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니발]백정 살인 사건

토끼님과 연성 교환 커미션을 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개화기 배경으로 한니발을, 토끼님은 중세 유럽 전쟁터를 배경으로 스팁버키를 쓰기로 하셨지요. 그 결과물입니다. 게재 허락 감사합니다. 





한성 시내에서 ‘반인’이 살해당했다.

-뭡니까, 그 ‘반인’이란 건?

-소를 도축하고 파는 것을 허락받은 대학의 노예입니다. 성균관, 이라고 하나요?

소 도축장에서 소를 잡던 자는 성균관 앞 반촌(泮村)에 살던 반인(泮人)이었다. 성균관에 소속된 노비 집단으로, 성균관 앞에서 살며 고기를 잡아 제사에 쓸 쇠고기를 대며 성균관의 살림을 돕는 집단이었다. 아주 오래 전 개경에서 왔고, 더 오래 전에는 재가승처럼 먼 북쪽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말이 있었다. 윌 그레이엄은 종로를 지나 성균관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백정은 살해당했고, 허벅지와 등의 일부가 없어진 사체가 발견되었다. 포도청에서 입단속을 시켰지만 소문은 반촌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졌다. 유생들 사이에서, 궁인들 사이에서, 온 도성의 백성들 사이에서. 

사건 자체도 큰 것이었지만 소문의 내용도 흉흉했다. 양인들이 들어오고 세상이 흉흉해 졌다는 소문이 퍼져갔고, 강상의 도리도 모르는 야만적인 양인들이 조선에 들어와 세상의 법도가 뿌리부터 무너진다는 구체적인 소문이 무척 큰 힘을 가지고 퍼져갔다. 그래서 정부요인 호위차 조선에 와 있던 경찰국장 잭 크로포드가, 수사관 윌 그레이엄을 파견한 것이다. 윌 그레이엄은 물웅덩이가 조그맣게 고인 진흙길을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다. 흰옷 입은 조선사람들이 그를 피해 걸어갔다. 윌 그레이엄이 한성 주재 미국 외교관의 일원이 된 것은 우연이라기보다는, 어쩌다 벌어진 실수 같은 일이었다. 그저 본국에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에게 새로운 환경이라도 접해보라며 윗선이 배려를 해 주었다. 하지만 이 나라는 자신이 알던 세상과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이곳에 노예가 있습니까?

-아, 흑인 노예와는 좀 다릅니다. 미스터 그레이엄. 인권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그리고 잭 크로포드는 윌 그레이엄을 위해, 다른 사람을 한 명 더 보내주었다. 포장이 되지 않은데다 좁고 꼬불꼬불한 조선의 흙길을 걸어가면서 구두에 흙탕물 한 방울 튀기지 않고 우아하게 걸어가는 사람이었다. 단정하고 우아한 것이 굉장히 위화감이 드는 인물이었다. 비단 조선의 거리가 아니더라도 위화감이 들 것이다. 이 사람은 대체 누구지. 윌 그레이엄은 조금 전에 받은 명함에 적힌 이름을 떠올렸다.

-한니발 렉터 박사라고 했습니까. 하지만 조선에는 의료 업무차 오셨다고 들었는데요.

-인류학에 관심이 있습니다. 조선의 민속을 조사하고 있지요.

마흔을 넘겼을까, 단정하게 정장을 하고 중절모를 쓰고 지팡이를 짚은 채, 여기가 뉴욕 맨해탄이기라도 한 것처럼 태연하게 걸어가는 키가 큰 남자는 무척 정중하게 말을 했다. 

-하지만 오늘은 사건의 수사를 위해 여기에 파견되었습니다. 사실은 아침까지는 개성에 있었지요. 개성에서 여기까지 자동차를 보냈더군요. 조금만 멀리 있었어도 큰일날 뻔 했습니다. 

자동차가 움직이는 것을 구경하느라 몰려든 조선 사람들을 헤치고 사람을 찾느라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윌 그레이엄은 속으로 잠깐 불평을 늘어놓았다. 눈 앞에 있는 사람은 무척 친절하고 정중하며 유능해 보였지만, 위화감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뭔가 친숙한 느낌도 든다는 점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윌 그레이엄으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화제를 돌려보았다. 

-법의학자이십니까?

-법의학을 알고 계시는군요. 어느 정도는 맞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기에 온 이유는 다른 것이지요. 혹시 정신분석학이라고 들어 보신 적 있는지요.

-신문에서 봤습니다. 프로이트라는 자가 황당한 이야기를 한다고들 하더군요.

인간의 정신에 이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 부분이 무척 많다는 그 이야기를 하는 자 말인가. 그런 것을 믿는 의사는 처음 본다고 윌 그레이엄은 생각했다. 그는 무척 단호하고 정중한 태도로 말을 하면서, 무언가를 관찰하듯 윌 그레이엄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인간은, 정신에 주의를 기울일 때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육체와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지요. 하지만 지금까지 인간은 육체의 병만 보고 있었습니다. 

-의사면서 그런 것을 믿습니까? 

-신기한 일이지요. 정신을 육체보다 우위에 두는 문화가 발달했으면서 정작 아픈 정신은 돌아보지 않았던 것이 말입니다. 

윌 그레이엄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잭 크로포드 국장의 판단은 과연 옳았다. 이 자는 사건을 수사하는 데보다 윌 그레이엄 자신을 통제하는 데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서 파견한 거다. 

 

懸房, 이라는 기호는 글자일까 그림일까. 커다란 현판이 매달린 건물 앞에는 화려한 옷을 입은 별감들과 포졸들이 가득했다. 미리 설명을 들은 것일까, 못마땅한 얼굴로 두 사람이 지나갈 길을 터 주는 군관들이 보였다. 태도는 고분고분했지만 윌 그레이엄은 분명히 들었다. 양귀신들이 피 냄새라도 맡고 왔나, 하는 명백한 비웃음을. 조선어는 아직 잘 모르지만 내용은 분명했다. 그곳에는 불온한 공기가 떠돌고 있었다. 이 작은 나라는 러시아와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통받고 있었고 자신의 모국도 이 나라가 받는 고통에 얼마간 가담하고 있다는 것은 윌 그레이엄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거기다가 자신들의 외모는 이 나라에서는 너무나 이질적이었다. 새로운 것은 종종 공포스러운 것이거나 혐오스러운 것이거나, 혹은 둘 다이다. 아마 자신은 이 나라에서는 둘 다겠지. 

-저 간판은 뭐지요?

-글자입니다. 이곳의 말로 매다는 방, 그러니까 고기가 매달려 있는 푸줏간이라는 말이지요.

도축장 안은 피 냄새로 가득했다. 소피 냄새는 아니었다. 바닥에는 토막난 시체가 누워있었다. 여기 사람들은 빨리 시체를 치우기를 원했지만, 윌 그레이엄이 현장을 둘러보고 난 다음에 장례를 치르도록 양해를 구했다. 게다가 부검도 필요했다. 시체를 조사한다니 이 사람들에게는 무척 충격적인 일이리라. 아마 이런 부분도 조선 눈에는 무척 야만적으로 보이겠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에 윌 그레이엄은 눈살을 찌푸렸다. 

-사람들을 물려 주십시오.

영어와 조선어로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먼발치에서 현장을 들여다보려고 까치발을 하고 웅성대는 풍경이 눈에 선했다. 넌더리를 내며 문을 닫는 조선인 경찰도 있었다. 여기서는 경찰이라고 부르지 않던가, 뭐 상관없다. 아무래도 뭘 해도 여기에선 미움받을 수밖에 없으려나보다. 원래 시체가 걸려있었던 갈고리며 바닥에 튄 피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윌 그레이엄은,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닫힌 문 안에는 한니발 렉터 박사가 남아있었다. 자신들을 향해 언성을 높이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자, 아주 미세하게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좀 특수한 방법으로 수사합니다. 들으셨겠지만.

-괜찮습니다.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호기심 어린 표정이었다. 윌 그레이엄은 조금 당황했다. 정말로 다 들었다면 저렇게 나올 리 없다고 생각했다. 왜 나가지 않았느냐는 뜻이 분명히 전달되었을텐데도 박사는 반응하지 않았다.

-정말 들으신 겁니까.

-물론이지요. 잭 크로포드가 하는 일입니다.  

-악마의 소행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십니까.

세일럼에 마녀가 나타났다는 소동이 벌어진 이후 고작 백 년도 지나지 않았다. 아직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했고, 윌은 그런 점에서 공포를 불러일으키곤 했다. 그 자신이 그 점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저는 과학을 믿는 사람입니다.

박사는 미소지었다.

-그리고 다 들었기 때문에 여기에 온 것입니다.

역시 뭔가 알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과연 어떨지. 윌 그레이엄은 시체가 걸려있는 벽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현장에 있었던 모든 정보들이 물처럼 밀려들어왔다.


윌 그레이엄은 놀란 듯 흠칫하며 감았던 눈을 떴다. 세상이 핏물에 잠긴 듯 모든 것이 검붉어 보여 어지러웠다. 정신을 차리는데 시간이 좀 걸리려나 보다. 그때 웬 사슴머리가 달린 괴물이 입을 열었다.

-뭐 좀 알아내셨습니까.

헛것을 보는 건가. 흠칫 놀라 앞을 보니, 한니발 렉터였다. 벽에 걸린 소뼈들이 꼭 사슴뿔처럼 보였던 것 같다. 사람을 짐승으로 보다니. 박사는 윌 그레이엄의 얼굴을 살피고 있었다. 윌 그레이엄은 자신의 감정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죽였는지는 확실히 알겠습니다. 굉장히 힘이 센 사람이었군요. 시체는 푸줏간 앞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습니다. 맞지요?

-그랬다고 들었습니다.

-게다가 베어간 부위 말입니다. 그거 베어진 흔적이 좀, 특이해요. 소고기랑 비슷한 데가 있습니다. 

윌 그레이엄은 고개를 찡그렸다. 살인도구는 도살장에 있던 날카롭고 큰 칼이었다. 덩치가 상당했던 백정을, 무슨 수를 썼는지 제압해서 큰 칼로 찌른 다음, 거꾸로 매달아 피를 빼고 고기를 썰어갔다. 사람을 푸줏간에서 고기처럼 죽인 것이다. 그야말로 인간 취급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마저 느껴졌다. 윌의 설명을 들은 한니발 렉터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장에서 본 것을 적고, 사진사가 와서 현장 사진을 찍어가는 동안 박사가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그런데 왜 이곳 사람들의 방식을 안다, 고 말하는 겁니까.

-범인이 이 나라 사람이 아니라고 확신하니까요.

-그런 것도 읽어낼 수 있습니까.

-제가 찾아내는 것은 어쩌면 범행동기일지도 모릅니다.

윌은 몸을 돌렸다. 

-잭 크로포드에게 가십니까?

-보고는 내일 하도록 하겠습니다.

분명하게 말하고 돌아서는 윌 그레이엄을 보는 한니발 렉터의 눈에 일종의 이채 같은 것이 어렸다. 그 눈빛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늦은 저녁, 북촌에 있는 한니발 렉터의 집에 윌 그레이엄이 찾아왔다.

-연락도 없이 찾아와서 놀라신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괜찮습니다. 당신의 방문이라면 언제든 좋아요.

과장된 환영인사라고 생각한 윌 그레이엄은 미간을 조금 찌푸리고 화제를 돌렸다.

-좋은 곳에 사시는군요.

-이 나라에 사는 다른 외국인들을 따라해 보았습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실내에는 슬리퍼가 놓여 있었다. 윌 그레이엄은 댓돌을 밟고 올라가 슬리퍼를 갈아신고, 방에 들어갔다. 콩기름을 먹인 장판에 보료며 족자가 걸려있는 와중에 책상용 의자가 몇 개 놓여있었다. 조선식 방에 소파는 좀 놓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의자에 앉자 잠시 후 박사가 차를 내 왔다.

-저녁 식사 시간인데 식사를 하시지 않고요.

-괜찮습니다.

-쇠고기찜을 좀 해 봤습니다만, 드시겠습니까.

-고기를 사셨나요?

윌 그레이엄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물론입니다. 조선에서 의외로 좋은 고기를 파는 푸줏간이 많더라고요. 윌. 아, 윌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좋으실 대로요, 박사님. 

박사는 미소지으며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윌은 눈을 빛내며 박사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신 용건에 대해 물어도 될까요?

-잭에게 가기 전에, 당신한테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어서 왔습니다.

-어떤 부분에 대해서요?

박사는 윌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백정이란 사람들은 이 나라에서 어떤 위치인 거죠?

-아, 천민이지요. 여기 사람들과는 혈통이 좀 다르다고 해야 할까요. 그거 아십니까. 그 사회에 속하지 않은 이방인들이 사회에 편입될 때는 가장 낮은 계급으로 편입되지요.

박사가 말했다.

-그렇습니까?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들도 모두 천민으로 이곳 사회에 편입되었습니다. 조선의 북쪽에 중국인 부락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이들 말로 여진족이라고 불리는 부족 사람들이 사는 마을인데 거기 사는 사람들은 조선인과 통혼도 할 수 없고 조선인들이 하기 꺼려하는 천한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윌이 박사의 눈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요. 그게 궁금했습니다.

-어째서요?

-일단 박사님, 오늘 사건 현장에 대한 제 의견을 좀 들어 주십시오.

-그건 좋습니다만, 왜 저에게 먼저 오셨죠?

-그래야 한다고 판단해서입니다. 

-좋아요, 윌. 당신의 의견이 궁금하던 참입니다.

렉터 박사가 말하자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입을 다물고 있던 윌이 잠시 후 입을 열었다.

-백여년 전부터 이곳의 백정들은 한성 내의 도축 및 고기 판매를 독점해 왔습니다. 그들은 꾸준히 천천히 부를 쌓아갔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불만이 많았습니다. 돈은 있지만 신분은 얻지 못했으니까요.

박사가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합니다, 윌. 이곳 사람들에 대해 많이 조사했군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겁니다. 자신들 같은, 신분제 외부에 있는 사람이 등장했는데 그들은 조선 사회에서 아무런 차별을 받지 않았어요. 물론 사람들은 그들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그래요. 일종의 특권을 가지게 된 겁니다. 참으로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겠습니까. 사실 이들이 우리를 보는 눈빛이, 아까 그 백정들을 보는 눈빛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동의하시나요?

박사는 평소 자신을 보던 조선인들의 무례하기 짝이 없는 표정과 말을 떠올렸다. 코쟁이라는 둥 외국 괴물이라는 둥 밑도 끝도 없는 천박한 말을 내뱉던 사람들이었다.

-우리들 외국인은 이들에게는 또 다른 천민이지요, 마음속으로는.

-조선의 예의도 모르고, 조선말도 모르는 기괴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 나라 관리며 왕족들과 대등하게 이야기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천한 품성을 지닌 노랑머리 외국인들이 말입니다. 이들은 그게 싫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푸줏간의 백정 김씨는, 그래서 그 누구인지 모를 외국인에게 무례하게 굴었으리라. 검은 머리의 사람들이 모여살던, 견고한 상하질서로 이루어진 조선이라는 나라에, 잘못 들어온 외국인들.

왜 저들은 다른가, 하는 사소한 물음이었으리라. 천민들 가운데 개화 문물에 관심을 가진 이는 의외로 많았다. 양반들은 가지지 못한 베깡도 있었고, 고기를 팔며 모은 재산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 다른 세상은 오지 않았고, 양반님들 위에 다른 양반님들이 온다고 했다. 평범한 백정 김씨는 아마 그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리라. 

그리고 그는 무례한 죄로 살해당했다. 

-이게 제 디자인입니다.

긴 이야기가 끝나고, 평소답지 않게 말을 많이 한 탓에 목이 말랐는지 테이블 위에 있던 차로 목을 축였다. 반은 감탄, 반은 놀란 표정으로 박사가 말했다.

-그렇군요. 굉장한 비약입니다만 잭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범인의 심리를 범인과 같이 이해하고 그의 눈으로 사건 현장을 본다고요.

-그 비슷합니다.

-하지만, 이 조선 땅에는 의외로 많은 외국인이 있습니다. 그들 중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렇게 볼 때, 범인은 박사님, 당신입니다.

윌 그레이엄은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한니발 렉터가 매우 신기한 것을 보듯 윌 그레이엄을 쳐다보았다.

-왜 나죠?

윌이 인상을 찌푸리고 박사를 쳐다보았다.

-제가 현장에서 읽어낸 겁니다. 범인은 피해자를 음식물처럼 다루었어요. 무례한 것을 매우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저녁 메뉴가 쇠고기더군요. 그 푸줏간에 들렀던 외국인이 당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지나친 비약입니까? 

박사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너무나 담담한 표정에, 윌은 하고 싶지 않았던 말까지 내뱉고 말았다.

-혹시 오늘 식탁의 쇠고기가, 범인의 살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아닌가요? 먹을 수 있을만큼 잘라간 것 아니었습니까.

모욕적인 발언이었다. 그러므로 화를 내며 강하게 부정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박사는, 한니발 렉터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박사의 미소를 본 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제 추측이 맞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아니오, 알아봐 주어서 상당히 기쁩니다.

-진심입니까?

-물론입니다. 이렇게 기뻤던 적이 없었어요. 내 살인을 한 눈에 알아보다니, 무척 마음에 듭니다.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겠지요

윌은 얼굴을 찌푸렸다.

-거절합니다. 당신은 수배자입니다.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어지럽죠?

말을 끊은 박사가 미소짓고 있었다. 차, 그걸 마시는 게 아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의 손이 묶여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걸까. 윌은 시간을 가늠해보려고 했지만 머리만 깨질 듯 아프고 아무 것도 짚이는 것이 없었다. 그때 눈 앞에 박사가 나타났다.

-깼군요.

평소와 다름없이 수트를 입고 있었다. 여행가방을 하나 들고 있다는 점만 평소와 달랐다.

-어디로 가려는 겁니까

대답하지 않고, 박사는 다른 말을 꺼냈다.

-윌, 왜 나한테 먼저 온 겁니까.

-뭐라고요?

-잭한테 먼저 가는 게 나았을 겁니다. 당신은 범인이 나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아닙니까?

윌은 고개를 숙였다.

-결국 당신은 날 잡을 마음이 없었던 건지도 몰라요. 당신은 살인마의 집에 오면서, 아무 대책도 세우지 않고 누구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았더군요. 내가 당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않은 겁니까.

-……비약이 심하군요.

-그렇게 말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사건을 읽는다면, 저는 당신의 심리를 읽지요. 윌, 당신은 나를 잡을 마음이 없었어요.

-왜 그렇게 생각하죠?

-당신은 나와 동류니까요.

윌은 기분나쁜 표정으로 박사를 노려보았다.

-살인마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면서, 당신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하면 곤란하지 않습니까.

박사는 아이를 타이르듯 부드럽게 말했다.

-당신을 죽여서 먹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아니, 오히려 즐거울지도 모르죠. 무례한 인간보다 훨씬 나은 식사가 될 겁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겠습니다.

허리를 굽힌-바닥에 앉아있는 윌의 눈높이에 맞춰-박사는 윌의 뺨을 쓰다듬고, 어깨를 톡톡 쳤다.

-이건, 그렇죠. 친구에 대한 우정의 표시입니다. 내가 나가는 것 정도는 마음 편하게 보세요. 물론 당신이 날 잡지는 못할 걸 압니다.

-난 당신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건 윌, 당신 주장일 뿐이고요.

그 말을 끝으로, 의식이 끊겼다. 단단한 몽둥이로 뒤통수를 맞은 모양이라고, 나중에 등장한 잭 크로포드가 말했다.


정작 윌이 그 집을 빠져나간 것은 이틀 뒤였다. 집안 살림을 도우려고 고용한 조선인 행랑아범이-라고는 해도 자기 집에 살면서 정해진 날짜에 와서 장작을 대 주고 일을 해 주는 것 뿐이다. 그는 한니발이 집에 어떤 고기와 살인도구를 갖춰 두었는지 알지도 못했다- 집에 들렀다 윌을 풀어준 것이다. 집의 부엌에는 기기묘묘한 조리도구와 함께, 땅속에 짚에 싸고 소금에 절여 보관해 둔 각종 고기가 나타났다. 그게 뭔지 누구도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세상은 조용해졌다. 조선인 살해 혐의로 수배된 닥터 한니발 렉터가 실종된지 몇 달이 지나고, 먼 동유럽에서 그를 보았다는 제보가 들렸으나 윌 그레이엄은 그것을 믿지 않았다. 그는 분명히 자신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어디에서인지는 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