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제]담배

"무슨 담배를 그렇게 피우십니까."
"수도원장님도 안 하신 잔소리를 왜 네가 하냐. 어린 놈이."
"너무 많이 피우시니까 그렇죠. 좀 적당히 하시지."
범신이 피우던 담배를 비벼 끄고 새 담배에 불을 붙이자 준호가 싫은 표정을 지었다. 8개월만에 만난 준호는 본당 생활 잘 하고 있냐는 질문에 대충 고개를 끄덕였고 범신은 살이 빠진 것 같다는 질문에 그냥 피식 웃기만 했다. 인사를 교환한 다음 본당에 찾아온 범신을 따라 인천과 서울의 경계쯤에 있는 동네에서 구마의식을 했다. 부마자가 아주 힘도 넘치고 팔팔해서 둘 다 애를 많이 먹었다. 창문도 한 장 깨지고 부마자가 휘두른 주먹에 범신이 얻어맞기도 했다. 진땀이 나도록 기도한 끝에 구마의식은 마무리가 되었고, 정리를 하고 깨진 창문에 대해 집주인에게 사과를 한 다음 나오자 이미 늦은 밤이었다. 아파트 입구에서 범신이 담배를 하나 빼 물었고, 다 피운 다음에 새 담배를 꺼내자 나온 대화였다.
"좀 익숙해져봐."
"자주 뵐 것도 아닌데 익숙해져서 뭐 하게요."
"하 그놈 참. 너네 본당 신부님은 안 피우시냐?"
"네, 주임신부님도 안 피우시고요, 아니 요샌 어지간하면 다 금연구역인데 좀 끊으십쇼. 불편하지도 않으십니까."
"신부가 주님 외에 세속에서 마음 둘 데가 뭐 얼마나 있다고. 이거라도 피워야지."
준호가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지었다. 범신이 인상을 썼다.
"아가토, 넌 뭐 내가 좋아서 피우는 줄 아냐?"
"안 좋은데 왜 피우시는데요."
"이것 말고는 답이 없어서 그런다, 답이."
준호는 그때 범신의 표정을 자세히 보지 못했다. 지치고 피곤한 표정이 범신의 얼굴에 스쳐지나갔다. 준호의 앞에서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표정이었고, 봤으면 준호는 그 얼굴을 잊지 못했을 것이다. 
"네가 아직 덜 깎이고 덜 다쳐서 그래. 너도 야, 나중에는."
"나중에는요?"
"아니다, 말을 말자. 뭐 너는 꿋꿋해서 기쁘다."
범신이 피식 웃으며 손을 모았다. 당신의 종 아가토를 보호하소서, 아멘. 범신을 따라 손을 모은 준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부님, 담배 좀 줄이세요."
"요샌 잔소리도 속성으로 교육받고 오니?"
"아뇨, 무슨 말씀이 그러십니까. 저는 신부님 걱정되니까 그럽니다. 몸에도 좋지 않은 걸 왜 피우세요."
준호는 눈 앞의 젊은 신부를 빤히 쳐다보고는 피식 웃고 담뱃갑을 열어 새 담배를 입에 물었다.
"아니 신부님."
뭔 신부가 사람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어. 입속으로 중얼거리는 새파랗게 젊은 신부한테 등을 돌리며 준호는 피식 웃었다. 새파랗게 어리고, 어린 만큼 꺾이지 않는 맛이 있었다. 시퍼런 날을 숨길 생각도 못 하고 버럭거리는 게 웃기고, 예전에는 자신도 저랬을까 싶어 그저 웃음만 나왔다. 준호는 라이터에 불을 붙였다.
"예전에 어느 신부님께 담배를 배웠어. 배웠다기보단 물이 든 거 같지만. 아무튼 신부님께 왜 피우시는지 여쭤본 적이 있거든."
"주여, 그 분은 뭐라십니까?"
"맞혀봐라. 맞히면 이번 장엄구마에 쓸 돼지 정도는 내 손으로 구해 보마."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어허, 보조사제는 입 다물고. 어디 어른 말씀하시는데."
자기 말투가 예전 범신의 말투를 닮아간다는 데 생각이 미친 준호가 낄낄 웃으며 담배 연기를 훅 내뿜었다. 젊은 신부가 질색을 하며 성호를 그었다.
"들어서 알겠지만,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고 아무 보상도 없을 테고, 세상에서 가장 낮고 낮은 일만 하면서도 세상이 너를 꺼릴 거다."
준호는 젊은 신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신부가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나도 아마 저랬겠지.
"그러니 이거라도 해야 살 맛이 좀 나지 않겠니. 안 그러냐?"
"최 신부님은 술도 담배도 다 하시면서 뭘 그러십니까."
"어허, 주님의 성스러운 보혈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말라."

뭐 저런 꼴통신부가 하며 혀를 차는 부제의 모습을 보며 준호는 담뱃재를 털었다. 어느새 담배필터 근처까지 불이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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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0일 전력 120분 백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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