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니발]심장의 행방
- 쓰고 만든 것/그 외
- 2013. 9. 8. 22:57
윌은 식탁을 보고 경악했다. 붉은 심장이 접시 가에 얹혀있었다. 붉은 액체가 접시에 퍼지고 있었다.심장을 식탁에 올리기도 하나? 닥터 한니발 렉터의 식탁은 독특한 격조가 있다고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이게 왜. 크기와 모양이 사람의 그것과 유사했다. 윌은 놀란 눈으로 식탁 너머에, 접시를 들고 서 있는 집주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늦었군요."
태연하게 음식이 담긴 접시를 내려놓은 렉터 박사가 인사를 건넸다.
"뭐죠?"
"아, 심장 모양 과자 말이군요. 식탁 장식을 하려고 만들었습니다."
"만들었다고요?"
"비스켓입니다. 피는 라즈베리와 딸기를 기본으로 했죠."
이게 무슨 악취미야.
"오늘은 심장, 이 일종의 키워드죠. 소의 심장과 혀로 만든 요리에 앞서, 심장을 재현해 봤습니다."
윌의 앞에 도톰하게 썬 무화과 위에 블루치즈와 푸아그라를 얹고 꿀과 루꼴라를 얹은 카나페 접시가 놓였다. 배는 고팠지만 심장 옆에 있는 둥근 무화과를 보고 있자니 식욕이 없어졌다.
"왜 하필 심장이죠?"
"다음부터는 늦기 전에 미리 말을 해 주세요. 요리 준비에 차질이 생깁니다."
"아, 미안합니다."
박사는 윌의 질문에 답하기 전에 시간에 늦은 무례를 먼저 지적했고 윌은 사과했다. 다시 물어보려고 했지만 말 없이 포크로 무화과를 찍고 있었다. 윌은 한숨을 쉬고 나이프를 댔다. 밤꿀인지 색이 짙은 꿀 사이에서 무화과의 붉은 속이 핏빛으로 보였다.
식사는 무미건조했다. 음식은 맛있었지만 박사와 윌 사이에 살가운 대화는 별로 오고 가지 않았다. 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일 이야기 뿐이었지만 오늘 본 시체에 대해 밥을 먹으며 이야기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애비게일의 안부에 대한 의례적인 이야기, 알라나 블룸에 대한 이야기, 키우는 개에 대한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늘어놓은 것이 전부였다. 한니발은 접시를 나르고 식사준비를 하느라 자주 일어서곤 했고 윌에게는 오히려 그게 다행이었다.
그날의 메인디시는 소의 심장을 썰어 구워 허브와 레몬으로 맛을 낸 소스를 얹은 것이었다. 육즙이 빠져나가지 않게 살짝 구운 소 심장은 겉으로 봤을 때는 일반적인 고기와 별 차이가 없었다.
"그냥 고기 같네요."
"심장이라고 해서 다들 오해하지만, 내장도 고기입니다. 게다가 심장은 지방질이 없는 근육이라 맛이 특별하지요."
"그런데 음식이, 음 꼭 무슨 주제가 있는 것 같아요."
"요리란 원래 영감이 있어야 하는 거니까요. 오늘은, 그렇군요. 내담자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아, 허락을 구했다는 건 아시겠지요. 어렸을 때 염통 모양 과자라는 글귀를 책에서 봤답니다. 외국 동화책을 그 나라 말로 번역한 것이었는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는군요. 자라서 미국에 온 다음, 그 책을 다시 봤더니 하트 모양 쿠키였다는군요."
윌은 어느 타이밍에서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박사를 쳐다보았다.
"말하자면 이건 heart군요."
"그렇죠."
"보통 하트라면 구애의 의미라고 하는데. 박사님이, 어, 아마 그럴 리는 없죠."
윌은 당황한 표정이었다. 얼마 전에 알라나와 키스했다는 말을 할 때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박사는 냉담한 얼굴로 윌을 쳐다보았다.
"그렇습니다. 저도 절대로 그런 뜻으로 이 자리를 준비한 것은 아닙니다."
안심한 듯한 윌이 나이프로 심장을 한 조각 잘라 입에 넣었다. 그것을 확인한 박사는 음식을 마저 먹기 시작했다. 심장은 의외로 맛있었다. 적당히 부드러웠고 비린 맛이 많이 나지도 않았다. 하지만 뭔가 독특한 풍미가 있었고, 설명하기 어려운 기묘한 맛이 났다. 식사가 다 끝나갈 무렵까지 식탁은 조용했고 윌은 심장에 집중했다. 이윽고 접시를 다 비워갈 때 박사가 입을 열었다.
"하트에는 알다시피, 핵심이나 본질이라는 뜻이 있지요."
지나가듯 한 말에 윌이 멈칫했다. 그러나 박사는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은 다음 냅킨으로 입을 닦고 주방으로 갔다.
"와인과 치즈를 내 오지요."
식사가 다 끝나도록 심장으로 점철된 그 식탁을 이해할 길이 없었다. 아마 박사의 말 가운데 힌트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식사는 평온했으므로 윌은 그냥 마음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박사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 오늘 본 시신에는 심장이 없었다는 것은 나중에 생각이 났지만 그 점과 오늘 식사를 연결시키기에는 윌은 너무나 선량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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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동화책은 옛날에 번역된 말괄량이 삐삐라고 합니다. 염통 모양 과자라니 대단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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