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소의 무덤에서

그래도 할로윈인데 시귀 이하를 한 편도 번역하지 못한 게 맘에 걸려서 오늘은 <소소소묘>를 준비했습니다. 한자 독음도 달았어요! 제가 이런 형식의 시의 운율은 잘 모르는데(거기까지 배우지 못한 무식한 자) 읽어보시면 또 나름의 맛이 있어요. 운율을 살려 읽으면 더 좋습니다.


蘇小小墓 소소소의 무덤에서

李賀(이하)

 

幽蘭露 (유란로)

如啼眼 (여제안)

無物結同心 (무물결동심)

煙花不堪剪 (연화불감전)

草如茵 (초여인)

松如蓋 (송여개)

風爲裳 (풍위상)

水為佩 (수위패)

油壁車 (유벽거)

夕相待 (석상대)

冷翠燭 (냉취촉)

勞光彩 (로광채)

西陵下 (서릉하)

風吹雨 (풍취우)

 

난초 잎에 맺힌 그윽한 이슬은

눈물 머금은 눈동자 같구나

마음 맺을 것도 없는데

연기 같은 꽃은 꺾을 수 없다

풀을 돗자리 삼고

소나무를 덮개 삼고

바람을 치마 삼고

물소리로 패옥 삼네.

수레를 타고서

저녁 내 기다려도

차가운 도깨비불은 비취빛으로

헛되이 빛나고

서릉 무덤 가에

바람이 비를 부르는구나


소소소는 남북조 시대의 명기였다고 합니다. 글을 잘 지었는데 어쩌다 명문가의 도련님이랑 눈이 맞았대요. 그때 지은 시가 나는 유벽거를 타고 당신은 말을 타고, 마음을 어떻게 맺을까요, 뭐 이런 내용이었대요. 그래서 소소소에 대해 시를 쓸 때에는 저 단어를 꼭 넣어주는 게 규칙이었답니다. 왜냐면 소소소는 결국 도련님이랑 잘 되지 못하고 일찍 죽거든요. 젊은 나이에 죽은 시인을 애도하는 시를 지은 시인은 많았답니다. 이하도 그 중 한 명이었고요.

그런데 문제는 누가 시귀 아니랄까봐 그놈의 도깨비불이랑 귀신이랑 빠지지를 않는다는 거죠. 죽은 여인의 무덤에서, 죽은 사람이 아직도 수레를 타고 무덤가를 떠도는 것처럼 묘사한 게 참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오늘 이걸로 또봇 전력 60분 하려고 했는데 번역하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어요. 도운이 죽은 리모의 무덤에 인사하러 왔는데 리모가 저기 나타난 걸로 쓰려고 좀 쓰기도 했는데....지웠습니다. 뱀파이어 리모의 미모를 묘사할 수가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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