트)과 만나는 로우위(커피우유신화)입니다.
로우위는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존재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중얼거렸다. “꿈도 참. 꿈같지 않은 것을 꾸는 군.” 신이라고 해도 꿈까지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 건가. 그렇다면 우주의 법칙은 올바르지 않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새카만 정장에 까만 넥타이를 맨-꼭 장례식에 가는 듯한 복장을 한 그것이 로우위 자신처럼 입꼬리를 당기며 웃는 얼굴을 지었다. -우주의 법칙? 재미있구나. 게다가 자신의 인지 체계 밖에 있는 것을 꿈으로 치부하다니 그러면 편한가? 회원 로우위. “꿈치고는 예의가 없구나. 너는 누구냐.” -누구? 글쎄다. 그것은 코웃음을 쳤다. 협회에 이런 능력을 가진 회원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우유협회에도, 자신이 아는 한은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모르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되다만 신, 리하이가 이런 것을 할 수 있을 리도 만무하다. 저것이 누구의 짓인지, 누가 사주한 것인지 알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 전에 이 조작된 꿈에서 이 기분나쁜 존재를 쫓아내는 것이 먼저였다. 도망갈 때 흔적을 찾아도 좋고, 패배시켜 입을 열게 만드는 것도 좋다. 로우위는 설득의 능력을 사용하며 입을 열었다. “하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지. 우선 이야기를 좀 해 볼까.” 그것은 웃었다. -날 설득하겠다? 입을 열게 만들겠다? 참 보기 드물게 패기 있는 인간이구나. 칭찬해 주마. 그것은 로우위의 말문을 막히게 했다. 설득시키고자 한 대상이 설득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경우는 물론 많다. 하지만 말문 자체를 막히게 하는 일은 처음이었다. 분위기가 달랐다. 게다가 자신을, 우주의 신을 얕잡아보고 있었다. “날 인간취급하지 마라. 역시 리하이 쪽이냐, 아니면 우유 협회?” 로우위는 평소보다 조금은 어렵게 입을 뗐다. 그것은 피식 웃었다. -그까짓 인간들의 몇 천년 단위 장난질 정도로 보여? 유감스럽구나. 그것의 웃는 얼굴이 자신과 완전히 똑같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라는 것을 로우위는 깨달았다. 그것의 눈빛은 지금까지 살면서 본 무엇과도 다른 것이었따. -우선 로우위, 이 말부터 해 주고 싶구나. 그것의 목소리는 아주 차가웠다. -착각하지 마라. 네가 인간이라고 하건 신이라고 하건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다. 네가 무엇이건 나는 관심이 없어. 로우위는, 이전 발렡타인이 자신을 신으로 인정하지 않겠노라 선언한 순간만큼 분노했다. 분노가 말문이 트이게 했다. “내가 이 우주의 신이다. 우주의 법칙을 만드는 신인데, 왜 네 관심을 구해야 하지? 우주의 법칙은 네가 관심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태양이 네 허락을 받고 움직이나? 공기는 네 관심을 얻은 후에야 존재하나? 웃기지 마라. 네가 관심이 있건 없건 나는 신이다.” 그것은 로우위의 선언에도 표정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그것이 갑자기 로우위의 앞으로 다가왔다. -하긴 태양이니 공기니, 그런 것들을 움직이는 장난도 재미있기는 할 거야. 네가 신이고 법칙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나쁘지 않지. 하지만. 그것이 로우위의 어깨를 세게 잡았다. 로우위는 자신의 어깨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뭔지 잘 알고 있었다. 가끔 사선을 넘는 일을 할 때, 굉장히 차가운 무언가가 스치고 지나가는 섬뜩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꼭 그것이 어깨를 잡고 있는 것 같았다. -네가 누구건 뭐건 말이지, 마지막에 내가 있다는 사실까지 바꿀 수는 없는 거란다. 그것이 로우위의 뒷머리를 잡았다. 어깨를 안고 머리를 감싼 포즈만큼은 다정해서 누가 보더라도 연인이 키스를 주고 받는 것 같았지만, 뒷머리를 잡은 손은 지금껏 어떤 회원에게서도 본 적이 없는 힘과 무게감을 로우위에게 전하고 있었다. 깜박이지 않는 무기질적인 눈과 비웃듯 올라간 입이 가까이 다가왔다. 저것이 닿는 순간 끝이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끝이다. 로우위는 신이 되고 생긴 능력을 모두 사용하려 했으나 어느 것 하나 먹히는 것이 없었다. 그것의 찬 피부가 로우위의 뺨에 스쳤다. 이제 끝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갑자기 그것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런 거다. 신? 고작 세상의 법칙 하나둘 가지고 오만하게 굴지 마라, 인간. 그것의 목소리에는 웃음기마저 섞여 있어, 로우위는 신이 된 이래 가장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인지 알 수도 없는 것에게 졌다. “왜 온 거냐.” 억지로 목소리를 짜낸 것은, 내가 신이라는 자존심은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응? 그러게. 뭐 어차피 또 볼 테니까, 네가 아무리 바라도 이건 변하지 않거든.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아라. 그때까지 날 잊지 말고. 그것은 악의 가득한 웃음만 남기고 사라졌다. 로우위가 다시 눈을 뜨자, 슈톨렌이 티피카와 아마렐로가 저격 준비를 마치고 출발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10분 후를 보건대 그들의 첫 저격은 실패할 것이다. 전지전능한 기분을 만끽하던 로우위는, 마음 속에 가라앉은 공포감이 다시 흙탕물처럼 일어나려 하자 고개를 저었다. 그것이라고 해도, 자신이 신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작년에 낸 앤솔로지에 실린 단편인데, 음 제가 여기 얽혀서 굉장히 나쁜 일이 있어서 탈덕하고 뒷부분 쓸 계획을 완전히 접었다가 된장은 콩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인생의 진리를 깨닫고 탈덕은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쓰던 건 완결해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 다시 올립니다. 썼던 부분은 수정해서 재연재하는 걸로 하고, 12월 은혼온리를 목표로 달리겠습니다.
세계의 밤
이런 밤, 여기 실존하는 자연의 내부-순수자기self-는 환영적 표상들 속에서 주변이 온통 밤이며, 그때 이쪽에선 피흘리는 머리가, 저쪽에선 또 다른 하얀 환영이 갑자기 튀어나왔다가는 또 그렇게 사라진다. 무시무시해지는 한밤이 깊어가도록, 인간의 눈을 바라볼 때, 우리는 이 밤을 목격한다. -헤겔, 『예나의 실재철학』
진선조라는 이름 하면 떠오르는 반응을 말하라고 할 때, 에도 시민들의 반응은 대개 세 가지다.
경찰이 없는 것도 아닌데 굳이 그런 걸 만드는 이유가 뭐냐, 세금 낭비다. 독재국가 티를 내나, 아예 대놓고 독재국가라고 해라. 준 식민지라고 티내냐 공공기관이 무장을 하다니 이게 웬 말이냐. 정치력이 부족하니 특무경찰 같은 걸로 괜히 공포분위기를 조성해보겠다 이거냐. 이것이 첫 번째. 나랏님이 하시는 일이니 뭐 그럴 수 있겠지. 시끄럽고 귀찮은 거 다 잡아가면 우리는 편하고. 양이지산가 뭔가가 치안을 어지럽힌다는데 잡아 가면 좋지 않나. 이것이 두 번째. 몰라 귀찮아. 시끄럽고 귀찮아. 거기까지 신경 쓰고 싶지 않아. 이것이 세 번째. 세 번째가 절대다수고 그 다음이 두 번째, 첫 번째가 가장 적지만 가장 말이 많다. 여기 속하는 것이 극소수의 지식인, 인권운동가, 학생, 사상가, 양이지사 등 사회가 위험시하는 부류의 인물들이다. 아무튼 절대다수의 반응은 그런 식이다. 생각하기 귀찮은 것이다. 그리고 이상과 같은 반응에 대한 진선조의 반응도 그다지 다를 것이 없다. 어떻게 생각하건 상관 없고 그저 너희 뭐 하는 놈들이냐고 묻지만 말아라, 가 그들이 소망이다. 일일이 대응하기도 귀찮은 것이다. 그러니 가급적이면 모두가 귀찮아 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첫 번째와 같은 반응이 가장 당혹스럽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도 진선조가 왜 필요한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묵묵히 쇼군을 위해 일하면 되는 거 아닌가. 사람들 반응이야 뭐 그럴 수 있지. 모두가 우리를 좋아할 수는 없으니까. 어 그런데 도대체 독재국가란 게 뭐냐?” 이것은 거기에 대한 진선조 국장 곤도 이사오의 반응. “골치 아픈 이야기 하면 못 알아먹거든요. 그나저나 히지카타 부장은 언제 죽어준답니까?” 이것은 1소대장 오키타 소고의 반응. “저, 그것보다 감찰 결과 보고부터 좀 들어주시면 좋겠어요.” 이것은 감찰대원 야마자키 사가루의 반응. “손 더럽히기 싫은 사람들 대신해서 손 더럽히는 게 뭐. 이제 와서 새삼스럽지도 않다. 존재의의를 따져서 뭐 할 거야.” 이것은 진선조 부장 히지카타 토시로의 반응. “이번 달부터 원피스가 한 달간 휴재래. 오다신이 어디 아픈 거 아냐?” 이것은 진선조 부장 사카타 긴토키의 반응.
“네놈은 말이야. 도대체 생각이란 게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어머 얘가 사람 무시하네. 생각이 왜 없어.” “점프 생각도 생각이냐?” “만화는 인류 문명의 꽃이다, 요녀석아.” 부장 둘이 독대하고 앉아서 이야기를 하면 항상 결론이 같다. 히지카타가 뒷목을 잡고, 긴토키는 성의없이 눈만 뜨고 앉아 있거나 실실 웃거나 히지카타를 약올리는 쪽으로 결론이 난다. 요즈음은 운동권 학생들도 꽤 강성이라 시끄럽다. 진선조의 존재 의의를 묻는 대자보가 에도에 있는 모든 대학교 내에 붙었다고 한다. 대학생들이 하는 일은 단순하다. 대자보가 붙고 나면 그 다음은 시위다. 시위 자체야 진압하면 되지만 그 과정에서 불평하는 사람은 점차 늘어난다. 하나를 잡아가면 둘이 불평한다. 그런 목소리마저 누를 수는 없었다. 좀 더 효율적으로 입을 다물게 할 수는 없나. 히지카타는 혼자 생각했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 방법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시위가 늘어가는 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다. 분명히 정부에서도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선조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그 상황에서 함께 상황을 타개해야 할 긴토키는 심각해지기는 커녕 그런 건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비웃고 있으니 히지카타는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히지카타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노려보자 긴토키는 제복 주머니를 뒤져-어쩐지 주머니가 불룩했다- 사탕봉지를 꺼내더니 사탕 하나를 히지카타의 입에 쑤셔넣었다. 사탕이 목구멍으로 바로 넘어가서 한참을 쿨럭대던 히지카타가 핏발선 눈으로 긴토키를 노려보았다. “야!” “혈압 올라? 고혈압은 위험해. 일단 진정해라.” 긴토키는 사탕 껍데기를 세 개째 벗기고 있었다. “……날 죽일 셈이냐!” “사탕 하나로 사람이 죽진 않아, 왜 섬세한 척이래.” 종알거리며 히지카타의 입에 깐 사탕을 전부 넣어주고, 입이 사탕으로 가득차서 말도 못 하고 우물거리고 있는 히지카타에게 긴토키는 상냥한 얼굴로 웃어보였다. “왜 새삼스럽게 심각해지고 그러냐. 에너지 낭비하지 말고 할 일이나 하면 되지 뭘.” “…….” “아니 하는 짓이 웃기잖아. 우리가 언제 생각 하고 일 했어? 그건 생각해서 뭘 해? 애초에 아는 놈이 아무도 없는데 답이 나오냐?” “……” “애새끼들이 파르르 떨었다고 같이 화내서 어쩔 거야. 원래 학생 놈들이 다 그렇잖아. 답도 안 나오는 거 고민하다 지들끼리 괜히 열내면서 시위한답시고 난리고. 웃기지도 않아요. 졸업하고 나면 싹 까먹고 상사 말만 잘 듣더라.” 히지카타는 대답 대신 긴토키를 노려보았다. 긴토키의 표정은 차분했다. 싱글싱글 웃으며 긴토키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네 말마따나 새삼스러울 것도 없잖아. 우리가 무슨 명분이 있는 일을 했었냐, 거기서 명분을 찾는 놈이 병신이지. 그런데 새삼 그 이야기는 왜 꺼내냐고. 너 좀 웃긴다고 생각하지 않냐?” “하지만 최소한 거기에 대해 생각은 해야 하잖냐.” 사탕을 깨부수며 억지로 삼키고 반박을 하자 긴토키는 어린애한테 뭔가를 설명하듯 상냥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생각을 왜 해. 해 봐야 현실이 병신 같은 건 변하지 않는데.” “그걸 인정하는 순간 우리의 명분은 없어진다.” “그놈 참. 야, 애초에 처음부터 문제가 많은 조직이었고 문제가 많은 일을 해 왔다고. 너넨, 아니 최소한 너는 그걸 알면서도 받아들였고. 그럼 그냥 인정해. 내가 하는 일은 아무 명분이 없는 일이라고. 그걸 왜 애써 부인하려고 드냐. 설마 너 M이냐? 역시 M이었어?” 발끈해서 긴토키를 쳐다본 히지카타는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혈관 속의 피가 식는 느낌을 받았다. 몇 년을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표정이다. 평소에는 어물전 생선 같은 멍한 눈을 하고 있으면서 꼭 이럴 때만. 헤벌쭉 풀어진 얼굴로 웃는 주제에 눈은 벌겋게 번들거리고 있다. 그리고 그럴 때 긴토키는 진심이다. 히지카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자 긴토키는 사탕봉지를 흔들며 투덜댔다. “야, 얼마 안 남은 사탕 네가 다 먹었잖아. 딸기맛은 봄 한정품인데 어쩔 거야.” 그러면 그렇지. 아까의 그 표정은 어디로 가고 그저 멍청한 얼굴로 투덜거리고 있는 긴토키의 머리를 걷어찼다. “아 왜 차고 그래애~ 아프잖아.” “아프라고 찼다. 왜 덜 아파? 더 차주랴?” “히지카타 부장, 사실 나 싫어하지?” “안 싫어할 만한 짓을 한 적이 있으면 말을 해 봐라 쯧.” “공연히 으르렁거려 보아도 위화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긴토키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는 위화감을 마치 가면처럼 얼굴에 두르고 있었다. 가끔 번뜩이는 붉은 눈마저도 위화감이 들었다.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