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들어있습니다. 영화 안 보신 분들은 읽지 마세요.
1.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는데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경제학의 ㄱ도 모르는 무식한 처지라 그럴 수 있겠지만요. 제 입장에서는 궁지에 몰린 사람들과 폐쇄된 시스템이 있으면 그거 자체를 뒤집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로 보이기도 하고, 애초에 경제, 시스템? 그걸 이야기하려고 한 건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절망한 사람들과 디스토피아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시스템을 건드리게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는 이 영화는 무언가에 항의하고 분노하는 영화가 될 수 있습니다.
극심한 빈부 격차나, 들어올 때 냈던 요금(아마도)에 따라 열차 안에서의 삶이 결정되는 거나 열차 안의 무질서한 환락 같은 게 그런 분노를 보여주는 것 같고요. 게다가 열차 안의 학교는 참 답더군요. 멋진 신세계가 이런 종류의 전형인데 거기 나오는 교육 시스템 생각나게 만드는 것이 아주...이건 뭐 빅브라더도 이런 빅브라더가...
하지만 시스템 내에서의 혁명이라고 보기 어려운 게 길리엄 때문에요. 혁명가인 줄 알았는데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그 많은 일을 꾸미고 있었던 거였던 거죠. 사실 붉은 편지 나오는 걸 보면서 분명히 앞쪽에서 음모가 벌어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거기 길리엄이 개입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은 못 했거든요. 전쟁이나 혁명이 어떤 면에서는 이 시스템을 유지시키는 장치 중 하나라는 말이 이해가 가는 장면이었어요. 시스템 자체가 이미 거대한 권력일 경우에는 그 안에서 뭘 해도 소용이 없고, 개인의 의지를 넘어선 집단의 의지조차 시스템에 먹혀 있다는 점이...
혁명은 시스템 바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궁민수는 시스템 바깥을 보고 있었고 커티스는 시스템 안에 있는 정점을 보고 있었지요. 구조 밖을 보는 사람을 우리는 미치광이라고 부릅니다. 그 점에서 크로놀 중독자라는 설정이 무척 그럴듯했어요. 그런 사람만이 바깥을 볼 수 있겠지요. 결국 정점에서 구조의 무서움을 알고 질린 커티스를 구해준 건 요나였으니까요. 혁명이나 개혁이 법이나 구조의 반대인 것 같지만 사실 그것들이 오히려 체제를 공고화하는 거지요. 계엄령은 법 바깥에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그거야말로 구조의 정점에서 권력을 휘두르듯이요. 어 지금 맞게 설명하는 거 맞나 모르겠네요. 이런 썰 풀어본지 1년이 넘어서...여튼 그렇기 때문에, 혁명이다 아니다보다는 저런 식으로 시스템 자체를 무효화하는 전략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생각합니다. 제가 철학에 참 무식한데 요새 읽은 책들에서 그런 구조나 조건들의 공백을 치려는 이야기가 종종 등장하더군요. 이 영화를 보고 나니 그런 책들을 읽고 영화 서사를 분석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라고 단정짓지 않는 이유는 말입니다, 별 거 아니에요. 지금까지 혁명 이야기 해놓고 무슨 소리냐 싶으시겠지만....음, 신자유주의가 디스토피아를 만든다는 데 동의해요. 하지만 모든 디스토피아가 신자유주의는 아니지요.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 않겠어요.
2. 이 영화는 희생에 대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결국 커티스가 원하는 새로운 세상은 그가 한 팔을 잃고 나서야 완성되지요. 커티스는 내내 자신은 팔이 두 개라는 데 부채감을 안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에드가의 어머니를 죽이고 살아남았다는 부채감도요. 에드가가 어머니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데 안도감을 표시하는 커티스의 모습이 참 이상했단 말입니다. 걔는 모든 것이 부담스러워서 혁명을 이끈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거기까지 계산한 길리엄은 천재고...자신은 남의 피와 살을 먹고 살아남았으니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겠지요. 그 와중에 에드가도 길리엄도 타냐도 자기 때문에 죽은 걸요.
그 상황에서 자신을 구해준 건 약쟁이 부녀라는 점이 아이러니컬하기도 하고. 영화 마지막에서 커티스와 남궁민수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지만-아마 죽었겠죠? 커티스가 가진 부채감이 해결된 거 같아 다행이에요. 아 물론 커티스의 동기가 불순하다고 까는 게 아닙니다. 그는 그 열차에서 가장 선량하고 훌륭한 사람이에요. 다만 그냥 그런 이유가 숨어있을 뿐이라는 거지요.
3. 너무 진지하게 헛소리를 해서 민망하니(저거 다 헛소리입니다. 뭐 알고 쓰는 소리도 아니고...) 그냥 잡다하게 생각나는 이것저것.
양갱 이야기 나올 때 대충 짐작은 했습니다만...역시 재료가 그게 맞더군요. 폐쇄된 공간에서 단백질 공급하려면 뭐 그게 제일 편하죠? 지구가 멸망해도 살아남을 생물 후보 1순위 아닙니까.
왜 이거 보고 양갱 먹으라는 거예요. 나쁜 사람들 같으니. 그것보단 흡연권장 영화 아닙니까? 담배 연기 앞에서 눈 감고 미친 듯 연기 들이마시는 사람들 보니 비흡연자인 저도 담배 생각 나던데요. 이렇게 담배 맛있게 피우는 영화는 처음 봤습니다.
사실 터널 나오기 전 거의 흑백에 가깝게 처리된 화면에 정적인 연출, 음향효과 같은 게 곁들여진 액션신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미화되고 과장되었지만 그래서 더 덤덤한 것이...너무 많은 걸 하려고 시도한 거 아닌가 싶은 부분도 좀 있었어요. 액션신에서 이것저것 시도해 본 거랑 여러가지 연출이랑...좀 부담스러울 만큼 많은 걸 압축해서 그 부분은 지적하고 싶은 충동이 스멀스멀 올라오지만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참 잘 봤습니다.
같이 본 사람은 마지막 장면을 보더니 살아남은 인류가 북극곰 손에 멸종하는 배드 엔딩이냐고 묻던데요(...) 그러면 너무 슬프잖아;;; 근데 저도 그 생각 안 한 게 아니라서...그렇습니다 제가 좀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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