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제]십자가

준호는 삼위일체를 믿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으며 언젠가 그분이 다시 오실 것을 믿었다. 어려서부터 오래 고민한 끝에 생긴 믿음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머리로 열심히 고민한 끝에 믿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준호의 믿음은 굳건했다.  오래 고민한 끝에 만들어진 믿음이었으니 굳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베이컨이었나, 신을 믿는 것이 믿지 않는 것보다 확률적으로 나으리라는 괴상한 궤변은 철학 수업 시간에 들은 이야기였다. 다들 제법 그럴싸하다고 웃었으나 준호는 별로 웃기지 않았다. 신이 있어야만 내 동생의 혼이 어느 곳에 남아 있어서, 언젠가 받게 될 구원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애초에 동생의 죽음은 악마의 짓 같은 것이었다. 이유도 없이 사람을 해하는 것이 악이 아닐 리 없다. 그것은 악이다. 그리고 인간의 이성이 설명할 수 없는 악이 있다면, 그 악에 대항하는 선이 있을 것이고, 신도 존재할 것이다. 준호의 믿음은 그렇게 시작했다. 신학적인 근거며 이론에 대해 계속 찾아보았다. 성경을 모두 읽고, 구원에 대해 신부님께 질문하고, 천국과 지옥과 연옥에 대해 찾을 수 있는 것은 다 찾아보았다. 결론은, 사람은 모두 죄를 지은 자이지만 자신의 죄는 더더욱 깊고, 동생의 영혼이 정말로 있다면 동생의 구원은 멀고도 아득하다는 것이었다. 동생의 혼이 구원받을 수 있기를, 내가 어떻게든 방법을 알아내기를, 할 수 있는 것은 뭐든 시도해 보고 그 중에 답이 있기를. 준호가 가진 죄가 깊은 만큼 믿음은 굳건했다. 가톨릭대학교를 다 뒤져도 준호와 같이 믿음이 깊은 자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 굳은 믿음으로 예비신학교 시절을 거치고, 똑똑한 아들이 신부가 된다니 말도 안 된다고 화를 내는 아버지를 설득하고, 본당 신부님을 감동시켰다. 준호는 신을 믿었다.
성호를 긋고, 십자가 아래서 기도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이 십자가에 매달려 우리 죄를 사해주신 분을 믿고 따른다면, 이분과 같이 희생을 한다면 어쩌면 거기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배우면 배울수록 동생이 자신에 의해 구원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은 엷어졌다. 준호는 방황하는 신학생이 되었다. 공부가 어려운 것도 아니고, 신앙이 부족한 것이라면 말이 이상하지만 준호의 신앙은 신부가 되기에는 약간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정말로 기도에 너무 열심이어서 성적이 나쁜 것이라고 말해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갈 길이 이것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에 답을 얻기 위한 회의와 고민의 기도가 이어졌다.

사실은 그래서, 구마의식이라는 것에 회의적이었다. 준비는 철저히 했다. 준호는 원래 뭐든 철저히 하는 편이었다. 땡땡이도 치려면 확실히 치고 술도 마시려면 확실히 마시고, 월담을 하려거든 시시하게 하지 않아야 했다. 악마에 대해서 공부하고, 자료를 모두 읽어 암기하고, 서취노트의 내용을 읽고, 의식에 필요한 것을 준비하고, 기도문을 확실하게 기억했다. 하지만 정말 거기에 뭐가 있기는 한 거냐고 계속 질문을 해야 했다. 무언가가 있는데 아무도 뭐가 있는지 말을 해 주지 않았다. 악마라니. 종교가 악마를 쫓는다는 것은 일종의 비유가 아닌가, 사람들의 마음에 서린 불안을 없애주고 나쁜 마음을 풀어주는 것. 그것이 구마일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동생의 구원을 바라서 신부가 되려고 하듯, 무언가 바라는 것을 들어주고 수렁에서 건져내는 것이 종교에서 말하는 악일 것이라고. 하지만 다들 악마가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래, 악마가 있어야 신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사제는 악마의 존재를 의심할 수 없다. 하지만 준호는, 악이 있어도 악마가 있으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신학생 최준호 아가토는,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지만 뭐가 있다는 사실이 답답했다. 가장 답답한 것은 김신부라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하는 일이 뭐다 어떻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너 나 좀 도와야겠다고 다짜고짜 말을 붙였다. 박수사의 집 문을 두들기며 그 애가 불쌍하지도 않냐 한 번만 더 해 보자 하던 절박한 모습이 와닿아서, 준호는 그와 같이 일을 해 보기로 결심했다. 그 애가 불쌍하지도 않냐는 말이 너무나 와닿았다. 불쌍한 아이를 위해서. 
하지만 정작 그 불쌍한 아이는 뇌사상태에 들어 있었고 그 원인이 김신부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다. 그를 감시하라고 명령받았다. 김신부에게 불손하게 굴었던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사실은 이 자가 악일지도 모른다고 잠시 생각했다. 어린 여자아이를 성추행했건, 구마라는 핑계로 죽음으로 몰고 갔건, 무당을 가까이하고 여자 분비물이니 뭐니 하는 괴상한 짓거리를 하는 정신나간 자이건, 사람 신경을 긁어대는 무신경함이건, 이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한 불신과 회의가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아있었다. 하기야 성찬을 준비하며 성호를 긋고 십자가 아래에서 기도하면서도 준호는, 거기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 뇌사상태라던 아이가 말을 하며 자신을 풀어달라고 애원할때부터 준호의 마음 속에서 뭔가가 삐걱거렸다. 공포는 아니었다. 오히려 수치심과 불안감에 가까웠다. 원초적인 날 것 그대로의, 인격마저 부여된 악이 쇳소리를 내며 저주를 퍼부어대기 시작했다. 준호의 믿음과 신앙이 낱낱이 파헤쳐지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준호의 믿음은 밑바닥에서 새로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그랬다. 악이 있다고 믿고 있었으면 악마도 믿었어야 할 일이고, 자신이 죄사함을 얻기 위해 희생하기로 했으면 희생이 뭔지 다시 생각해 볼 일이었다. 준호는 자신의 보잘것없는 믿음과 약한 영혼을 돌아보고, 신발도 신지 못하고 도망나오면서 긁힌 발바닥의 아픔을 생각해보았다. 비참하고 절망적인 순간에도 고통을 호소하는 몸과, 그 몸 안에 담긴 힘없는 마음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신앙에 대해 뭘 안다고, 구원에 대해 뭘 알았다고 나 같은 게 사제가 되겠다고. 알 수 없는 큰 힘들이 한 번에 자신을 휩쓸고 갔고 준호는 그 사이에 휩쓸려 쓸려가듯 도망을 쳤다. 그리고, 그때와 똑같이 도망쳐 나온 자신에 대한 혐오와 함께, 평생을 매달렸던 십자가가 마음 속에 떠올랐다. 여기까지 왔는데, 평생 구원을 하고 구원받겠노라고 매달렸는데, 여기서 답을 구하지 않으면 어디에서 답을 구할까.
불쌍한 애를 구하고 불쌍한 신부님도 구하고 나도 구하자. 준호는 그렇게 결심하고 우선 신발을 찾기로 했다.

물 속에서 빠져나오며 준호는 그때까지 했던 생각을 털어냈다.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이 일단 믿고, 따르고 보자고. 그러다보면 누구를 구해도 구하지 않겠냐고. 그거면 됐다고 생각한 순간, 어느새 물 밖이었고 자신은 살아있었다. 여름이라도 한강에서 빠져나온 몸은 추위와 피로에 덜덜 떨렸지만, 난간에 매달아놓은 묵주를 다시 손에 쥐었을 때 묵주 끝에 달린 십자가가 따뜻하게 손바닥 안에 감겼다. 이제 돌아가지도 고민하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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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13일 전력 120분 백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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