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제]목욕탕에 간 김최

"아빠랑 목욕 안 해! 물에서 더 놀 거야 수영할거야!" 

"어허 안 돼, 저기 무서운 아저씨가 이놈 한다?"
목욕탕은 소리가 잘 울린다. 바로 등 뒤에서 실랑이를 하는 부자가 주고받는 대화가 자기 귀에까지 들리는 것이다. 졸지에 애한테 이놈 하고 호통을 칠 팔자가 된 범신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범신의 등을 밀며 아이고 주님 우리 신부님 등에서 국수가락이 나오다니 이게 기적인가 봅니다 하며 너스레를 떨던 준호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신부님 무섭게 생기신 건 세상이 다 아나봅니다."
"시끄럽다, 등이나 대라."
짝 소리가 울려퍼지고 준호가 울상을 지었다. 
"신부님, 어찌 사제되신 몸으로 사적인 복수를 저지르십니까." 
"하 거 존나 시끄럽네. 야 때 밀 때 원래 등 때리고 그러는 거야, 모르냐?" 
"모릅니다! 게다가 아픕니다!"
"어허, 학교에서 목욕 제대로 안 하냐. 이놈 더러운 거 봐라. 하긴 사내놈들만 모아놨는데 깨끗할 리는 없지만 그래도 어허, 이거, 어이구, 부제님 목욕 안 하십니까."
근엄한 얼굴로 악담을 툭툭 던지며 등을 미는 손길에 사감이 가득하다. 아무래도 아까 괜히 놀렸나보다. 억울해진 준호는 울상을 지었다.
"와 억울하네 진짜. 신부님은요?"
"나는 대중탕 못 온 지 6개월이 넘었다 이놈아. 혼자 등 미는 게 쉬운 줄 아냐."
마르베스의 손이 닿아 시커멓게 썩어들어가는 몸으로 목욕탕은 커녕 반소매 옷도 입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없이 입을 놀린 게 되어버린 준호가 미안한 마음에 사과를 하려고 하는데, 등 뒤에서 목욕을 하네마네 실랑이하던 부자가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에 둘은 굳어버렸다.
"아빠랑 목욕 안 한다니까! 나 혼자 할 수 있다고!"
"아이고 윤호야, 저 삼촌도 아빠랑 같이 목욕하러 왔잖아?" 
마구 등짝을 문지르던 손이 공중에서 멎었다. 매서운 눈빛이 두 쌍 아이와 아버지에게 쏟아진다.
"지금 저희 이야기 하시는 거예요? 이분이 저희 아버지라고요?"
준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항의했다. 범신도 질세라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이 놈 애비라니, 내가 싫습니다. 이놈 이거 나한테 배우는 신학생인데 어찌나 말을 안 듣는지 원."
"저도 싫습니다. 무슨 신부님이 이렇게 험악해요."
이구동성으로 투덜거리는 걸 본 아이가 바로 입을 다물고 아버지에게 몸을 맡겼다. 덩치 큰 두 신부의 투덜거림이 제법 무서웠던 것이다. 아이 아버지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게 김윤호 아빠 말 좀 잘 듣지. 신부님들이셨나봐요. 하도 닮으셔서 부자지간인 줄 알았네요."
둘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대놓고 싫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런 꼰대랑/이런 미친 신부랑 닮다니 오 주여. 똑같이 중얼거리고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수도원 안 들어갔으면 그래 뭐 너만한 아들이 있었을지도 모르지."
"신부님이랑 결혼하실 자매님이 안 계시니 그럴 리 없습니다."
"내가 뭐 어때서. 나도 어려선 인기 많았어."
"주님이 지켜보고 계십니다. 거짓말 하지 마십쇼."

뭐야 이놈이. 아이고 말을 말자,됐고 등이나 마저 밀자. 투덜거리며 범신의 손에 몸을 맡긴 준호는 제법 꼼꼼하게 등을 문지르는 손길에 하품을 크게 했다. 둘 다 무사히 뜨끈한 물에 몸을 씻으며 쉴 수 있다니 이 또한 주님 은총이라. 습관처럼 성호를 그으며 준호는 감사기도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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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9 백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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